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2023 SUMMER45

영혼으로 하나의 음악을 만드는 순간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알아들을 수 없는 타국어로 베토벤 페스티벌 시작을 설명하는 듯 말하고 있고 기자와 관계자들, 그리고 빳빳하게 잘 다려진 것 같지만 오랜 여행의 자국이 남아있는 턱시도를 입은 사람들과 악기를 든 학생들이 긴장감이 묻은 서로의 만담을 주고받다 무대 위로 올라갑니다. 이제 혼자 남아 이 비현실적인 듯 흥분과 긴장, 그리고 그런 약간의 불쾌가 담긴 긴장감 위에 쌓여질 황홀함을 기대하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1등을 하였던 쇼팽 국제 콩쿠르가 열리는 바르샤바 필하모닉홀에 서는 상상은 수도 없이 했었지만 만석으로 가득 채워진 객석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올라 황홀함에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랄까 비현실감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아니아니 이런 감격에 묻혀 있을 시간은 생략하고 지휘자가 들어오면 짧은 인사를 하고 나서 생기는 정적 사이에 그날의 연주가 결정이 됩니다. 이 순간이 1시간 30분~2시간 사이 휘몰아치는 모든 순간들을 결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정한 쾌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죠. 모든 프로그램이 꿈같이 지나가고 드디어 마지막 피날레인 펜데레츠키 심포니가 무대에 오릅니다.

펜데레츠키 코리안 심포니. 이 곡은 한국 정부가 한국 광복 50주년을 기념하여 폴란드 작곡가인 펜데레츠키에게 위촉한 곡으로 한국과 폴란드 모두에게 아주 의미가 깊은 곡입니다.
펜데레츠키 코리안 심포니는 조화롭지 않은 리듬과 화음 그 사이에서 조화로움을 찾아낼 때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가 있는 곡으로써 순간순간의 우연함과 불쾌감이 이벤트처럼 찾아오는 것이 저에게는 인생의 쾌감을 느끼게 해주는 매우 모순적이면서도 매력적인 곡입니다.

이 펜데레츠키 곡을 준비하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요. 준비과정부터 연주를 끝마치는 순간까지 정말 많은 고생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가지 고생을 말해보자면 코리안 심포니 중간에 펜데레츠키가 한국을 위해 작곡을 한 만큼 특별히 편종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데 이 편종은 한국 전통악기로 거대한 16개의 종이 매달려 있는데 폴란드에서는 구할 수 없기 때문에 학교에서부터 시작해서 폴란드에 가져가기까지도 굉장히 힘들었고, 폴란드에서도 바르샤바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동하는 순간순간도 들고 다니면서 이동하는 모습이 굉장히 고되어 보였습니다.
모든 곡이 다 각자의 어려움이 있고 까다로운 부분들이 있지만 펜데레츠키 같이 악보 자체가 익숙해지기 어려운 노트로 가득차 있는 곡을 연주할때면 마치 아주 높은 산을 등산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것도 길이 잘 닦여 있지 않은 아주 험난한 산 말이죠. 이 산을 밑에서 올려다 보면 와 언제 저 산을 다 올라 갈수 있을까 하고 눈에 보이는 외형에 겁을 먹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며 등산하게 됩니다.
펜데레츠키 곡 자체를 공부할 때에도 그렇지만 이 곡을 처음으로 무대에 올려 연주하게 되는 첫 순간 전에도 그런 마음가짐입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곳곳에 숨어 있는 함정에 빠져 뒤엉켜서 완전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거든요.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를 해도 연주 중에 함정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그런 순간에 항상 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 또한 악장의 역할이죠.
이렇게 무대에서 처절한 피를 흘리며 싸우고 더 격하게 싸우며 청중들 앞에서 피와 열정을 토해내며 한 발 한 발 디딜 때, 또 그 발자국들을 진지한 마음으로 바라봐주는 관객들의 에너지를 얻을 때 저는 그게 그렇게나 행복해서 그 위험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 함정과 고비들을 지나 폴란드 투어에서의 첫 펜데레츠키를 끝내고 기립박수를 받는 순간이 되니 알 수 없는 감정들로 잠깐 북받쳐 오르더군요. 모든 사람이 쾌감을 느끼는 순간이 다 다르겠지만 제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악장으로서 있을 때 가장 쾌감을 느끼는 순간은 마지막 박수를 받는 순간이 아닙니다.
모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함께 한 영혼으로 하나의 음악을 만드는 순간, 하나의 인생을 공유하는 순간, 멈춰서 정지되어 있는 그 순간조차도 모두가 하나의 영원처럼 느껴지는 그 순간, 그 모든 순간을 바라며 오케스트라 스코어를 공부하며 서초동 합주실에서 리허설을 하고 지휘자의 손끝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박수 받는 그 순간이 저에게 쾌거를 이룬 보답의 순간이 됩니다. 음악은 어떤 방향성으로 가야 진정한 음악이 될까요. 그것을 정의하기는 아마도 영원히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음악을 함에 있어서 알 수 없고 불확실한 ‘쾌’를 찾기 위한 그 처절한 과정 또한 진정한 ‘쾌’의 순간이 아닐까요?

폴란드에서 악장으로서 느꼈던 순간들, 그리고 음악을 하면서 느꼈던 모든 순간들이 저에게는 절대 빼 놓을 수 없는(심지어 아니라고 좌절했던 불쾌의 모든 순간들조차도) 모든 ‘쾌’의 순간들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모든 ‘쾌’의 순간들을 의미 있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향유하길 바라며...



나의 쾌

‘쾌’란 감정의 근본 방향을 지속하여 나아가려는 상태를 뜻한다. ‘쾌’를 떠올려 보았을 때 쾌락, 쾌감, 유쾌, 불쾌, 통쾌, 상쾌 등 여러 종류의 ‘쾌’들이 있는 것 같다. 이 중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의 방향도 있을 것이고 긍정적인 감정의 방향도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제까지 무용을 해오면서 물론 부정적인 감정들도 들긴 하지만 대부분 긍정적인 감정들이 대다수인 것 같다. 가끔씩 드는 부정적인 감정들도 어쩌면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하여 성장해나가고 싶은 열망, 발레라는 예술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번에 시니어 파드되 1등을 차지한 ‘유스아메리카그랑프리(YAGP)’를 준비하면서도 지치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참 많았는데 무대에 서서 내가 준비한 모든 것들을 뽐내던 그 순간, 관객들에게 환호와 박수를 받던 순간들이 모여 지치고 힘들었던 마음이 싹 사그라들며 ‘아, 나 대회 나오길 참 잘했구나, 무대에 서길 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나 무용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에는 ‘실수하지 말아야지, 오늘 정말 잘해야지’라는 마음가짐으로 무대에 섰었다면 지금은 ‘오늘은 이 무대를 어떻게 즐겨볼까, 준비해온 것들을 어떻게 보여드리고 표현해야 관객분들이 좀 더 이 작품에 빠져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들을 하며 무대에 서곤 한다. 그래서 예전엔 그 날 잘하지 못했거나 자그마한 실수가 있으면 정말 허무함만 몰려왔었는데 지금은 그 고민들을 통하여 무대를 꽉꽉 채우려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더 무대에 집중하게 되고 나 자신도 무대를 조금이나마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 이렇게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나를 돌이켜볼 때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나의 ‘쾌’이지 않을까 싶다



길 잃기의 즐거움

작업을 진행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결과들을 마주한다. VR 플레이어의 시점을 변경하려는 시도가 VR에 구축된 세계 자체가 흔들리는 효과를 만들어 낸다. 스캔 데이터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인상적인 글리치 이미지를 발견한다. 원하는 효과음이 좀처럼 나오지 않아 이펙트를 만져보다가 절묘한 사운드가 만들어진다.

작년 11월에 발표한 VR 작업인 <원룸바벨>을 작업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해당 작업은 서울에서 주거하는 청년들의 주거 공간을 라이다LiDAR 스캐너로 스캔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작업의 관람객은 VR에 구축된 가상공간에 놓인 실제 크기의 원룸을 둘러보면서 텍스트와 사운드, 그리고 장소에서 마주치는 사건들을 통해 원룸이라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체험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경험을 조형하기 위해서 스캔 데이터를 어떻게, 또 얼마나 가공하고 편집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필수적인 작업 과정이었다. 포인트 클라우드 데이터가 지닌 상세하고 천문학적인 정보 값은 장점이면서 동시에 난점이었다. 정교한 데이터는 그만큼의 용량을 요구했고, 프로젝트를 무겁게 만들었다. 가공된 데이터를 개발 엔진에서 최적화하고자 할 때, 그 솔루션을 찾는 과정은 복잡한 미로 속을 헤매는 느낌이었다.

다만 이 미로란, 벽과 갈림길, 막다른 골목으로 이루어진 미로와는 다르다. 그것은 “열린 세계”로 직역되는 오픈월드 게임이 제공하는 미로의 경험과 더 닮았다. “열린 세계”의 미로라는 역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에 관해서, ‘젤다의 전설: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의 게임 디자인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소개하는 글1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해당 글은 2017년 CEDEC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젤다의 전설 제작진이 발표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글의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유저가 오픈월드 내에서 갖는 모험의 양상이나 모험 속에서 마주치는 게임 이벤트들은 매우 정교한 게임 디자인의 결과라는 것이다. 제작진은 초창기 플레이 테스트에서 대다수의 유저들이 게임 월드인 하이랄에서 특정한 경로로만 이동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은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저의 경험 양상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분석하고, 반복적인 테스트를 통해서 유저가 다양한 경로를 선택할 수 있게끔 게임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1 “[CEDEC 2017] 젤다의 전설 BotW의 완벽한 게임 세계는 닌텐도의 개발 스타일이 바뀌었기 때문에 태어났다.”, 4gamer, 2017년 9월 2일 발행. 관련링크

이처럼 정교하게 디자인된 게임 월드 안에서 유저는 저마다 각자의 독립적인 모험을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오픈월드 속에서 유저는 어떤 길로 갈 것인지를 택하고, 어떤 이벤트를 먼저 처리할 것인지를 선택한다. 고유의 경로와 타임라인을 구축하면서 유저마다 독특한 플레이 경험을 형성하는 것이다. 나는 주로 게임 엔진과 현실 또는 가상에서 추출한 데이터를 사용하여 작업을 만든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나에게 있어 오픈월드 속 플레이어가 취하는 모험과 같이 느껴질 때가 잦다. <원룸바벨>을 작업할 때 모험의 가장 결정적이고 인상적인 국면은 라이다 스캔 데이터를 메시 데이터로 변환할 때 나타났다. 버텍스 컬러값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왔다. 포인트 클라우드 데이터를 삼각 폴리곤으로 구성된 메시 데이터로 변형한 결과, 산호와 닮은 껍질을 가진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작업의 시놉시스는 해당 그래픽을 마주한 순간 일사천리로 쓰였다. <원룸바벨>의 초기 기획은 그레이 컬러의 포인트 클라우드 데이터를 사용한 어둡고 현실적인 다큐멘테이션이었다. 그러나 작업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이미지를 마주하고서, 나는 근미래적인 시공간을 설정했다. 스캔 데이터를 지척에서 바라보기보다는, 한 발짝 떨어진 지점에서 보기를 택한 것이다. 이로써 역사적 차원에서 원룸이라는 공간의 사회성이 어떻게 기억될 것인지를 숙고하는, 새로운 작업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때의 발견은 작업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 “발생”의 축복은 그 어감과 달리 우연에 매달려 나온 것만은 아니다. 수많은 테스트와 과열된 컴퓨터, 오류로 사라진 파일, 눈물, 한숨을 바탕으로 개발자 커뮤니티, 깃헙,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흩뿌려진 고마운 족적을 배합한 결과다. 마치 오픈월드 게임의 플레이어블 캐릭터처럼, 초기의 기획을 등짐 삼아 매고 출발한 나는 예상치 못했던 길목에서 장애물과 조력자를 만난다. 문제 봉착의 곤혹도, 문제 해결의 쾌감도 모두 새로운 만남으로 다가온다. 가끔은 이곳에서 영원히 유랑할 수도 있을것 같다. 하지만 마지막 맺음은 있어야 한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걸어온 모든 길의 총합이자 모험의 결과로 만들어진 완성본을 마주하게 된다. 작업이 나를 즐겁게 하는 지점은 이러한 모험의 과정에 있다. 머릿속을 부유하던 아이디어가 전시장에 구현되기까지의 여정은 완전히 규격화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 자유로운 선택지의 형태로서 내 앞에 놓여 있다. 주제와 관련된 흥미로운 자료를 자유롭게 수집하고 쌓아둔다.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발견한 자료들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 또는 수집한 데이터를 어떻게 편집할 것인지를 결정하면서 모험을 진행한다. 모험을 진행하는 와중에 예상에서 벗어난 결과물을 마주하면서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한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가게 되는 길은 달라질 것이다. 내가 만들어 낼 결과물이 무엇일지는 모험을 시작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으며, 그 결과물의 표면과 요철이 어떠한 촉감인지는 모험을 끝마치지 않고선 알 수 없다. 그것이 작업에서 즐거움이자 어려움일 것이며, 낯설고 만만치 않은 조우에 대한 감정적 반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