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감독 마민지

도시수집가 공간을 산책하다

“리서치, 아카이빙, 당사자성” 마민지 감독은 이 개념들을 가지고 서울이라는 장소를 가족과 개인의 역사를 관통하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낸다. 한국 부동산사(史)라는 위태로운 줄 위를 서커스 곡예사처럼 유쾌하게 올라탄 영화 <버블 패밀리>의 마민지 감독을 만났다.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수집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서울, 버블 패밀리

시작점이 다채로워서 기획 의도가 궁금했어요.
아버지랑 우연히 종로에서 마주쳤을 때 아, 내가 이 사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족들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본격적으로 영화를 찍게 된 계기는 아버지의 건축 사업이 잠실 개발사(史)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제 청년 시절에 가장 영향을 끼쳤던 사건이 IMF 외환위기였고요. 사실 청년 세대 당사자로서 당시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는데 일부 작업들은 이미 끝난 담론처럼 이야기가 됐어요. 그래서 당사자성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버블 패밀리>

촬영이나 리서치 기간이 오래 걸렸을 것 같아요.
2013년 하반기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촬영했어요. 소스만 350시간 정도고 옛날 영상, 홈 비디오가 한 20시간 정도 됐어요. 제가 리서치 하는 게 취미거든요.(웃음) 그래서 전체적인 드라마는 제가 골라놓은 4시간짜리 소스 안에서 드라마투르기를 편집자가 잡아내면서 했었어요.

어머니의 홈 비디오가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감독님이 영화를 찍게 된 계기와도 맞닿아 있을까요.
어머니가 캐논 사진기를 가지고 계셨는데, 제가 한 살이었을 때부터 스무 살까지 한 해에 한 권씩 앨범을 선물로 주려고 하셨대요. 앨범은 IMF 외환위기 때 끊겨서 지금 13권 정도 있어요. 홈 비디오 같은 경우는 97년도까지 소스가 있었고요. 어머니께서 혼자 동요를 부르시는 장면이 있는데 그 영상은 제가 2, 3살에 찍은 거였어요. 그런 것들이 저에게 영향을 미치기는 했던 거 같아요.

잠실 타워가 완성되는 순간까지 시간순으로 구성하셨는데요.
마침 2013년부터 영화 제작이 시작돼서 촬영을 집요하게 했었어요. 그 당시 싱크홀 때문에 난리가 났었잖아요. 잠실이 땅이 아니라 모래로 된 섬이었기 때문에, 그 장소가 자본이나 개발의 속도로 금방 무너질 수 있는 기반들에 대해서 은유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후반부에 “발 딛고 있는 땅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라는 구절이 와닿았어요.
사실 엔딩 부분도 시니컬하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면서 끝내고 싶다고 고수한 부분이 있어서, 니나 이야스 핀란드 편집자와 마지막까지도 논쟁한 부분이었어요. 영화 전반적으로 부모님의 욕망을 다루고 있는데, 어떤 메시지를 드러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가 그 위치에 갔을 때 어떤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컸던 거 같아요.

한국 작품 최초로 2017년 EBS 국제다큐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는데,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요.
사실 시상식 갈 때까지 전혀 예상을 못 해서 되게 놀랐어요. 국내 최초로 받았다고 해서, 아니 이럴 수가.(웃음) 이후에 작업에 대해 심사위원분들이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힘이 많이 된 거 같아요. 상금으로 학자금 대출 일부를 갚고 부모님한테도 드렸어요. 아무래도 작품 안에 학자금 대출이 나오니까. 저한테도 굉장히 의미가 있었죠.

핀란드 나파필름과 공동 제작을 통해 핀란드 국영 방송 YLE에서도 방영을 앞두고 있다고 들었어요.
2015년 인천다큐멘터리포트에 다큐멘터리 마켓이 있는데, 핀란드 공영방송국 YLE에서 공동제작 펀드를 제안해주셨어요. 핀란드 편집자를 보내주셔서 후반 작업까지 시스템 지원을 받았어요. 일단 핀란드 쪽에서 블랙코미디를 되게 좋아하고 유머 코드가 잘 맞아서 좋게 봐주신 거 같아요. (웃음) 영화를 제작하는 당시에 촌스럽고 뽕끼 넘치는 음악이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프로듀서랑 편집자가 핀란드에도 그런 느낌의 음악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훔빠’라는 핀란드 전통 음악 형식인데 그런 음악이 블랙 코미디와 더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음악은 돌곶이포럼에서 만난 이민휘 씨가 작업해줬는데, 뉴욕으로 유학 가시게 돼서 화상채팅으로 회의하고 그랬어요.

아직 국내에 정식 개봉이 안 됐는데, 독립영화 개봉이 쉽지 않은 상황이죠.
사실 배급에 대해서 고민이 되게 많아요. 극장 배급 자체도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고, 해외 배급을 기다리고 있기도 하고요. 돌파구가 잘 안 보여서 전주영화제를 첫 프리미어로 영화제들을 쭉 돌고 있어요. 가장 큰 문제는 일단 극장들이 열어주지 않는 거예요. 불공정한 상황이죠. 독립영화 제작/배급사인 시네마달도 여러 상황에 대해서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대중들과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쉽지 않은 거 같아요. 다큐멘터리의 경우에는 한번 개봉하면 제로베이스가 되어야 작업을 계속할 수 있을 텐데, 수익이 마이너스로 이어지니까 계속 악순환인거 같아요.

석관동, 성북동 일기

영화과 졸업 작품이기도 한 중편 다큐멘터리 <성북동 일기>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사실은 문화 연구에 관심이 있어서 학교에서 여러 수업을 들었는데 전규찬 선생님이 필드 연구를 같이 해보자고 하셔서, 성북동에 처음 가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들고 찍다 보니까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었어요. 처음 만나게 된 인물이 바로 홍인표씨였어요. 인표 아저씨가 성북동 주변을 계속 돌아다니고 있거든요. 인표 아저씨를 따라다니면서 관찰자적인 시선으로 성북동을 담아내는 영화를 찍고 싶었던 게 컸어요.

<성북동 일기>의 중심에는 인물이 있네요.
기본적으로 제가 흥미 있는 건 아카이브 리서치, 공간에 대한 관심, 지역에 대한 흥미예요. 그런데 촬영을 하고 작업을 하다 보면 항상 작업 중반을 넘어서 깨닫게 돼요. 인물에 집중하지 않으면 작품에 집중이 되지 못하니까 사람의 목소리가 중요하게 되더라구요. 사실 구성이나 기획에 있어 학습 되지 않은 상태로 촬영을 해서 이야기를 만드는 게 어려웠어요. 김홍준 교수님이 그때 격려를 많이 해주셨는데, 추천해주신 레퍼런스가<성스러운 도로>였거든요. 그 영화를 보면서 스토리텔링에 겁내지 말고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성북동 일기>

다큐멘터리, 여성 감독, 연대

감독님이 직접 제작사를 만드셨다고 들었어요.
감독님이 직접 제작사를 만드셨다고 들었어요. 주로 독립 영화 하시는 분들은 제작, 배급, 행정적인 일이 있으니까 개인 제작사를 차려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쌍마 픽쳐스도 제가 차린 1인 미디어 제작사예요. 아버지가 지으신 빌딩 중에 쌍마라는 이름의 빌딩이 있었어요. 이 이름으로 하면 키치스럽고 재밌겠다고 생각했죠.

‘두 번째 영화 찍을 수 있을까’라는 기획단에서도 활동하고 있으시죠.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창의 인재 프로그램에서 남순아 감독님, 윤가현 감독님이랑 친해졌어요. 서로 가지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자고 해서 인디다큐페스티벌에 포럼을 먼저 제안했죠. 다큐멘터리 내에서 여성의 아르바이트나 노동의 조건, 신진 감독들, 결혼한 기혼 여성이 겪고 있는 문제들, 여성 감독의 작품이 사적 다큐멘터리로 한정되어 담론이 이루어지는 상황들과 성폭력 문제들을 제기했어요. 지금도 신진 감독들이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을 때 ‘두 번째 영화 찍을 수 있을까’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요즘은 제작 환경이 집단 체제가 사라지고 개인 작업자들로 늘어나면서 서로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사라졌어요. 프로덕션 기반으로 제작되는 시스템 안에서 위치적인 관계들을 빌미로 여성 제작자에게 억압적인 문제도 있고요. 내부에서도 ‘에이, 설마 그런 일이 있었겠어’ 라는 시선들 때문에 다큐멘터리 내의 성폭력 문제 등의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려운 거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영화계 안에서 벌어지는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를 계속해야 하는 거 같아요.

감독님의 차기작이 궁금해요.
하나는 토지 구획 정리 사업에 대한 단편으로 도시 공간에 관련된 작업을 계속할 생각이고요. 두 번째는 여성과 우울증에 대한 단편을 생각하고 있어요. 사회적인 상황들, 구조적인 것들이 만들어내는 우울증을 감당해내야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당사자로서 경험을 하고 나서 주변을 보니까, 이런 일을 겪고 있는 동료들이 너무나도 많은 거예요. 어떻게 대상을 만나야 할지, 윤리적인 문제로 직접 대상을 촬영하지 않고도 재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홍상유 씨가 운영하는 에피파니라는 출판사와 함께 리서치와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한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내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못 하겠어요.” 마민지 감독이 <성북동 일기> 작업을 하면서 깨달은 사실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버블 패밀리>를 세상에 내보였고 이제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위해 카메라를 들고 서있다.

글 | 송원재
사진 | 김경수
영상 | 김건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