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2023 SUMMER45
사진 김경수

오늘의 가닥을 엮는
박인수

기나긴 시간 높다란 전통이라는 산을 마주하고 지금, 이곳의 춤사위를 만들어 내는 자. 국가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 전수자이자 전통예술원 연희과 교수인 박인수 교수를 만났다. 탈춤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탐구와 도전의 대상”이라고 답변하는 그는 오늘도 연희의 형식을 해체하고 가다듬는다. 그 속에서 움틀 새로운 예술을 위해서다.

어떻게 전통연희를 접하게 되셨나요?

제가 연희를 접하게 된 계기는 다소 독특합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한국의 전통과 전혀 연관이 없는 비보잉(B-Boying)을 췄는데요. 고등학교에 진학 후에는 특별활동 시간에 예술을 접할 기회가 많았어요. 그때 탈춤과 풍물을 접했고 이 밖의 여러 종목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연희에 매료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지금까지 연희 분야로 나아오게 된 것 같아요.

연희 종목 가운데 탈춤을 다루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좋아해요. 봉산탈춤은 한삼을 활용해서 춤사위가 매우 크거든요. 시원하게 무대를 채우는 모습에 매료되었죠.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봉산탈춤이 연극적으로 완성도가 높아요. 풍자하는 방법이나 이야기를 구성하는 흐름, 짜임새 등 여러 방면에서 애착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박사 과정 재학 중 봉산탈춤을 연구했어요. 이 과정에서 특히 역사적으로 봉산탈춤이 변화한 과정을 자세히 알게 되니 경외심이 들더라고요. 나아가 봉산탈춤을 통해 우리나라의 무형 문화를 전승하는 분들과도 더 깊이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 같고요.

전통예술원 연희과에서 예술사와 전문사 과정을 마치고 문화콘텐츠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이후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제가 지나온 전반적인 학업 과정부터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우리 학교 연희과에 입학한 일이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어요. 입학 전에는 작곡도 공부하고 탈춤도 추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방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런데 입학 후 우리 학교의 커리큘럼을 경험하니 제가 좋아했던 예술 장르가 대부분 전통연희의 종목 안에 스며들어 있는 거에요. 그 시절 학교에 계셨던 김덕수, 최창주 교수님 등 모두 정말 좋은 분들이었고요. 매일 온종일 학교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그 순간이 진심으로 행복했어요. 이후 학교에 더 오래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 학교 전문사에 입학했습니다. 전문사에서는 제가 관심이 있는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전통연희에 접목해서 콘텐츠화하는 방안을 연구했어요. 나아가 전통연희에 재미를 더하고 더욱 널리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의 관심사를 알고 계셨던 이동연 지도교수님께서 문화콘텐츠학과를 추천해 주셨어요. 그래서 문화콘텐츠학과에 가게 되었죠. 그곳에서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며 제 전공에 이론적 측면을 연계해서 콘텐츠화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이러한 방법을 실행하려고 보니 전통연희에 대한 연구가 매우 부족한 거예요. 특히 탈춤 분야를 조사해 보려 했지만 정보가 거의 없더라고요. 가령 제가 찾아본 전통연희와 관련된 자료 중 탈춤에 대한 정보는 춤사위를 소개하는 정도였어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저는 전통연희의 원리를 정리하고 형식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성오광대 문둥북춤의 서사구조와 춤사위 구조 연구」, 「한국 사자춤의 연희성 강화방안」, 「봉산탈춤의 효과적인 전승을 위한 기본무 개발방안 연구」 등과 같은 논문도 등재했고요. 앞으로도 전통연희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연구를 지속할 생각입니다.

2022년 러시아 모스크바 공연 당시 봉산탈춤 추는 박인수 교수

근래 연구하고 계신 주제나 진행 중인 작품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첫 번째로, 인물 연구의 일환으로 최경명 선생님을 살펴보는 중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의 말뚝이와 취발이 기예능 보유자셨는데요. 탈춤뿐만 아니라 북도 잘 치셨다고 해요. 게다가 현악기 명인이셨고, 관악기 중 대금도 굉장히 잘 연주하셨다고 합니다. 동시에 서도소리의 명창이시기도 했고요. 하나의 종목을 잘하기도 어려운 데 다양한 방면으로 뛰어난 분이었어요. 이런 훌륭한 예인들을 탐구하고 자료로 정리하고자 인물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올해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돔무지키 극장으로부터 초청받았어요. 작년에 저희가 러시아에서 ‘섞어잽이’를 공연했는데, 그곳에 계신 교수님과 문화원 관계자분들이 인상 깊게 보셨나 봐요. 그래서 올해 돔무지키 극장에서 ‘섞어잽이’를 중심으로 한 공연을 올릴 예정입니다.

세 번째로, 학생들과 함께 기존 목중춤을 기반으로 새로운 춤을 만들어 보려 합니다. 연희 종목은 여럿이 하는 예술이다 보니 개인이 추는 춤이 매우 적어서 이러한 영역을 넓히려 노력 중인데요. 그래서 봉산탈춤과 강령탈춤, 은율탈춤과 같이 여러 지역의 탈춤을 엮어서 학생들과 함께 춤을 만들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물놀이의 형식을 풍부하게 만들어 보려 학생들과 연구하고 있습니다. 제가 탈춤을 전공한 교수지만 이전에는 풍물 공연도 자주 했어요. 제 생각에 사물놀이가 오늘날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지만, 형식이 다소 규격화되어 있고 레퍼토리도 많지 않거든요. 그래서 사물놀이가 뭇사람들에게 신의 음악이라는 평을 받는 귀한 장르인 만큼 기존의 형식에서 더 다양한 방법으로 사물놀이를 구성할 수 있도록 힘쓰는 중입니다.

‘섞어잽이’라는 춤을 만들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제가 2019년도에 전통예술원 교수로 부임했습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발생했던 시기라 감염병 유행이 잦아든 2021년도에 제가 기획한 첫 정기발표를 했는데, 그때 선보인 춤 중 하나가 ‘섞어잽이’입니다.

연희과에서 정기발표를 준비할 때 가끔 하나의 지역을 선정하여 지역의 다양한 연희를 종합적으로 학습하고, 이를 기반으로 작품을 제작하곤 합니다. 2021년에는 경상도 탈춤을 주제로 했고요. 준비하는 과정은 세 갈래로 살펴볼 수 있는데요, 경남권에 있는 6개의 탈춤뿐만 아니라 동래학춤까지 함께 배운 뒤 전통을 충실히 재연하였고요, 학습했었던 모든 춤을 섞어 재구성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전통 탈춤에 다른 장르를 얹어서 창작해 보는 것까지 시도했습니다. 그 중 학습했었던 모든 춤을 섞어 재구성하여 만들어진 작품이 ‘섞어잽이’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한 학기 동안 강사님들을 모셔서 학생들이 6개의 탈춤과 동래학춤을 배웠어요. 그리고 학생들에게 춤사위를 상하체 기준으로, 장단별로 해체하고 이를 기록하게 했습니다. 이후 워크숍을 열어서 춤사위를 해체한 기록을 바탕으로 직접 춤을 만들도록 했고요. 이 과정 중에 코로나-19 유행이 심해져서 연습할 때 한 공간에서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없게 되자 전체 인원을 네 팀으로 나누었습니다. 이때 각 팀에 제가 연구했었던 예인들의 즉흥연행법과 춤길을 공유하였습니다. 그리고 춤사위의 연결을 화성악의 코드진행처럼 쉽게 볼 수 있도록 4가지의 유형으로 구분하여 알려줬습니다. 그 결과로 한 팀당 2~3분의 춤이 만들어졌는데요, 학생들이 워낙 다채롭게 춤을 조합하다 보니 저희가 만든 춤사위가 당시 학습했었던 춤사위 수보다 많더라고요. 그 중에서 대표적인 춤을 고른 뒤, 제가 분석했던 고성오광대 춤길에 학생들이 고른 춤사위를 얹었어요. 이후 고성오광대의 춤길이 보이지 않게 여러 지역의 춤길과 즉흥형식을 추가하는 과정을 거듭해서 ‘섞어잽이’를 만들었습니다.

섞어잽이

‘섞어잽이’는 “공연 현장, 관객 그리고 연행하는 연희자에 따라 춤의 사위와 순서등의 구성이 매번 달라”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즉흥성을 가미한 형식에 관심을 갖고 만들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비단 ‘섞어잽이’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즉흥성이 살아있는 춤을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러한 생각은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 무대를 보고 선명해졌는데요. 제가 원래 비보이였고, 장르 가릴 것 없이 춤을 좋아하다 보니 대중음악과 무대를 주욱 봐왔거든요. 그런데 다이너마이트 무대는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왜냐하면 방탄소년단도 고정된 안무를 정하고 그 안에서 즉흥적인 동작을 한 뒤 다시 정해진 안무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며 무대를 채우더라고요. 그런데 이는 전통연희에서 자주 해온 형식이에요. 그 순간 전통연희에서 점점 힘을 잃어가던 성질인 즉흥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즉흥의 장점은 규격에서 벗어난 동작들을 다양한 각도로 확장하여 춤사위를 풍부하게 하고, 작품 안에서 자유롭게 스토리텔링을 하기도 하며, 그 깊이를 깊게 만들기도 한다는 점이에요. 또한 즉흥구간이 많을수록 실수에 대한 부담감이 줄고 본인의 개성을 담을 수 있어 춤을 더 즐길 수가 있어요. 그런데 요새는 전통연희의 춤사위가 규격화되고 정형화되는 추세거든요. 이러한 흐름이 저는 오히려 시대착오적이라고 느꼈고, 즉흥성을 돌려오고 싶었어요. 그 시도로 가장 먼저 만든 춤이 ‘섞어잽이’입니다. 춤을 자세히 보시면 공연마다 춤사위가 달라요. 일부러 매번 춤사위 유형에 맞춰 조금씩 변주한 무대를 만들려고 해요. 10년 이후에는 지금의 형태가 거의 없어질 정도로 변화가 많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춤이기 때문이에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탈춤이 등재되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연관된 많은 행사에 ‘섞어잽이’가 초청되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2022년 12월 초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탈춤이 등재되었어요. 덕분에 탈춤과 관련된 많은 행사가 생겨났고, 국립무형유산원과 같은 단체에서 각각 주최하는 공연들에 ‘섞어잽이’가 초청되었어요. 그뿐만 아니라 세계탈문화예술연맹(IMACO)에서 주최하고 전 세계에서 참여한 탈춤 국제 심포지엄의 마지막 축하 무대를 ‘섞어잽이’로 장식했습니다. 이때 ‘섞어잽이’가 한국 탈춤 중 춤의 형식을 분석하여 구성한 최초의 사례로 소개되었어요.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게 되어 감사하고 기쁩니다.

섞어잽이
탈춤LAB 공연

한예종에서 지도하시는 연희 종목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전통예술원에서 예술사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탈춤연희실기>, 4학년 학생은 <전통연희실기의 통합적 이해>를 지도하고 있어요. 특히 저는 <탈춤연희실기> 수업에서 봉산탈춤을 가르치는데요, 이때 학생들이 자신의 예술적인 표현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나아가 학생들은 1, 2, 3학년 교과 과정 동안 전반적으로 탈춤, 무속, 풍물 등 모든 전공과목을 배우는데요. 4학년이 되면 <전통연희실기의 통합적 이해> 수업에서 그동안 배운 내용을 토대로 학생마다 각기 다른 작품을 만듭니다. 저는 학생이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창작할 수 있도록 이끄는 편이에요. 수업에서 구체적인 연구 목표를 설정하거나 워크숍을 진행하는 등 창작을 위해 시도하는 모든 과정을 포용하고요. 예를 들면 자신이 관심 있었던 연희의 음악적인 부분이나 춤적인 부분을 모아서 새롭게 제작하거나 인형극에 탈춤, 무속장단에 사자춤제작 등 서로 다른 종목을 접목하여 본인만의 예술을 펼치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리고 전문사 학생을 대상으로 <연희예술연구방법론> 수업을 하는데요. 가장 공을 많이 들이는 수업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전통연희 분야의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우리 학교 예술사 등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 과정인 전문사 과정으로 오는 학생 중에 자신만의 시각이 뚜렷하고 사유가 깊은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최대한 그들이 연구해 온 내용을 논문으로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에 전지환 학생이 「꽹과리 기보법 연구」, 방성혁 학생이 「김용배 북 개인놀이의 연행 및 연주법 고찰」, 김지훈, 노병유, 이주원, 장진규 학생과 「탈춤 춤사위의 창조적 계승을 위한 소고」 논문도 올렸어요. 앞으로 전문사 학생들과 함께 완성한 연구 논문들을 기반으로 향후 예술사 커리큘럼을 보강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종종 학생들에게 연락해서 정규 수업 외 수업을 하는데요. 가령 목중춤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들고자 할 때 정규 수업중에 목중춤을 좋아하는 학생이 보이면 연락해서 함께하거나 사물놀이의 형식에 관해 관심 있었던 학생을 모아서 연구하기도 합니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만나기 때문에 오히려 정규 수업보다 더 자주 모이는 것 같아요. 알짜배기라 해야 할까요, 좋은 작품과 연구는 학교 안팎에서 자유롭게 이뤄질 때 생겨나더라고요.

정영두 안무 탈춤을 기반으로 제작된 한중일 합작 공연 <류류 (流留)>

연희를 전수하는 교육자로서 중시하는 측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연희가 전통예술을 보존하는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연희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라 생각해요. 학생들이 전통연희의 전승자가 되는 것도 의미 있지만 기존의 틀을 깨는 시도 또한 가치 있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다채로운 경험을 추천해요. 저는 전통연희에서 하나의 종목만을 숙달하는 것만이 최선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오히려 다양한 것들을 다루고, 배우고, 느껴봐야 더 깊이 있는 창작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학생들의 독창성과 창의성이 자라날 수 있도록 지도하는 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시야를 넓게 가지고 자신만의 예술을 깊고 견고하게 구축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작년에 열린 탈춤 국제 심포지엄에서 한국 한국 탈춤의 역사 문화적 의미와 전승 방향에 대해 앞으로 “탈춤의 연행 원리를 찾는 것이 목표”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이에 관한 자세한 말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한때 약 2년간 작곡을 공부했어요. 결과적으로 작곡을 업으로 삼고 있지 않지만 후에 연구했었던 내용들을 살펴보니 탈춤의 연행 원리를 서양 음악의 체계와 비슷한 방식으로 정리하고 있더라고요. 가령 춤사위의 상하체를 소박까지 해체하여 조합하는 방법은 음악에서 선율을 만드는 부분과 같고요. 춤길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춤의 순서를 거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정리하였고요. 춤사위의 유형을 구분하여 사위끼리 서로 어울리게 붙이는 방법은 화성악에서 화음이 얼마만큼의 하모니를 이룰 수 있는지 가늠하는 것과 비슷했어요.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작품의 형식과 해체에 주목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동안 기존의 춤사위를 해체해서 각 요소를 분석하고 이를 형식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정리했어요. 앞으로도 전반적으로 탈춤에 있는 요소들을 정리해서 다른 장르와의 융합을 수월하게 하고 더 다양한 창작물이 세상에 나올수 있게 만드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러시아 모스크바 돔무지키 공연

전통예술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이를 콘텐츠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계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방법으로 어떤 실천을 하고 계시는지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1998년도에 연희과가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예술원에 국내 최초로 만들어졌어요. 그 이후로 여러 대학교에서 생겨났는데 일부 학교는 유지되지 못하고 사라졌어요. 앞으로 전통연희 학과들은 연희 관련 커리큘럼을 연구하고 서로 공유하여 상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를 조금이나마 실천해보고자 노력 중이에요. 그 일환으로 세한대학교, 동아방송예술대학교에서 탈춤을 가르치는 교수님들과 교류를 시작했는데요, ‘섞어잽이’를 1, 2학기에 걸쳐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으로 만든 뒤 무료로 공유했어요. 지난 겨울방학에는 두 학교 선생님들께서 ‘섞어잽이’를 모두 배우고 가셨습니다. 올해 해당 내용으로 수업하고 계시다고 알고 있어요. 2학기에 ‘섞어잽이’의 연행 원리를 배우면 그 학생들도 자신만의 춤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이렇듯 학교에서 연구된 커리큘럼을 모두 배포하기는 어렵겠지만 일부라도 최대한 공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다른 학교의 학생들도 새로운 춤을 배우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요? 다른 학교 교수님들이 그 학교 학생들에게 “섞어잽이는 너희 또래 학생들이 만든 춤이야. 그러니 너희도 할 수 있어.”라고 하니 벌써 직접 춤을 만들어 보려는 학생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7월 국립국악원에서 공연이 있어요. 세한대학교와 동아방송예술대학교 학생들, 전문 연희자분들, 그리고 우리 학교 학생들을 포함하여 약 100명이 한데 모여 ‘섞어잽이’를 출 예정입니다. 저는 전문 연희자분들을 섭외할 때 그분들께서 이전부터 ‘섞어잽이’를 배우고 싶었다고 이야기하셔서 굉장히 감격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널리 공연되는 연희 작품 중 젊은 연희자, 학생들이 만든 작품이 거의 없어요. 반면 다른 예술 분야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10대부터 70대까지 그 이상의 연령층이 고루 작품을 만들고 그 작품을 서로 향유하잖아요. 그래서 20대 학생들이 만든 ‘섞어잽이’를 저희만 누리지 않고 다양한 분들이 접하고 추는 일이 참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조만간 ‘섞어잽이’를 저작권 등록할 예정입니다. 개인이 소유하기 위함은 아니고요, 저작권의 조항에 ‘국민 누구나 향유할 수 있다.’라는 문구를 넣으려고요. ‘섞어잽이’는 일반인 누구나 출 수 있는 춤이 될 거예요. 그리고 만약 누군가 이 춤으로 공연할 때 춤을 제작한 원리를 기반으로 본인의 개성이 담긴 춤사위가 30% 이상 된다면 그분의 이름을 올려 가령, 홍길동의 ‘섞어잽이’라고 공연해도 좋습니다. 단 공기관에서 이 춤을 공연하고자 할 경우 저작권료 100원을 받을 겁니다.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그 가치를 가볍게 여기고 싶지 않아서요.

최근 전통예술원에서 추진하는 예술한류 선도사업을 통해 해외 공연을 하신 것으로 압니다. 해외의 반응도 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해외에서 열리는 다양한 축제에 가면 우리나라의 전통연희 종목은 매번 1, 2위를 다툽니다. 연희 무대가 워낙 신명 나기도 하고, 에너지가 굉장하기 때문인데요. 작년에 해외에서 공연했을 때도 반응이 어마어마했습니다. 관객분들께서 박수갈채를 보내주시고 한참을 자리에서 떠나지 않더라고요.

예술한류 선도사업은 아니지만 저희가 작년 12월에도 러시아에 공연하러 갔어요. 그 공연에 참석했던 현지 학교 부총장님과 교수님들께서 무대를 보시고 저희를 다시 초청해 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그때 강연도 함께 했는데, 그분들이 강연을 듣고 러시아에 한국학과를 만들겠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러시아 모스크바에 학과 개설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물론 저 혼자만의 노력은 아니고 많은 분께서 이미 상당한 공을 들여주셨더라고요. 축하할 만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해외에서 전통연희를 향한 관심은 굉장히 뜨겁습니다.

오늘날 전통연희로 세계에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으신가요?

예전에 일본에서 독도 영토권을 주장했을 때 길가로 나가 탈춤으로 이를 비판하는 춤을 만들어 추곤 했어요. 한국 무용을 전공했던 저희 어머니께서도 무용작품으로 역사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어요. 5ᆞ18 민주화 운동 10주기 때 <5월에서 통일로>라는 작품을 만들어 군사정권 시절임에도 광주로 직접 가서 공연도 했고, 추후 영화로 만들어졌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무용작품을 만들어 교육계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역사 발전과 함께하는 춤”이라는 표어를 내세우셨거든요. 이를 계승해서 “역사 발전과 함께하는 연희”를 지향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전통연희에서 ‘쾌’(유쾌, 불쾌, 쾌활, 쾌청 등)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하나로 콕 짚어 말하기가 어렵네요. 어떤 춤은 유쾌하고 어떤 춤은 불쾌하기도 하죠. 탈춤은 그 감흥을 다시 거뜬히 풀어내서 유쾌하게 만들거든요. 상쾌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한편 탈춤을 통해 양반 계층을 비판할 때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 이야기하면 통쾌할 때가 있어요. 그 때문에 하나의 쾌가 아닌 여러 서사와 감흥이 공존한다고 생각하고요, 이것이 탈춤의 매력이지 않나 싶습니다.

영상 최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