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실비 작가의 〈실재계 길목의 제단〉은 2018년 서울 합정지구 개인전에서 첫선을 보였고, 사진은 2020년 쾰른 멜랑주 개인전에서 재구성한 버전이다. 자본이 스스로를 불려나가고 기술 또한 이에 발맞춰 첨예하게 발달하는 만큼 우리는 신체적 감각과 유리된다. 또한 누가 우리에게 욕망을 불어넣는지, 그리하여 자신이 원하는 실체가 무엇인지 판별하기도 어려워진다. 이러한 혼곤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신체로 돌아오며, 대상에 마음을 투영한다. 숱한 사물이 대량생산되어 세계를 떠돌다가 나에게 다다라 복사되고 별다른 뜻을 덧입는다. 이 제단은 안과 바깥, 앞과 뒤, 몸과 마음, 가상과 실재 사이에 있다. 영상과 설치물에서 정화수를 떠 놓고 달에 비는 손, 의지로 쥔 주먹, 뽐내는 자세를 취한 손가락 등은 동떨어진 극단을 매개하는 표현으로 등장한다. 바라고 그리는 마음, 행위하는 의지야말로 이루지 못한 것, 닿지 않는 곳에 우리를 다시 잇고, 인간이게 한다.
김실비 Sylbee Kim김실비는 2005년 이래 베를린을 기반으로 서울을 오가며 활동한다. 영상을 중심에 둔 설치 작업을 주로 하고, 그 제작 과정에서 디지털과 물질 매체가 서로 뒤섞인다. 덜 파괴적인 생과 사의 조건으로서 다양한 존재가 교차할 수 있을 정치사회적 토양을 상상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미술이론·조형예술 예술사, 베를린예술대학교에서 미디어아트 마이스터슐러 학위를 취득했다. 쾰른 멜랑주, 프라하 네반 콘템포, 서울 인사미술공간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광주비엔날레, 국립현대미술관, 미디어시티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쿤스트페어라인 괴팅엔, 베를린 신 쿤스트페어라인 등지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독일연방문화재단, 가헌신도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베를린 시의회 등의 지원에 선정되었고 런던 가스웍스 레지던시에 참여하였다. 아시아인 최초로 베를린 미술창작자 협회 위원에 선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