47 2023 AUTUMN47
사진 김경수

불온하고 탱탱하신 우리 아버지
이반지하

예술가. 이는 수많은 이반지하1(김소윤)를 한마디로 통합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일 것이다. 현대미술가이자 애니메이션 감독2, 싱어송라이터이자 퍼포머, 신랄한 위로를 건네는 유튜버, 편의점 사인회 주인공이자 편의점 노동자, 팬덤 ‘감태즈’의 연예인, 두 권의 에세이집을 낸 베스트셀러 작가. 다수의 필드에 동시다발로 존재하는 그를 나타낼 말이 너무 없거나 너무 많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경계와 선 자체에서 영감을 얻는”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고 팬들에게 ‘아버지’3라 불리는 자, 세상과 어긋난 존재를 무적의 ‘생존자 유머’4로 깨운 이, 이반지하.

매거진 간행 이래 본교와 관련 없는 인물을 아티스트 섹션에 초대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예술이라는 정신적 혈연 관계 속에서 이 시대 예술가라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떠올릴 이름이 되리라는 확신으로 이반지하 작가를 선정했다.

1
활동명 ‘이반지하’는 퀴어의 한국말 ‘이반’과 위태로운 주거형태인 ‘반지하’를 결합한 것이다.
2
현재 퍼플레이에서 그의 작품 두 편과 제작기 영상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3
팬들은 이를 줄여 ‘압지’ 혹은 ‘아빠’ 등의 호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4
생존자 유머(survivor’s humor)는 자신의 유머를 설명하기 위해 이반지하가 만든 말이다.

이반지하 유니버스로의 초대

첫 에세이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문학동네, 2021)를 출간하며 현대미술 바깥에 있던 대중과의 접점을 넓혀온 그는 올 5월 두 번째 에세이집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이야기장수, 2023)를 출간했다. 작년 9월부터 12월까지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한 글을 아이패드 드로잉 작품과 함께 확장 편집한 것이다. 작가가 일하는 편의점 인근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코로나 후유증 탓인지 갈라지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팽팽한 웃음을 들을 수 있었다. 책에서 왜 스스로를 탱탱볼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어디에 부딪치든 딱 그만큼 탱탱하게 튕겨올라와 자꾸만 거슬리게 하는 작고 꽉 찬 싸구려 형광색 공. 그래, 굳이 말하자면 나는 이쪽이다.” 5

“첫 번째 책을 냈을 때는 코로나 한복판이었기 때문에 오프라인 행사를 많이 못 했어요. 당시에는 티가 안 났죠. 퀴어라서 행사가 없는 건지 코로나 때문인 건지.” 두 번째 책 출간 이후에는 제주, 부산, 대전, 서울 등 전국의 크고 작은 서점들이 앞다퉈 북토크를 개최하고 있다. 그야말로 이반지하 읽기 열풍이다.

5
이반지하,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 이야기장수(2023), 287p (이후 이 책에서 인용된 구절은 본문에 페이지를 표기)

갤러리를 뛰쳐나온 퍼포먼스

울산 동구 남목도서관에서도 북토크 요청이 들어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독서아카데미 사업의 일환으로 이반지하가 7월의 강연자 중 한 명으로 초청된 것이다. 그런데 언론에 강연 주제가 공개6되자, 도서관 업무를 방해할 정도의 전화 민원이 쏟아졌다. 게시판에 ‘동성애 옹호 강의라니 제정신입니까?’류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하자 도서관 측은 강연 취소를 통보했다. 그러자 전보다 다섯 배가 넘는 항의글이 게시판을 뒤덮었다. ‘소수자 혐오라니 제정신입니까?’ 이반지하의 팬과 시민의 잇따른 항의에 도서관 측은 강연을 다시 열겠다고 하는 둥 우왕좌왕했다. 그러면서 ‘퀴어, 젠더, 동성애를 언급하지 말라’는 일종의 주의 지침이 작가에게 하달됐다.

그 순간, 이반지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 진짜 재밌겠다 생각했어요. 근데 오해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는 건 그것이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는 거예요.” 대표 도서가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인 사람에게 ‘퀴어’를 언급하지 말라니? 그러나 이런 모욕적인 순간에도 “지옥 같은 예술적 영감”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단순 북토크였던 강연이 〈정상 가족 만들기〉라는 퍼포먼스로 재탄생했다. 도서관 정문에 펼쳐진 혐오 시위를 뚫고 온 청중 50명에게는 지워지지 않을 기억이었다. 청중 중에는 혐오 세력도 섞여 있었지만, 마이크를 잡고 울먹이며 작가에게 감사를 전하는 이도 있었다. 이반지하에게는 “굉장히 무섭고도 자랑스러운 기억”이었다.

퍼포먼스 〈MAKING A NORMAL FAMILY〉 전경 ©이반지하
현장 자료화면 배경은 원래 흰색이다. 프로젝터 빛이 렌즈에 굴절되어 의도치 않게 무지개색이 나타났다.

“오케이. 너희가 원하는 거 다 해줄게. 어. 퀴어 얘기 안 하지. 젠더 얘기 안 해줄게. 동성애 빼줄게. 근데 내가 어마어마한 강연은 해줄게. 니네가 듣고 싶다는 그 강연.”

어떤 비평가는 이반지하 예술세계의 특성으로 이러한 유연성을 꼽는다. 정상성 이탈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역으로 대응하기 위한 작가의 계책이 유연성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7 그러나 검열을 넘어서려는 예술가에게 박수를 보내는 일은 어쨌든 사후적인 인정에 불과할 뿐, 영혼에 자행된 파괴를 한 겹 한 겹 돌보는 일은 그 누구도 대신해 주지 못한다. 억압의 경험은 트라우마든 정신병이든 몸 내부에 물리적인 작용을 일으킨다. 책의 한 챕터인 「얼굴은 화악 피는 치익」은 작가가 협업 전시8를 위해 해외에 체류할 때 일상의 혐오를 마주하고 공황 발작이 왔던 기억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꺼내어 쓴 것이다.

“그런 순간에도 공황이 와버린 나를, 확연히 정상성을 잃어가는 나 자신을 깊이깊이 혐오하고 있었다. 얼마 안 남은 에너지를 짜내고 짜내어 정상인의 얼굴과 말을 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런 노력은 그 순간 나를 살렸을까, 혹은 나의 일부를 완전히 죽게 했을까.”(272p)

혼자 혐오 시위대 앞을 지나갈 때 벌어질 수 있는 각종 극단적인 상황을 두려워하며 강연장에 도착한 그날 그가 예상하지 못한 풍경은 강연장을 먼저 지키고 있는 팬들의 모습이었다. “경찰도 있을 거라고 하는데 솔직히 누가 내 편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가서도 누가 날 지켜줄 거란 생각을 못 했었는데 되게 고맙게도 팬들이 미리 와서, 강연장 앞자리를 지키고 있는 식의 액션을 해줬어요. 굉장히 고맙죠.”

6
서유덕, “남목도서관, 독서아카데미 강연 소재 논란”, 《울산제일일보》, 2023-07-09
7
Jung Joon Lee, “Drawing on repair: Kang Seung Lee and Ibanjiha’s transpacific queer of colour critique”, The Burlington Magazine, Issue 8, June 2023
8
전시 《Bathroom Classroom》 도록 참고

이반지하의 말

‘감태’라는 이반지하 팬덤의 별칭은 ‘구운감태’라는 한 열성 팬의 닉네임에서 비롯됐다.9 2004년 이반지하가 한국퀴어문화축제에 데뷔했을 때를 영접한 묵은 감태부터 비교적 최근에 이반지하에게 빠져든 베이비 감태까지 저마다 길고 짧은 이반지하 입문기를 거친 이들은 어느새 이반지하 예술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유튜브 채널 ‘IBANJIHA 이반지하’에서 2주마다 열리는 라이브 〈이반지하의 말〉도 감태들의 열렬하고 성실한 사연 투고 덕에 세 시간이 넘는 강행군 콘텐츠가 되곤 한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조금 반갑다.”(36p)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번 책에 수록된 에세이 「죽고 싶다는 반가움」도 〈이반지하의 말〉 10회에 “제가 왜 살아야 할까요?”라고 물어온 한 감태에게 이반지하가 정면으로 건넨 위로를 바탕으로 한 글이다. 감태들과 이반지하의 관계는 콘텐츠뿐만 아니라 ‘문화혜택비’라는 경제적 개념으로도 끈끈하게 맺어져 있다. 작가의 콘텐츠 생산물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후원’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싫어서 작가가 직접 만든 개념이다.101원을 내는 이도 있지만 이반지하를 뜻하는 2,874원을 내는 이부터 30만원을 내는 이들까지 그날 그날 형편에 따라 액수는 다양하다.

9
이반지하 유튜브 채널 ‘IBANJIHA 이반지하’의 콘텐츠 〈이반지하의 말 14회: 대세에 지장 없다!〉
10
이반지하,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문학동네(2021), 58-59p

왼) 유튜브 채널 ‘IBANJIHA 이반지하’ 콘텐츠 〈이반지하의 말〉 스틸컷
오) 퍼포먼스 〈FAN SIGNING AT CONVENIENT STORE〉 ©이반지하

전무후무 블랙 유머

그들은 왜 이반지하의 말에 열광할까. 가장 큰 이유는 이반지하의 유머다. 본디 유머란 사회적 약자 따위가 쉽게 구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웃기는 퀴어 생존자’라는 희귀한 위치를 스스로 일구어냄으로써, 죽지 못해 살고 있던 이들을 사회가 강요한 신파에서 살살 끌어내는 ‘생존자 유머’를 구사하는 이가 나타난 것이다. 그의 유머를 듣고 보는 경험은 끝없는 역전승이 펼쳐지는 경기를 참관하는 것과 같았다. 그를 통해 웃음의 금기에서 풀려난 자들인 레즈비언, 장애인, 가난한 노동자, 정신병자, HIV 감염인 등등이 모두 한 뭉치가 되어 서로의 세상을 향해 낄낄거린다.

“잠시 분위기는 땡강 차가워지는 듯했으나, 우리는 곧 ‘매일 약 먹는 애들’로 하나가 되어 자신과 서로의 고통을 비웃기 시작했다. 매일 약을 먹어야 살아진다면, 그게 무슨 약이든 그냥 약 먹는 새끼일 뿐이라는 정말 대충 묶고 지져지는 연대의 마음도 한껏 차올랐다.”(174-175p)

이런 방식에 처음부터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퀴어 유머는 커뮤니티 내부에서도 오랜 금기였죠. 지금은 이반지하가 너무 당연하고 커뮤니티에서 좋아하는 어떤 현상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오염〉 노래를 처음 부를 때 듣다가 나간 사람들도 꽤 있었고요.”

실제로 그의 노랫말들은 띵한 충격을 안기며 웃을 것인가 말 것인가 선택의 갈림길에 우리를 세운다. 금지된 선을 정확히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겨우겨우 자리 잡은 호모 사회 트랜스가 망쳐놨네/ 자기 몸을 긍정하던 부치언니 호르몬에 빠져드네/ 딜도 차고 재미 보던 페미언니 아랫도리 아이 허전해”11

“뭐? 부치가 호르몬? 페미니스트가 딜도? 이게 너무 큰 금기인 거예요. 사람들도 이반지하라는 존재나 유머에 대해서 훈련이 안 돼 있었던 거죠. 일반 대중이 퀴어에 대한 이런 농담을 진짜라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어떻게 하냐는 말을 지금도 가끔 들어요.”

이반지하는 이런 우려의 목소리에 공감을 표하면서 꾸준한 설득을 이어나간다.

“약자들은 비웃음을 당하지 스스로를 비웃거나 남들을 비웃을 기회가 되게 없어요. 그리고 어떤 면에선 그런 우려가 사실이기도 해요. 왜냐면 이들이 여전히 사회에서 진지한 존재가 아닌데 웃음으로 먼저 유통이 된다면 정말 더 많은 사람들이 대놓고 이 사람들을 비웃어도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어떤 존재들은 정말 너무 취약해서 비웃기가 힘들어요. 근데 어떨 때는 억지로 비웃음으로써 너희가 이 비웃음을 감당할 정도로 강하다, 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거죠. 웃어도 될 만큼 강하다고요.”

“바람은 호모호모 햇살은 평등평등 / 하지만 내 작은 반지하 방 / 바람도 햇살도 Say goodbye”12

11
앨범 《이반지하》(2019) 수록곡〈오염〉 가사 일부
12
11번 각주와 같은 앨범 수록곡 〈(삐-)는 이반이다)〉 가사 일부

〈STAYING ALIVE HERE IN SOUTH KOREA〉 ©이반지하

이반지하의 욕

2021년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가 나왔을 때 나는 처음으로 제목에 ‘퀴어’가 들어간 문학동네의 책이라는 사실보다 목차에 버젓이 드러난 ‘존나’라는 말이 신선했다. 그의 욕을 읽고 듣다 보면 비속어가 얼마나 지극한 의미로 쓰일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레즈비언의 노래 〈그녀의 창문〉에서 ‘썅년’이라는 낙인의 단어조차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가슴을 치며 들어온다.

혐오의 손쉬운 수단이던 비속어는 이반지하의 말속에서 원래의 쓰임과 어긋나는 방식으로 쓰인다. “욕을 많이 하는 것 같지만 실은 이게 남용되지 않도록 굉장히 노력해요. 말하자면 정점을 팍 쳐줘야 되는 거거든요. 욕이라는 것은 그 날것의 에너지를 남용하면 음악에서는 ‘강강강강’ 처럼 되겠죠. 때문에 저는 (비속어를 사용할 때조차) 굉장히 많은 조율을 통해서 기술적인 말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저는 제가 말 기술자라고 생각해요.”

사실 이반지하 유머의 진짜 부작용은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데 있다. 생존자 유머를 알기 전과 후로 웃음의 역사가 나뉠 뿐이다. 어떤 숙고된 금기에 도전하여 뒤집어 버릴 때의 짜릿함. 이는 보통의 풍자 코미디에서 정치인을 까는 짜고 치는 도전보다 몇 수 앞선 웃음이다. 이 웃음은 조합된 웃음이 아닌 겪어낸 웃음으로서, 이반지하의 ‘예술가됨’, 예술 하려는 자 특유의 태도와 밀착된 것이다.

예술가 바디

그는 농구, 아프리카 댄스, 발레, 복싱 등 각종 운동에 항상 관심이 많다. “저는 그림도 글도 마찬가지인데 예술가 바디를 만드는 걸 되게 중시해요. 미술이고 퍼포먼스고 장르가 나뉘어 있지만 그건 사람들이 만든 거고, 결국은 제 몸 안에서 뻗어나가는 거거든요. 마인드맵처럼. 그래서 제 몸을 예술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을 훨씬 중요시해요. 어디로든 뻗어갈 수 있게 몸이 준비돼야 하죠.”

〈CLOWN WITH THE CROWN〉 ©이반지하

그림을 그리는 방식도 오랜 시간을 두고 그리는 것이 아닌 한순간에 그려버리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캔버스의 사이즈가 커질수록 더 강한 체력과 집중력이 요구된다. “최대한 캔버스와 나 사이에 장애물이 없기를 바라요. 떠오르는 것을 바로 옮기기 위해서 순간에 엄청나게 집중해요. 되게 빨리 그려요. 왜 빨라야 하냐면, 제가 좋아하는 말인데, 트라우마보다 더 빨리 달려서 트라우마가 도착하기 전에 붓을 그어버리기 위해서예요.”

학습된 편견이나 기술을 극복하는 방법도 속도에 달려 있다. “잘 그린 그림을 그리려는 게 아니라 나다운 거, 내 세계를 표현하려고 그림을 그리는 건데, 잘 그려야 된다, 라는 것은 옛날부터 배워온 거잖아요. 그래서 그것과 계속 싸우고 있는데 그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빨리 확 질러야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그림 그릴 때 투쟁적인 에너지가 좀 있어요. 빨리 그려서 최대한 날것을 좀 꺼내려고.”

“종이와 연필 사이에 뭔가가 개입하기 전에 재빨리 그어버리는, 너의 개입을 망쳐버리겠어, 라는 선언과도 같다.”13

대학 시절부터 그의 작업의 근본에는 일단 저지르고 본다는 정신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에 대한 대항 전시 《안티 아라키》(2003)나, 레즈비언을 소재로 한 한국 최초의 전시로 알려진14 《작전 L》(2005) 등은 성공은커녕 ‘모난 돌 정 맞을’ 게 분명한 상황에서 뜻 맞는 이들과 결과를 계산하지 않고 벌인 전시였다. 작년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입주작가로 선정된 뒤 기획한 〈라이브 드로잉 토크쇼 VIP〉15는 20년이란 세월을 지나는 동안에도 변치 않은 그의 작업 방식인 ‘속도’와 그의 장기인 ‘말’이 결합하여 커다란 시너지를 냈던 진화한 퍼포먼스이다.

13
10번 각주와 같은 책, 41p
14
서울시립미술관,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2022라운드테이블 3. 실패의 퀴어 예술”
15
〈VIP: Visiting Ibanjiha Professionally〉 Ibanjiha’s Live drawing performance talk show 이반지하 라이브 드로잉 토크쇼

퍼포먼스 〈VIP: VISITING IBANJIHA PROFESSIONALLY 2022〉

“왜냐하면 저는 둘 다 자신 있었거든요. 말을 하면서 작품 하나 완성해 내고, 그 중간 중간에 어떤 피드백이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림에 담아서 완성하는 것. 없었던 장르를 해보고 싶었고 그림이라는 가장 오래되고 보수적인 매체와 토크쇼라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싸구려 매스미디어를 합쳐보고 싶었어요.” 키보다 높은 캔버스에 빠르게 그림을 그려나가면서 자유롭게 질문을 받았다. 한 관객이 ‘입고 있는 바지 브랜드가 뭐냐’고 묻자, 캔버스 위에 브랜드 이름을 썼다. “다시 물감으로 덮었지만 여기 브랜드 이름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 관객들만 아는 거죠.”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데서 작가가 막 드로잉하고 있는데 ‘물감 얼마예요?’라고 물으면 되게 나쁜 질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만약 그게 어떤 디딤돌이 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저는 지금도 되게 뿌듯할 때가, 방송을 보던 사람들이 현대미술 이런 거 하나도 모르는데도 이반지하 드로잉 토크쇼에 오는 거예요. 또는 그림에 관심 없고 책만 읽던 람들이 이반지하 전시에 오는 거. 장르 간의 관객을 섞어버리는 것이 앞으로도 하고 싶은 것이고 되게 중요한 가능성이라고 생각해요.”

이반지하에게 예술이란 “타인의 세계를 보고 그걸 확장시키는 것”이다. 그렇기에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 “버티지 않으면 이걸로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의 예술만 남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고결하고 순결하게 버티지 말고, 추잡하게 버티셨으면 좋겠어요. 내 작품 헐값에 팔았다가 후회도 해보고, 영화라면 ‘나 독립영화만 할 거야’ 했다가 상업영화 가서 돈도 좀 벌어보고 막 타협했다가 그런 거. 추잡하게, 존나 지저분하게 버텨주시면 좋겠어요.”

이반지하에게 9월은 또 한 번 버텨내는 달이 될 것이다. 경주와 용인, 서울에서 북토크가 예정되어 있고 취약함을 주제로 한 2인전이 서울 종로구 d/p에서 열린다. 〈정상 가족 만들기〉 강연도 비수도권을 중점으로 하는 순회공연으로 만들고자 시도하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 사람들이 이반지하를 보러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역문화 흐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예술가는 “이반지하를 잘 활용하라”는 당부의 말을 전하고는 짐을 챙겨 총총 편의점으로 향했다.

“예술가로 사는 이상 인생은 개망신과 수치심의 연속일 것이다. (…) 하지만 그럼에도 그 짓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74p)

글 김주은
취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갈지자로 걸어지는 인생이다. 블랙 코미디의 웃음이 퀴어하기 때문에 좋아한다. 유머평론가.

영상 박서현 진행 임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