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허연 작업등이 켜진 극장의 객석 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본다. 두어 시간 후 시작될 공연을 앞두고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몸을 풀거나 소품을 정리하거나 큰 의미 없는 잡담을 나누다 들어간다. 연극을 하면서 내가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무대의 풍경이다. 이 시간 무대는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다. 아직 일상의 시간이 이곳을 채우고 있지만 연극의 시간은 잠자고 있다. 비어있지도 채워져 있지도 않다. 세트와 대도구들이 자기 자리를 잡고 있지만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어떤 중간, 어떤 경계의 상태, 다시 사라지기 위한 존재를 준비하는 상태다. 마침 공연 중인 연극은 ‹맨 끝줄 소년›이라는 작품이다. 2015년 초연, 2017년 재연에 이어 세 번째 상연이다. (그리고) 세 번째 공연을 준비하면서, 그러니까 세 번째 셋업을 보면서 나는, 절망했다.
무대는 - 혹은 연극이라고 해도 좋다 - 정말로 실체 없는 허상인가.
첫 번째 셋업 동안에는 이제야 비로소 그동안 준비해온 세계가 살아난다는 흥분을 느꼈다. 첫 번째 철거 때는 다시는 보지 못할 그 세계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두 번째 셋업 때는 사라졌던 세계가 거짓말처럼 되살아나는 기적을 보았다. 두 번째 철거 때는 이젠 정말 끝이구나 하는 안도와 서글픔을 느꼈다. 그리고 세 번째 셋업 때는, 또다시 이 세계를 만나는 반가움보다는 또다시 똑같이 복원되는 이 무대, 이 연극에 진정한 생명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늘 그렇게 있어온 것처럼, 지난 2년 반의 시간을 완벽하게 무시하듯 다시 견고하게 극장을 채우는 이것, 연극이라는 것이 징그럽고 무서웠다. 며칠 후 세 번째 철거가 진행되고 다시 무대가 완전히 비워지면, 그때는 어떤 생각이 내 머릿속을 채울까. 생각해보면, 연극을 하기로 마음먹은 20여 년 전부터 연극 속에서 살고 있는 지금까지, 나는 늘 이 혼란과 씨름했던 것 같다. 채워지고 비워지기를 반복하는 무대는 내게 연극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기를 늘 강요한다. 아무렇지 않게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졌다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취를 감추는 연극 속에서 무엇을 붙잡을 수 있을까, 그 안에서 진짜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솔직히 말해서, 이제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진짜는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진짜가 없다는 것이 이 무대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대는 잠시 동안 온갖 가짜들이 완전한 생명을 얻어 활개 치다가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자취를 감추는, 가짜가 유일한 진실이 되는 기이한 시공간인 것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곧 시작될 공연을 기다리면서, 나는 사람들이 이 화려한 가짜들의 파티 속에서 우리와 닮은 사람과 삶을 무한히 낯설게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한다. 파티가 끝나고 모든 것이 사라지고 정적이 찾아오면, 남아있는 그들이 우리의 삶을 무대 위의 그 가짜들을 보듯 낯설게 보고 감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저 무대가 완전히 지워지면, 그 낯섦에 대한 기억이 이 연극의 유일한 흔적이 되는 모습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