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를 방문하는 것은 간만이다. 특히, 공연을 보기 위해 대구를 방문한 것은 생애 처음이다. 매년 대구에서 열리는 국내 최대의 뮤지컬 축제인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이하 딤프)’을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딤프는 매년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으로 개최되는 국제적 행사로, 아시아 최초의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이라는 의의도 가진다. 문화 인프라, 특히 공연 문화가 수도권에만 집중되어 있는 현재 무척 소중한 지역 페스티벌이기도 하다.
이런 뜻깊은 기회에 반가운 공연이 등장했다. 바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생들의 창작극이 제17회 딤프 창작지원작으로 선정된 것. <Town of 해방> (이하 <해방>)은 연출과 재학생 이혜림 작/연출, 이화여자대학교 작곡과 출신인 노경민 작곡가를 필두로 연기과 박준영 배우, 연기과 한상훈 배우, 무대미술과 김정애 조연출, 연출과 윤경연 드라마터그, 예술경영과 김민경 기획 등 한예종 출신 인재들의 저력을 보여준 뮤지컬이다. 특히나 대부분의 창작지원작은 기성 작가들이 주로 수상하는 퀄리티 높은 장임을 고려했을 때, <해방>의 지원작 선정은 쾌거라고 말할 수 있다. <해방>은 크게 세 가지의 테마를 다룬다. 용산 4구역 철거현장 화재 사건(2009년 용산 참사), 드랙퀸, 그리고 외계인이다. 언뜻 보기에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세 키워드는 ‘방외자’ 와 ‘이방인’ 이라는 키워드로 집약된다.
‘남겨진 자들을 위한 마지막 쇼, 타운 오브 해방.’
공연은 이 문구를 전면에 내세우며 소수자들을 화두에 올린다. 주인공 예성은 2009년, 용산 참사로 아버지를 잃은 고등학생이다. 법적 성별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아버지의 납골당 근처인 이태원 드랙쇼에서 드랙퀸 미미를 보고 난 뒤 남몰래 드랙을 꿈꾼다. 그리고 여기 한 외계인이 있다. 외계인 마르타는 ‘유인’이라는 지구식 이름을 쓰며, 10년 전 지구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고향 친구 구르브를 애타게 찾고 있다. 마르타는 보고 만다. 예성이 신은 보라색 스타킹, 자신과 똑같은 보라색 피부를.
참사 유가족이자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예성과 유일한 동족을 잃고 인간의 껍질을 쓴 채 타인의 땅을 헤매고 다니는 유인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 지구에서 둘은 미아 상태다. 예성은 반장이며, 의대를 지망하는 모범생이다. 겉만 봤을 때는 사회의 주류에 속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립스틱과 스타킹을 숨기고, 사망한 아버지의 일기를 몰래 읽지만 결코 티내지 않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다. 예성의 어머니는 신경질적이고, 아버지의 기일이 되면 상태가 더욱 나빠지므로 예성은 그 모든 슬픔을 온전히 혼자 견디고 스스로를 감추어야만 한다. 한편 유인은 마르타라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거대했던 몸도 인간의 외피에 구겨 넣었다. 유인의 몸에 남은 행성 엠의 흔적인 보라색 팔은 지구인들에게 피부병, 즉 병리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유인은 피부병 때문에 손가락질받으며 ‘찐따’라고 불린다. 이것은 퀴어에 대한 사회의 오래된 인식과도 같다. 인간이 태생적으로 가진 다양성을 이질적인 것으로 낙인찍고 치료 혹은 계도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다. 그래서 둘의 첫 넘버는 이렇게 끝난다.
‘이상한 사람이 되면 안 돼. 다르다는 걸 들키면 안 돼. 숨겨야 해.’
그렇게 살던 둘에게 서로의 존재가 얼마나 새로웠을까. 유인은 예성이 10년 전에 실종된 외계인 구르브라고 굳게 믿는다. 그리고 이태원의 저 높은 공원에서 떨어진다면, 우주로 갈 수 있다고 말한다. 죽음을 통해 해방을 얻자는 외계인의 말은 순수한 의도를 담고 있기에 그 무엇보다 반짝인다. 블랙홀 근처의 별들처럼. 그래서 예성은 구르브인 척을 한다. 이것은 단순한 역할극이 아니라 예성이 예성으로서의 인격적인 죽음마저도 택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예성은 자신을 괴롭히던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되고자 한다. 그러나 죽음을 생각할 때 사람은 실존의 의미를 찾는 법. 예성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드랙쇼를 열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예성과 유인, 인간도 외계인도 아닌 두 존재는 이태원에서 마지막 쇼를 준비한다. 드랙은 젠더 수행을 전복시키는 행위다. 남성이 여성의 옷을 입고, 여성이 남성의 옷을 입는 크로스드레싱(crossdressing)인 드랙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정상성을 위배하는 위반 행위(breaching)에 속한다. 예컨대 수염이 난 미미가 화려한 레이스 치마와 번쩍이는 귀걸이를 꼈을 때 미미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존재가 된다. 즉 드랙은 성별 이분법에 갇힌 외모의 규격을 깨트리고 전복시킴으로써 이원론적 사회규범을 교란시킨다. 이렇듯 드랙은 지배적 질서 및 이성애 중심주의와 다수자들로부터 배제된 제3의 존재들을 조명시킨다.
이러한 드랙은 퀴어성을 떼어 놓고 설명할 수 없다. 예성과 유인은 퀴어적 존재이다. 퀴어(Queer)는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단어로 본래 ‘이상한’이라는 의미를 가진 비하적 표현이었다. 하지만 그 낙인은 새로운 정체성이 되었다. 퀴어와 드랙은 이미 뮤지컬에서 각광받는 소재 중 하나지만, <해방>의 특징은 이것에 에로스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해방>은 사랑이라는 소재보다 정체성 그 자체에 집중한다. 예성은 드랙퀸이긴 하지만 동성애자로 표명되지는 않는다. 예성은 범성애자일 수도, 무성애자일 수도 있다. 퀴어는 그 모든 것이며 이는 유인도 마찬가지다. 유인은 ‘사랑이 금지된 행성 엠’ 출신의 외계인으로, 이민자와 무성애자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외계인을 뜻하는 Alien이 이국 문화와 불법 체류자 등 이질적인 것을 말할 때 사용된다는 것을 떠올리면 더욱 의미심장하다. 예성은 집에 있어도 집에 갈 수 없는 미아이고, 유인은 우주적 디아스포라인 셈이다.
퀴어는 규범의 안정성에 균열을 내고 질문을 제기하는 섹슈얼리티의 실천, 그리고 그로부터 탈중심화되는 정체성의 효과, 외부성(Outness)을 지칭한다. 1 여기서 <해방>은 용산 참사를 통해 제도와 주류 사회에서 외부로 밀려난 노동자들까지 조명한다. 노동자의 아들 예성은 주류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의대를 목표로 하지만 기실 그것은 예성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속박과 거짓말이 되어 삶을 포기하게 만들 뿐이다. 그리하여 <해방>은 가시화를 시도한다. 흔히 연기와 쇼를 하는 행위에 ‘페르소나’, 가면을 쓴다는 표현을 사용하고는 한다. 그러나 예성에게 보이지 않는 가면은 사실 ‘예성’으로서의 삶이다. 유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유인은 가짜고 마르타는 진짜다. 유인에게는 마르타라는 이름이라도 존재하지만, 예성은 또다시 구르브라는 가면을 쓰고 자신을 표현할 고유명사를 잃는다. 그래서 예성에게 드랙은 ‘또 다른 자아’같은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의 표현 그 자체이다. 그 어떤 이름도 붙일 수 없는, 예성도 구르브도 아닌 드랙으로서의 모습. 그 환락과 교란의 공간에서 무대는 하나의 탈의실이 된다. 학생답지 못한 일탈 행위로 보이는 드랙쇼가 사실은 사회적 제약과 한계를 넘은 자아실현의 장이 되는 일종의 초월성마저 지닌다. 그곳에서는 지구인과 외계인의 구분이 없다.
‘구분 없는 세상’을 무대 위에 표현하는 것은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존재의 가능성과 정당성을 공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 이혜림은 용산 참사가 광주의 또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고 밝혔다. 용산 참사는 하나의 전쟁이다. 외계인 구르브는 10년 전, 이 전쟁에서 스러져간 사람들을 구하고 운명을 바꾼다. 그 대가로 구르브는 소멸, 죽음에 이르지만 그 죽음은 불씨를 낳는다. 구르브를 기억하는 마르타가 있고, 구르브로 인해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었던 예성이 있다. 이 둘이 함께 만든 무대는 지구인도 외계인도 핍박받지 않는 유토피아다.
<해방>은 이처럼 비죽음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구르브를 통해 ‘사랑’에 대한 본극만의 관점을 제시한다. 이제는 너무나 오래된 텍스트인 플라톤의 <향연>에서 사랑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얻어 조화를 이루려는 것이며, 이러한 논조는 대표적인 드랙 뮤지컬 <헤드윅>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된 바 있다. <해방>은 <향연>에 등장하는 또 다른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죽음의 반대말은 사랑이라는 것. 구르브는 사랑이 금지된 행성 엠에서 사랑을 하고 싶다며 지구로 떠난다. 그는 지구를 사랑했다. 그래서 마르타는 ‘우주의 가장 깊은 곳은 사랑이 시작되는 곳이야’ 라는 말로 구르브를 기억한다. 그리고 예성과의 관계를 통해 깨닫는다. 구르브가 어째서 사랑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는지. 구르브의 사랑은 필리아(philia)에 가깝다. 필리아는 상대가 잘 되기를 바라는 순수한 바람이 쌍방향적으로 인지되는 상태이다. 이 마음을 통해 상대방은 곧 또 하나의 내가 된다. 그러므로 구르브가 인간의 운명을 바꾼 것은 자신의 운명을 바꾼 것과 다름없다.
이 필리아의 불씨가 예성과 유인의 관계에서도 피어난다. 예성은 유인의 말을 통해 구르브의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어찌 보면 무용하고 불편한 것을 통해서만 살아있음을 느꼈을 것이라고. 그래서 그들은 무용하고 무가치한 드랙쇼를 한다. 그 과정에서 둘은 연대 효용성을 가진 친족에 가까운 사이가 된다. 보편적으로 드랙 서사에서 에로스적인 연인 관계가 등장하는 것과 비해 이들은 보다 근원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보이는 것이다. 이 사랑은 특정한 대상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삶을 포괄하는 보다 큰 세계와 연결시켜주는 관계의 힘이다. 2 예성과 유인은 지구와 엠을 뛰어넘은 포괄적 우주, 드랙이라는 자신들만의 우주에 접근함으로써 고통을 재인식한다. 니체는 고통의 의미를 깨달은 자만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예성의 죽음을 막고 지구를 떠나려는 유인의 대사에서 드러난다. 유인은 레몬의 씁쓸하고 달콤한 맛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이상한 건 이상할 뿐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거. 너를 알고 모든 게 달라졌어. 그러니까 우리 즐기자. 끔찍한 세상이라도.’
극의 막에 다다라서 예성과 유인은 고통을 감내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닌, 그저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외적 자아와 내적 자기가 일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스스로의 모호한 존재를 규명할 수조차 없는 상태에서, ‘규명이 필요 없는’ 교란의 장을 통해 안정과 진정한 해방에 이른다. 그리고 서로의 존재증명, 서로의 목격자가 되어 주는 것이다.
드랙쇼를 하기 전까지 예성과 유인은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서로를 통해 예성은 새로운 이름을 얻고, 마르타는 유인으로서의 삶에 처음으로 의미를 갖게 된다. 한 외계인과 어느 노동자. 피부병 환자와 보라색 스타킹을 신은 모범생. 짧은 머리에 반짝이는 스팽글. 검은 우주와 보라색 행성. 이 모든 이질적인 것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내는 조화. <해방>은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협화음이다.
참고 문헌
1.
주현식, <퍼포먼스 트러블 : 퀴어적 전환과 퀴어 공연미학> , 한국연극학회, 한국연극학, Vol.1 No.68, 2018
2.
이상범, <참된 자기되기의 여정 : 헤드윅과 성난 1인치>, 한국니체학회, 니체연구, 제31호, 2017
3.
Geoffrey Yau, <이태원의 드랙퀸들 –젠더 정체성과 젠더 수행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2019
4.
노서영, <하위주체의 몸 정치성 – 헤드윅과 벨벳골드마인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