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깃든 한옥』은 온지음 공방에서 처음 펴낸 책이다. 온지음 공방은 ‘과거와 현재가 온전히 만나 미래를 짓다’는 문구와 함께 과거를 계승하여 발전시키는 전통문화연구소이다. 2013년 6월 화동문화재단 부설 시설로 시작하였다. 우리나라 전통의 의, 식, 주를 각각 ‘옷공방’, ‘맛공방’, ‘집공방’으로 나누어 연구한다. 이 중 온지음 집공방은 한국예술종합학교 前 총장이자 건축가인 김봉렬 공방장과 네 명의 연구원이 함께한다. 이들은 건축과 문화재, 생활문화 등 공간에 관련된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전문가 집단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 볼 수 있듯 한옥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건축과 생활문화 전반의 연구를 기반으로 주거문화를 탐구하였는데, 현대인이 향유하는 생활상에 들어맞는 여러 공간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를 집필하였다. 한옥의 가능성을 다양하게 조명하고 나아가 보완된 형태의 현대한옥 주거문화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전통 건축에 담긴 지혜로움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온지음 집공방의 프로젝트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상적인 집으로서 한옥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다. 비록 오랜 시간 삶을 통해 쌓인 선조의 지혜를 통해 지어진 집이라고 할지라도, 현재는 도시환경이 주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옥의 원형을 연구하여 이를 현대생활에 접목시킨다. 『오늘이 깃든 한옥』을 통해 경주 배동 한옥, 반계 윤웅렬 별서, 아름지기 사옥 한옥 등을 비롯하여 총 13개의 프로젝트 사례를 제시하는 것이다. 각각의 건축물들은 한옥의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고 강점을 극대화하는 과정을 말한다. 기술과 공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설계된 한옥의 기능과 디자인은 보존의 대상임과 동시에 질적인 주거문화를 제공하는 전문적 건축 형식이다. 집은 삶을 담는 그릇이며, 집을 짓는다는 것은 어떠한 물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디자인하는 일이라는 건축에 대한 이념이 잘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도서는 온지음 집공방에서 개발된 기술과 노하우를 담고 있는데, 고유의 아름다움을 지키면서도 편리와 안전, 미감, 쾌적함을 한층 끌어올린 오늘날의 한옥을 담은 것이다.
『오늘이 깃든 한옥』은 한옥의 처음부터 끝까지 세밀하게 훑는다. 집이 지어지는 땅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좋은 땅과 경관은 무엇인가에 대한 사유부터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풍수지리로 익숙한 ‘터’에 대한 사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관통하는 지점이 있다. 좋은 산을 바라보고, 바람을 막아주며, 물을 얻기 용이한 곳이다. 좋은 땅에 지어진 좋은 집, 혹은 땅의 단점을 보완하는 건축물에 대해 논하기에 적절한 시작이다.
땅 바로 위로 쌓이는 것은 바닥이다. 바닥, 이를 위한 초석은 땅과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다. 땅과 근접하게 소통하는 시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초석을 위해서는 큰 구덩이를 파고 그곳에 지정 기초를 해야 하는데, 이 초석도 시간이 흐를수록 땅을 누르고 들어간다고 한다. 이는 한옥의 문제점인데, 기둥들이 똑같이 내려가면 집이 무너지지 않지만 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둥과 연결되는 구조체가 안정되어야 한다, 이는 목구조의 발전을 이루는 계기가 된다. 초석의 등장은 중력에 도전하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는 것이다. 땅과 가장 가까이에서 소통하며 그에 도전하고 성장에 이르는 과정은 한옥을 계승하고 보완하는 모습과 닮아 보인다. 상징적인 의미로서 ‘초석’은 어떤 일의 시작과 그 중요성을 뜻한다. 이는 초석의 본질이기도 하다. 근원적인 형태는 한옥의 본질로 보인다.
초석이 시작이라면 끝은 지붕이다. 한옥의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기도 하다. 현대화가 많은 부분에서 이루어진 한옥에서, 가장 이전의 모습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벽면이 전통적이지 않은 소재와 방식으로 지어져도 한옥임을 인식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현대화가 활발히 이루어진 덕이다. 그러나 지붕이 기와가 아니라면, 그 순간 한옥의 여부에 대한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기와가 없는 한옥은 한옥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기와는 현대 기술에 비해 필요성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건축물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 이는 한옥의 마지막 숙제이다. 기와는 당시 기능적 요구에 따라 시대의 기술을 기반하여 필연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건축에 있어 더욱 자유로운 디자인이 가능해졌지만 오히려 건축물의 정체성이라는 의문과 만나는 것이다. 건축가 스스로도 새로운 시도가 주저된다. 건축주를 비롯한 일반 대중을 설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옛것과 소통하며 단점을 보완하고 새롭게 도전하는 계승정신이 발휘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조금 더 세밀하게 파고들어 보자. 외부와 내부, 공간과 공간을 잇는 경계는 바로 ‘문’이다. 추위와 보완, 방음은 개선되어야 할 문제였다. 따라서 전통 창호의 미감을 유지하며 동시에 기능과 편의성을 늘리기 위해 창호를 개발해야 했다. 이는 온지음 집공방이 설계를 시작한 이래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던 부분이기도 하다. 디자인은 물론 편리함과 견고함을 겸비해야만 오늘날의 추세에 발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창호지 바른 문의 대체제가 필요한 순간이다. 국내 시스템 창호 전문 기업과 협업하여 한옥에 맞는 창호는 그렇기에 개발되었다. 현재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이는 계승을 통한 진화의 대표적인 예이다. 기존 전통 한옥에서 충족되지 않은 사용자의 수요를 해결하는 동시에 한옥의 품격과 정체성, 전통적 미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승, 발전 방식은 기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온고지신의 본질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한옥의 긍정적인 변화는 오늘을 넘어 내일을 바라보는 조화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마치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문처럼, 공간과 공간의 경계가 되는 문처럼 과거와 미래를 연결한다. 진척의 경계가 된다. 전통적 미와 편리성, 한옥의 의미와 주거의 기능을 연결하는 경계는 한옥을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정신과 닮아 있다. ‘문’의 상징과 실질은 본질과 맞닿는다.
『오늘이 깃든 한옥』은 건축물을 세밀하게 분석하며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킬 방안을 찾는다. 그렇기에 “한옥이란 무엇인가. 어디까지 한옥이라 할까?”하는 화두를 항상 안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해 김봉렬 건축가는 절대적이고 고정된 답은 없다고 말한다. 새로운 시도는 새로운 답으로 확대된다. 그 과정 안에서 더욱 편리해지고 새롭게 아름다워졌다. 그 근원에는 한옥에서 발견한 보편적 가치와 깊은 깨달음이 있다. 마치 초석처럼 남아있는 것이다. 그 위에는 기둥과 벽이 올라간다. 다양한 변화가 가능한 요소이다. 목재라는 재료와 구법은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 유리와 같은 근대적 재료가 올라가기도 한다. 그리고 다음으로 지붕이다. 기와가 올라간다. 이 역시 변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옥의 전통적인 미와 가치는 그대로일 것이다. 따라서 과거와 미래를 잇는 경계가 된다. 마치 문처럼. 문의 형태와 재료는 변화할 수 있으나 기능은 변화하지 않는다. 사람이 주거하는 공간이라는 기능이 변화하지 않듯이. 온전한 가치를 지닌 한옥은 더 이상 옛것이 아니다. 오늘의 건축, 나아가 내일의 건축이 된다. 한옥은 전통 건축이자 현대 건축이다. 그리고 미래의 건축이다. 영원한 현대건축이다.
2023년은 온지음 집공방의 10주년이다. 『오늘이 깃든 한옥』은 이를 기념함과 동시에 김봉렬 공방장의 퇴임을 기념하며 기획되었다. 지금 이 순간 쓰여진 책 안에는 콘크리트 건물이 즐비한 도심 안에서 빛나는 13개의 한옥이 담겨있다. 훼손된 마을의 질서를 복원하고 유형적 한옥의 보급을 시도한 돈의문박물관마을 한옥군, 정통 한옥부와 현대 건축 공간을 하나의 지붕으로 통합하는 데 성공한 동락당, 압도적인 현대 건축과 대비를 이루는 작은 한옥을 병치한 아름지기 사옥의 한옥과 원불교 원남교당 인혜원, 한옥에서 얻은 건축적 깨달음을 콘크리트 구조물에 적용하여 목조 기둥도 기와지붕도 없는 한옥 무중원 등과 같이. 이들은 모두 ‘한옥’이다. 한옥은 이제 더 이상 전통적 건축물만을 이르는 말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의 통합, 오랜 세월 동안 터득한 건축적 지혜, 내일을 바라보는 자세 모두를 포괄하는 단어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내일을 바라보는 건축물을 ‘한옥’이라고 하자. 오늘이 깃든, 그렇기에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건축. 한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