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도 좋아 제주 레지던시 프로그램

제주도에는 하루 평균 14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매일 같이 14만 명의 여유가 제주도에 쌓이는 셈이다. 그런데 여유가 실제로 나타나는 모습은 민망하다. 물리적으로 남은 건 쓰레기이기 때문이라서다. 여행 떠난 개개인을 책망하기에는 애매하고 모호하다. 14만 명 숫자를 합쳤을 때야 환경 문제지, 개별적으로 보면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소비 문제 이상도 이하도 아닌 까닭이다. 관광도시에서 관광객의 소비 행위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그렇지만 방법은 있다. 여행에서 소비하는 프로그램 자체를 바꿔보는 것. 더구나 최근 제주도 관광은 지역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부딪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지역과 공생하는 투어리즘 개발은 여러모로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재주도 좋아’는 그런 행사를 기획하는 단체다. 전체 주제인 ‘비치코밍’은 해안가(beach)와 빗질(combing)의 합성어로서 바닷가 쓰레기를 치우는 걸 의미한다. ‘재주도 좋아’는 이를 통해 쓰레기 처리하는 방식과 문화예술을 결합한 새로운 유형의 투어리즘을 제안하고 있다. 이 단체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제주바다 레지던시’. 다양한 배경의 예술가들을 제주도에 불러 모아, ’재주도 좋아’의 취지와 목적을 보다 지속적이고 공식화하는 연례행사다. 2013년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올해로 벌써 4회째를 맞았다.
나는 여기에 비평가로 참여했다. ‘제주바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예술가들과 함께 제주도 환경과 문화예술을 엮어 바라보는 역할이다. 이전 참여 비평가인 2014년 문화기획자 류성효, 2015년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2016년 미술기자 김연수가 각각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취지’, ‘프로그램의 태도와 사회적 기능’, ‘프로그램 리포트’를 주제로 초기 3년 간 프로그램을 안착시키고 소개해주었다면, 이번에는 이를 토대로 레지던시 프로그램 자체에 오롯이 참여할 수 있었다. 강한 지역성을 토대로 운영되는 프로그램과 거기에서 제시한 지정 주제, 그리고 주제에 대응하는 타지에서 온 작가들의 방식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공영선의 퍼포먼스
김신효, 정은비, <in-visible>

참여 예술가는 총 8팀이었다. 공영선(무용), 구은정&장안나(설치), 김신효&정은비(영상/설치), 시와(음악), 이대일(조각/사운드), 련쑥’C&박인선(회화/퍼포먼스), 창작집단곰(연극), 정열(설치). 여느 프로그램과 비교해 다양한 장르 군이 눈에 띈다. 쓰레기를 치우면 된다는 일반론에 머무르지 않고, 쓰레기 치우는 과정 전반을 다양한 문화예술적 소비 활동으로 끌고 가고자 하는 취지가 엿보인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4월 ‘미리만나 워크숍’을 통해 첫 만남을 가진 뒤, 팀별로 일주일씩 돌아가며 진행됐다. 가장 관광지가 많은 여름 기간에 제주도에서 10월까지 작업을 완성하는 일정으로, 예술가들은 레지던시를 오가며 지정 주제를 해석하고 고민했다. 그리고 10월 28일 제주도 애월읍 반짝반짝 지구상회에서는 이들의 작품 발표가 있었다. ‘재주도 좋아’ 측에서 마련한 다양한 워크숍에 이어 서로 간의 작품을 마주하는 하이라이트. 제주문화예술재단이 후원하는 ‘빈집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커다란 전시 공간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사회 문제에서 출발한 만큼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현실성을 증명해야 마땅했는데, 현실을 의도적으로 의식하지 않는게 특이했다. 오히려 작가들은 거시적으로 물러나 제주도 환경 전반을 얘기하거나, 미시적으로 들어가 오브제의 속성을 이야기하는 방식을 택했다. 가령 련쑥’C&박인선의 작업은 시공간 요소를 따와 제주도의 자연을 추상화했고, 구은정&장안나는 쓰레기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아름다운 오브제들을 전시했다. 사실 예술 행사에서 효용성이란 단지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넘어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관람객 스스로 쓰레기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할 때 성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치코밍’이라는 사전 주제는 주제와 동떨어진 작품들과 맞물려 관람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환경 운동가가 아닌 예술가들의 작업은 이렇게 작용했다. 무작정 치우라는 제안이 아니라 관객이 먼저 들여다보고 관심 가지고 싶게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앞서 말한 련쑥’C&박인선은 제주도 시공간을 시간과 음악으로 압축하는 건축적인 방식을 선보였는데 그들이 결절점으로 지정한 위치(사진 작업의 특정 지점에 헤드폰을 대면 그곳의 음악이 흘러 나온다)에 맞추어 관객들은 ‘집중하고 싶어’졌고, 구은정&장안나의 오브제를 보고서는 쓰레기를 포함한 물건들의 물성을 떠올렸다. 작품을 하나의 종착역으로 제시하기보다 관객들의 이야기를 만들게 해주는 창작의 매개를 자처한 듯 했다.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 선박을 만드는 설치작가 이대일은 배를 만들어 어딘가로 떠나는 항해를 상상하게 했고, 무용수 공영선은 현실 주체인 장소(제주 심방)와 장소에 현존하는 인물(공영선)뿐 아니라 다른 매개로서의 인물 (이사도라 던컨)을 제안해 관람객들에게 이야기를 밀어 두었다. 이런 맥락에서 정열이 만든 착시 설치작업, 김신효&정은비의 “해안가로 밀려오기 전까지 각자의 사연”을 떠올리게 하는 영상작업은 한층 직접적으로 관람객들의 이야기 창작을 기다렸다. 쓰레기는 잠깐 줍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계속해서 기억되어야 하는 문제라서다.
이를 따라 관람객들 또한 ‘비치코밍’을 상상할 수 있었다. 가장 좋은 관광이란 구경이 아니라 이야기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기에, 환경문제는 일시적인 게 아니라 오랫동안 기억되어야 하기에 다분히 모범적인 방식이었다. “느린 시간, 멈추어 있을 장소, 느슨하나 지속적인 관계”라는 투어리즘 주제가 한층 분명해졌다.
어디든 갈 수 있는 시대에 제주도에서 이뤄진 ‘재주도 좋아’의 예술 행사는 구경거리 자체를 돌이켜보게 했다. 대형 비엔날레나 전시와는 또 다른 맥락에서 기능하는 지역 예술만의 기획과 제안이 흥미로웠다. 현실적인 주제를 견지하여 제안한 투어리즘과 지역 공동체라는 현실 요소 간의 만남은, 예술과 현실의 어떤 접점을 보여주었다.

글 | 최나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