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맵›, ‹보석의 나라›, ‹제 4의 성›, ‹제의가 있다›, ‹3분 38만년›. 모두 자신만의 의미와 시도를 작품에 채워 넣은 젊은 안무작들이다. 2019년 올 한 해 동안 서울문화재단 최초예술지원 무용 분야에서 안무가로 분류된, 그러나 원래부터 안무가였던 이들이 작품을 선보였다. 바로 고다희, 양승진, 이예지, 이종현, 임태이 안무가들이다. 안무가가 대한민국에서 작업만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그 날을 꿈꾸며 그들은 오늘도 이 자리에서 몸짓 대신 문자로 작품을 빚어내고 또 빚어내고 있다. 그들을 소개한다.
이종현 임태이 양승진 이예지 고다희 ⓒ 김경수
‹바디맵›
안무가 고다희(무용원 창작과 전문사)
이번에 ‹바디맵›이라는 작품을 진행하고 있는데 아직 공연을 올리지 않았고 12월 27일과 28일에 예정되어 있다. 이 작품은 몸에 대해 언제부터 인식하는지에 대해 질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몸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정해놓고 그 한계를 벗어나 어디까지 인식할 수 있는지, 조금 더 확장된 형태로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며 몸의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보석의 나라›
안무가 양승진(무용원 창작과)
‘Salon de cassé’라는 단체에서 대표이자 디렉터를 맡고 있는데, 우리 단체는 이번에 ‹보석의 나라›라는 작업을 진행했다. 사회, 종교, 문화 등 다수 안에 존재하는 소수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이 틀렸기 때문에 소수가 아니라 특별하기 때문에 소수라고 생각한다. ‘보석의 나라’라는 제목은 한글의 의미를 포함하면서 한자로 바꾸면 ‘보배 보寶, 자리 석席, 아름다울 나娜, 벗을 라裸’로 풀어서 벗겨져 있는 상태에서의 모습은 누구든 다수나 소수가 될 수 있고 아름답다는 내용으로 만들었다.
‹제 4의 성›
안무가 이예지(무용원 창작과)
이 작업은 사회적인 이슈로서 젠더가 아닌 것은 무엇일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에 대한 답변으로 젠더가 없다면 내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방법론을 제시한다. 통상적으로 부여받은 성별의 역할을 무시하고 재탐색하는 과정에서 성별을 하나의 영토로 규정하면서 거기서 이탈해보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나의 본질은 어디에서 어디까지 존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에 중점을 두고 작업을 진행했다.
‹제의가 있다›
안무가 이종현(무용원 창작과)
이번에 최초예술지원 사업으로 ‹제의가 있다›라는 작품을 올렸다. 이 작업은 의식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제의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제의가 과거에는 힘이 있고 의미를 가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미를 잃어 가고 힘이 떨어져서 형식만 남았다는 것을 주제로 삼아 작업을 풀어나갔다.
‹3분 38만년›
안무가 임태이(무용원 창작과 전문사)
‹3분 38만년›은 되게 작은 세계, 내가 동경하게 된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우주가 처음으로 생성된 시점을 배경으로 양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거기서 발견된 아름다움을 작품에 담았다. 나는 양자의 세계가 물질의 한계를 극복한 물질이라는 것에서 이상적이고 민주적인 세상이라 느껴졌다. 그 세상이 존재하는 우주 최초의 시점으로 돌아가 이 역학에 대해 춤으로 표현해보았다.
이예지, ‹제 4의 성›
무용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자신만의 표현 방법이 있다면
이종현: 무용이란 몸을 사용하는 매체라고 생각하는데 아직 연구 중이다. 이전에는 안무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동시대 작품들을 보면서 안무처럼 보이지만 안무가 아닌 것들을 발견했다. 반면 안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안무라고 느껴지는 순간들을 마주하면서 춤, 움직임 외에 다른 장치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고 나 자신과도 잘 맞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 중이다.
고다희: 무용은 내가 예술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나는 작업을 할 때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려고 한다.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외부적이지만 결정을 하게 되는 동기는 내부적인 직관을 따라간다. 나의 매개체는 춤이지만 글로 쓰면 글로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글을 춤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많이 발견한다. 그걸 계속 잡아내어 풀어가려고 하는데 명확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이 시스템 안에서 작업을 처음 하다 보니 사실 헤매는 부분이 생겼다. 이 작업이 안무뿐 아니라 디렉팅을 해야 하니까 내 의도를 상대방이 다르게 이해하거나 내가 하는 말들의 의도가 명확하지 않을 때가 발생했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의도한 것을 의도에 맞게 전달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신체로도 마찬가지이다.
양승진: 나는 나의 의지나 환경에 상관없이 계속 무용을 해왔고 자연스럽게 형성된 나의 움직임을 해외에서는 한국적이라고 한다. 한국무용을 전공하고 따라서 호흡 등 한국무용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동작을 만들어왔다. 사용하는 메소드 중에 한국적인 것과 거리가 있는 것도 존재하지만 결과적으로 어떻게든 영향을 받는 것 같다. 그렇게 비춰지기도 하니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계속 이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싶다. 또 우리가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내면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온전하게 춤에 담아 드러내기 까지의 과정이다.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무용수들과 많은 시도를 한다. 동작을 주고 따라 하는 식보다는 상황을 만들고 그에 따른 반응을 보려고 한다. 이번 공연 보고 우는 관객도 있었다. 서사가 아닌 무용수를 통해 그 감정이 전달된 거라고 확신한다.
이예지: 무용을 무엇으로 정의내리기가 어렵다. 그저 신체를 가지고 작업하는 나를 대한민국은 무용으로 분류한다. 이번 작업은 내가 원하는 안무 방식의 이상향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개인적으로 시간, 돈, 정성을 들여서 많은 장치와 환영성을 무대에 올리는 것보다 아무것도 없이 무대에 서는 것이 더 지혜롭고 용기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작업은 배제를 중점에 두고 움직임, 음악, 조명 등 모든 것을 축소시킬 수 있는 만큼 축소해서 본질 그대로를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그것이 관객과 소통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작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언어를 신체로 전달할 수 있을까가 가장 큰 중점이었고 말로 하는 언어보다 몸으로 하는 것이 더 추상적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오해의 소지 없이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임태이: 무용이 어려워서 고민을 많이 하면서도 자부심을 갖는다. 나는 직관과 맞닿아있는 주제를 좋아하고 거기서 영감을 얻는다. 그런데 문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춤을 춘다. 이번 작업의 양자역학은 거의 수학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를 언어보다 무용이 더 잘 설명해준다고 느꼈다. 작품을 만들 때에는 뭘 해도 말이 되는 경지를 추구한다. 뭘 해도 괜찮은 수준. 공연에서 어느 정도 꼭지가 틀어질 때 관객의 시선이 그쪽으로 열리면서 무대에서 무엇이 발생해도 관객이 납득하는 상태가 있다. 그 상태를 추구한다. 안무 초반에는 홀로 리서치를 진행하면서 어느 정도 형태를 만든 후 결론을 내리지 않고 그 안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무용수들을 만나서 작업을 하는 동안 답이 내려지기도 하지만 그 답을 무대에 올리지는 않는다.
양승진, ‹보석의 나라›
작품에 들어가서 혹은 나와서 안무를 한다는 것
고다희: 나는 개인적으로 안무가가 작품에 출연하면 그의 이야기를 하고자 할 때 좀 더 설득력이 생긴다고 본다. 하지만 출연하지 않기로 선택한다면 안무가가 작품에 대해 떨어져서 바라보고 싶어서라고 여긴다. 내가 작품 속에 참여한다면 영상을 통하지 않고는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없다. 떨어져서 작업 진행을 보게 되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가 잘 보이기 때문에 훨씬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임태이: 나는 주제에 따라 조금 다를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 같은 경우 양자역학을 주제로 하는 불확정성 신이 존재한다. 이 장면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사물을 관측하는 순간 사물의 질량과 에너지가 변하고 관측하는 행위가 사물의 상태를 결정한다.’ 상당히 표현 욕구를 불러일으키면서 ‘반드시 이건 해야 해’라는 마음을 먹었다. 그 욕구라는 건 출연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안무를 하면 출연하지 않는 것이 작품을 위한 길일 수도 있지만, 양자 역학을 무용으로 표현하는 것이 내 생애 있어서 너무 중요한 만남이었다. 그래서 출연해야 했고 당분간은 계속 이 작품에 출연할 것 같다.
고다희, ‹바디맵›
지원제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시행착오들
이종현: 지원금 사업이 잘 되어 있는 편이었다. 다만 면접이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구조라 지금 제도는 그런 작업에 더 초점이 맞는 것 같다.
이예지: 나의 주 무기는 안무이고 무용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지원을 받아 안무하려면 글 쓰는 사람의 주 무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우리나라 무용과 지원제도에서는 그 역할 분배가 안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학교 교과 과정 안에서도 안무할 기회가 있으면 조명, 기획, 안무, 무용수 모두 스스로 해야 한다. 분명 연극처럼 다 세분화할 수 있는데 인식의 차이라고 본다. 이런 부분들이 한국에서 안무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으니까. 또 이번 지원을 받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초기 기획안대로 공연해내야 하는 부분이었다. 신작을 올리기 때문에 작품이 초기 기획안에서 계속 수정된다. 재단 측은 초기 기획안을 그대로 올리길 바라는데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과정들에 대해 존중과 양해가 필요하다.
양승진: 나 같은 경우에는 특히나 문서 작업을 잘 못 하는 성격이라 무용을 택한 부분도 있는데 너무 서류나 행정적인 절차들에 시달리다 보니까 안무하는 것 자체가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있었다. 안무가도 사업가적인 역량이 필요하겠지만 아예 사업가로 키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을 만난다거나 세금 같은 부분은 도움이 필요하다.
고다희: 이번 인터뷰에 참여하는 분들이 모두 창작과 출신인데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교과 과정에서 작품을 올리는 과정이 있다. 각자 작품을 만드는 계기가 있기 마련인데 그것이 확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졸업하고 그 작업들이 작업으로만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최초 예술지원은 그러한 작업이 확장된 형태로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학교 내에서는 개개인의 작품들을 모두 한 무대에서 한 번에 올려야 한다. 시간적으로 제한이 생기는데 비해 극장을 대관하여 자신의 공연으로만 진행할 수 있어서 공연의 길이도 훨씬 길어지고 의미 있었다. 다만 이번 지원사업은 극장 대관 문제가 제일 어려웠다. 발표가 늦어지면서 대관 신청 시기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지원서를 꽤 오래 작성했는데 공간대관에 더 오랜 기간을 할애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간을 의뢰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내 작품에 대해 설명 해야만 했고 당연한 과정이라고 여기면서도 쉽지 않게 다가왔다.
이종현: 이번 작업은 서울무용센터의 공간을 빌려 연습을 진행했다. 스태프진 구성을 할 때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무대감독이나 조명감독은 추천을 받은 분들과 함께했다. 학교에서 학생으로 작품을 올릴 때는 극장 미팅 같은 과정이 없었고 이번 계기를 통해 연습해볼 수 있었다. 40분 남짓 되는 길이의 작품은 처음 만드는데 더군다나 학교에서의 작업 분량보다 4배 정도 되는 양을 지도하는 사람도 없이 혼자 만들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또한 내 이름으로 공연이 올라가니까 그것도 큰 부담이었다. 내 작품이 관람에 있어 사람들에게 시간과 돈을 요구할 만한 그런 가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작업을 끝낸 후 뒤돌아 보니 무리해서 안무를 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 들었고 앞으로는 내 몸을 잘 챙기면서 하려고 한다.
임태이, ‹3분 38만년› ⓒ팝콘
다음 작업을 내다보기
이예지: 앞으로 한국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안무를 지속한다면 이 지원금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더 배우려고 한다. 의존할 곳 없이 사회 안으로 던져진 느낌이 강하게 든다. 내가 나아갈 방향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만 같다. 성격상 이 상황이 재미있게 다가온다. 계속 도전하고 부딪혀보는 게 재미있게 다가와서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것보다 더 많은 창작 욕구와 욕심이 올라온다. 지원제도에 대한 불만도 결국은 내가 안고 가는 책임감이다.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에게 작품, 함께한 무용수와 기획자 등 자산이 생겼다. 다음번에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양승진: 무용이나 춤 외에도 무대 소품이나 의상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이번 지원으로 해소할 수 있어서 좋았다. 2년 전에 팀을 꾸리고 활동해오면서 무용수들에게 제대로 페이를 준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매우 뿌듯하면서도 고민이 되었다. 작업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기 어려운 현실 때문에. 궁극적으로 돈을 도구로 사용해야 사람들과 재미있게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용이 음지에만 있지 않고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메이크업이나 의상을 만드는 등 내가 하고 싶은 것에서부터 연결점을 찾으려고 한다. 한국에서는 무용 자체 내에서도 현대무용, 발레 등으로 나누어 전문성을 가지는 것을 요구되지만 해외 같은 경우는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잘 해내는 것 자체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 단체만의 색이 있고 그 색이 좋아서 매니아나 팬층이 형성되는 것처럼 우리 팀도 한국에서 그렇게 자리를 잡고 싶다. 무용단이 아닌 아트크루의 대표로서 팀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고다희: 나는 학부를 졸업하고 3년 동안 방황을 했다. 학부 때 수업이 굉장히 많았다. 그래서 무얼 생각하면서 다니지 못했던 것 같다. 인문대학은 3, 4학년부터 취직을 위한 준비를 한다는데 나는 4학년 2학기 12월까지 졸업을 위한 교과과정을 이수하느라 졸업하고 보니 사회 안으로 들어가는 준비 과정 없이 내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그 상태는 처음 부딪히면서 발생하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들을 감당할 만큼 단단하지 않았다. 지금은 다시 학교로 돌아오면서 작업을 시작했는데 조금씩 쌓아가려고 한다.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소중한 삶을 살고 있다. 이 작업만 하고 있는데도 지원금을 통해 타당하게 돈을 벌 수 있고 입증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앞으로도 아직 해보지 않았지만 가고 싶은 방향의 예술을 하면서 의식주를 해결하고 싶다.
임태이: 이번 작품은 4인무였는데 1인무 버전으로 미국에서 공연하게 되었다. 나와 작품에게 좋은 기회가 되었다. 굳이 한국의 무대와 비교하자면 미국은 예술에 기꺼이 돈을 쓰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공간을 소유한 사람이 모든 것을 소유한다. 미국 또한 먹고 살기 힘들지만 그래도 독립예술이 좀 더 가능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갔다 와서는 새로운 판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으로 내 관심사가 바뀌었다. 지금 현재 무용계는 수요공급이 맞아떨어지고 소비자가 생성된 구조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년 안에 개척해야만 무용을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한국이 좋은 점을 생각해보면 공공 지원을 받을 수 있고, 한국예술종합학교라는 좋은 학교가 있다. 학교에서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와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를 느꼈다. 여러 시행착오 속에서 최초예술을 해보면서 아티스트로서 성장한 것 같다.
이종현: 접촉 즉흥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접촉 즉흥은 상대의 신체와 접촉을 통해 움직이는 즉흥 춤이다. 하지만 작업의 소재로 가져오고 싶지 않다. 움직임의 메소드보다는 작업의 담론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담론 없이 기술만으로 설득력을 가지는 작품을 인정하는 반면에 나 자신은 흥미로운 담론 혹은 소재가 있을 때만 작업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정기적으로 참여하던 독서 모임을 통해 공연예술 담론으로 가져올 수 있는 소재를 찾는 중이다.
이종현, ‹제의가 있다› ⓒ팝콘
그들의 작품은 우리에게 다가오기 이전에 숱한 고민과 시행착오, 노력을 거친다. 그렇게 빚어낸 작품의 밑바닥에 깔린 그들의 소신만으로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지원을 받아서 작품을 올리려면 이러한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몸소 느낀다. 혈기가 왕성한 안무가들을 만나 안무가로 살아남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러나 그들이 대한민국에서 안무가로 살아남는 이야기는 여전히 막을 내리지 않고 계속된다. 그것이 때로는 어렵고 힘들고 아플지라도 나는 그들이 계속 안무가로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작품들을 얘기하는 그들에게 비치는 진지한 몸짓들이 영원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오늘도 꿈을 꾼다. 안무가들이 빚어낸 끝나지 않을 요동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