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을 가지고 있는 익숙한 음악을 들으러 가는 마음은 마치 오래된 연인을 만나러 가는 마음과 같다. 예측 가능한 즐거움과 편안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얼굴에서 발견할 새로운 표정에 대한 약간의 기대가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들어본 적 없는 소리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음악을 들으러 가는 마음은 어떨까. 누군가를 처음 만나러 가는 마음과 같지 않을까. 11회 ARKO한국창작음악제 국악부문 공연이 열린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바로 그 마음 -알 수 없는 상대에 대한 환상 또는 설렘, 혹은 약간의 두려움이 섞인 긴장감- 으로 모인 청중들로 북적거렸다.

동시대 관현악 작품들의 창작과 연주를 활성화하기 위해 도입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ARKO)의 사업, ARKO한국창작음악제(이하 아창제)는 죽은 작곡가들의 음악을 그 구성만 달리하여 들려주는 음악계의 현실 속에서 지금 이 시대 작곡가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를 열어준다. 더불어 4회부터 양악과 국악을 망라하는 창작곡들을 선정해 온 덕분에 상대적으로 자주 들을 수 없는 국악 창작곡들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 연주할 만한 클래식 관현악 작품들이 충분하고, 연주의 기회가 훨씬 많은 서양 오케스트라와 달리 관현악 편성으로 작곡된 작품 자체가 부족한 국악관현악단에게 아창제의 의미는 더욱 특별하다.

이날 연주된 6개의 작품들은 이미 자주 모습을 비춘 국악의 익숙한 얼굴을 활용하여 청중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고, 들어보지 못한 선율, 리듬, 음색의 가능성을 극대화함으로써 호기심을 일으켰다. 또한 외부 세계와 작곡가의 내면 사이에서 형성된 마음을 힘 있게 전하면서 국악관현악의 가능성을 다각도로 보여주었다.

듣기 어렵지 않은 전통 장단들의 변주로 완성도를 높인 김상욱의 국악관현악을 위한 ‹항해›는 태평양을 탐험하는 서사를 역동적으로 풀어냈다. 엇모리와 자진모리 장단을 중심으로 두 선율을 이끌어나가며 거대한 파도와 배가 만나는 듯한 순간은 바다 한가운데에 청중을 데려다 놓았다.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또 다른 작품, 정지은의 저피리 협주곡 ‹별빛고래›는 바다 위에 비친 별들을 따라 여행하는 고래의 유랑기를 들려주었다. 고래의 무게감과 큰 움직임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저음역대의 저피리를 협주 악기로 등장시킨 점과 고래와 같이 유랑하는 집시들의 음계를 차용한 점이 흥미로웠다. 부드럽고 따뜻한 선율은 동화 같은 상상에 어울리는 선택이었으나 거슬릴 것 없이 정제된 느낌은 관현악 편성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소리와 이미지를 적극 탐구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주었다. 청중들이 기대한 것은 고래 할아버지가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예쁘게 윤색된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 막 성체가 된 고래의 예측불가능한 모험이 아니었을까.

특정 작품 또는 유적으로부터 비롯된 생소한 주제를 탄탄한 구성 위에 올린 작품들도 있었다. 양승환의 대금협주곡 1번 ‹린포체›는 한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티베트 불교의 환생 개념을 바탕으로 작곡되었는데, 1악장에서는 주제 선율을 바탕으로 대위적 움직임을 보여주고 2악장에서는 환생이 불러일으키는 신비와 몽환을 생소한 화성으로 표현했다. 김기범의 국악관현악을 위한 ‹천마도天馬圖›는 천마총에서 발굴된 그림인 ‘천마도’를 보고 느낀 강렬함을 보여준다. 오래된 유적이 주는 옛것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서양 악기들을 최소화했고, 작곡가와 그림 사이에서 발생한 상호작용을 음악적으로 구체화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3악장 혹은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익숙한 전통 어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이 느껴졌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ARKO한국창작음악제

가장 실험적인 음향을 보여준 작품은 이예진의 타악기를 위한 협주곡 ‹기우祈雨›로, 비가 오기까지의 자연의 모습을 그렸다. 각 악기들은 일관된 목표를 향해 각자의 방식으로 방향성을 가지고 소리를 쌓아가면서, 각기 다른 에너지가 모여 하나의 자연 현상이 발생하는 과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타악 협연자가 기우제를 지내는 제사장의 역할을 맡은 것처럼 연출을 의도한 점 또한 인상적이었으나 그는 끈질긴 사투 끝에 비를 얻어낸 제사장이라기보다 신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해 낸 모범적인 성직자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를 향한 온 땅의 염원을 한 곳으로 향하게 만드는 정교한 설계는 적어도 그 곳에 앉아있는 이들을 설득해냈다.

역사적 사건에 관한 개인적 경험을 확장한 장태평의 ‹너븐숭이›는 제주 4.3의 피해 지역 중 하나인 너븐숭이 마을을 돌아보며 느낀 감정을 바탕으로, 희생된 아이들 중 이기복자라는 2살 여자아이에게 바쳐진 곡이다. ‘수선화의 노래’, ‘흔들리는 섬’, ‘무당 자장가’, ‘거대한 감옥’, ‘붉은 섬’, ‘애기돌무덤 앞’에서로 구성된 6개의 표제는 처참한 비극이 벌어진 장소에서 마주한 스스로의 감정들과 그 감정들이 만들어낸 혼란을 나름대로 정리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보였다.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 존재하고 있는 어린 생명을 상기시키는 음악적 동기들은 소리 없이 스러진 아기에게 목소리를 부여해주었다. 어쩌면 국악이 무엇보다 잘 담아낼 수 있고, 또 담아낼 필요가 있는 한국의 이야기들 중에서도 다루기 힘들었을 제주 4.3에 대한 음악적 접근은, 슬픔을 피하지 않고 직면해 낸 이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모르는 누군가를 만나러 간 줄 알았는데 이미 알던 나, 그리고 나도 모르던 나를 마주쳤던 시간이었다. 그중에서도 낯선 자아와의 우연한 만남은 당황스럽지만 스스로를 잘 알고 있었다는 교만을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반갑고 절실하다. 익숙한 타인도 아니고, 익숙한 나도 아닌, 몰랐던 나. 과연 국악을 만드는 이들과 듣는 이들은 어떤 소리, 가능성, 그리고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까. 다름 아닌 이 시대의 생각과 목소리가 담긴 국악의 지속적인 창작을 바라는 것이 지나친 욕심이 아니었으면.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우리의 얼굴과 마주치도록 하는 음악을 기다려본다. 지금, 여기, 이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음악의 가치를 전하고 있는 아창제가 그 역할을 오래도록 해주기를 바란다.

글 황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