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세 끼니를 먹기 위해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요리하는 것은 생각보다 시간이 든다. 아내와 단둘이 살 땐 서로의 식성이 비슷해서 메뉴에 대한 고민보다는 빠듯한 생활에 식재료 살 돈이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걱정을 먼저 했던 것 같다. 휴학 중 미뤘던 결혼을 하고 산속 외딴곳에 신혼집을 얻어 살다 보니 학교 다니는 시간을 빼곤 늘 함께였다. 도시를 처음 떠나 타지 몸살을 앓고 난 후 마음이 정돈되고 외주 받은 일도 마무리되니 스트레스도 줄었다. 이쯤 되니 주위를 둘러보게 되고 공터에 텃밭도 흉내내가며 직접 키워 먹는 재미도 알아갈 무렵 살아가는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 실로 오랜만에 즐겁게 만화를 그렸다. 이렇게 작업한 첫 자전적 이야기가 <불편하고 행복하게>란 이름으로 책이 되었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먹는 것인지도 모를 만큼 하루 세번의 식사 준비는 바빴다. ‘섭취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먹는 것이 곧 창작의 소재가 되었나 보다.
숨 쉬는 것만큼 무의식 속에서 이뤄지는 생존 행동은 아니지만 음식을 먹는 것도 살기 위해 거르면 안 되는 행위이기에 늘 어떤 요리를 해야 할지 고민이고 아이가 하나 둘 태어나면서 더욱 먹을거리에 대한 철칙을 세우게 됐다.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 내 생각을 이해하던아내와 아이들과도 많은 갈등을 겪었다. 나는 단순하고 분명했다. 몸에 좋은 음식은 몸과 마음을 키우고 고치는 데에 중요하며 자라는 아이들에겐 절대적인 가치가 있으니 이런 맘으로 식탁을 차려 내는 것으로 육아의 99%를 다한 것이라고. 그래서 되도록 내가 원한 방식의 음식만을 식탁에 올렸다. 자연의 것이어야 하고 무엇이든 내 손으로 만든 것 아니면 성에 차지 않았다. 나의 가장 첫 번째 가치는 자연에 가까이 살며 텃밭을 일구고 몸에 좋고 맛 좋은 음식을 만들어 가족들과 공유하는 삶이었다. 내 자전적인 만화는 앞으로도 이런 이야기들로 풍부하게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마당 씨의 식탁>, 2015 Ⓒ홍연식

그런데 현실은 늘 달랐다. 나는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 만화를 그리다 보니 노동집약적인 작업 특성상 많은 시간을 책상 앞에 붙어있어야 했다. 하지만 아내 역시 그림책 작가로서의 작업을 지키기 위해 아이 둘과 나의 계획 사이에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넣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서로의 작업시간은 수시로 교정하며 재배열되어야만 했다. 이런 와중에 시골집에 살다 보니 집 주변도 살펴야 하고 서툴지만 텃밭도 매일 둘러봐야 한다. 매일매일 바뀌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것도 잠시, 하루 세 끼니를 고민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저문다. 작업시간이 모자란다며 나는 늘 볼멘소릴 했으나 사실 내가 원하고 꿈꿨던 풍경을 가꾼 대가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클수록 나의 고민과 문제는 식탁 안이 아니라 식탁 밖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맛있고 안전한 식탁을 차리는 아빠가 아닌, 아빠 그 자체로 아이들에게 과연 충분했나 하는 상황이 늘 빈번히 일어났다. 가령 외부에서 아이가 원해서 사 들고 온 간식거리는 전혀 용납하지 않고 모두 쓰레기통이나 변기 속으로 던져졌고 둘째가 태어난 후엔 유치원에 적응 못 하는 첫째를 유독 혼냈다. 동생을 위하지 않는다고 호되게 야단치며 몸보다 큰 가방을 메어 유치원으로 등 떠밀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맘에 들지 않으면 화내고 혼내고 윽박지르며 아이를 다그쳤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빠가 정성스레 만들어준 음식을 먹은 우리 아이들은 상처가 치유되고 행복할 것이라고, 아빠의 도마 위에서 식탁 위에서 행복이 출발한다고만 믿었다. 둘째의 육아까지 아내와 함께하면서 작업할 시간은 점점 여유가 없었고 이젠 내 작업을 위해, 가족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생활의 균형이 무너졌다.

아이가 자주 움찔거리고 소변을 못 눌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와서야 모든 게 잘못되었구나 싶었다. 나는 그제야 식탁 바깥을 둘러보게 되었다. 어디에도 평화가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 내가 판단하고 옳다고 여기면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따라오기를 강요하며 씩씩대던 나만 있었을 뿐이다. 네가 유치원에 가야 아빠가 일하고 돈을 벌어서 요리를 한다고, 울던 아이를 다그치던 난 더 이상 아이와 놀아주는 아빠가 아니었다. 집에 데리고 있으면서 아내와 내가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많은 시간을 함께하다 보니 아이는 아주 천천히 조금씩 나아졌다. 나의 태도 역시 변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여전히 어떤 재료로 요리를 하느냐 신경 쓰지만 이제는 어떤 분위기로 함께 어울려 지내느냐를 가장 고민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큰 식탁에서 어떻게 따뜻한 마음을 나누느냐를 생각한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식사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즐거움을 돋우는 자리가 되면 족했다.

<마당 씨의 좋은 시절>, 2017 Ⓒ홍연식

더 넓은 의미의 식탁을 꾸리기 위해 매일 매일 구상한다. 식탁 밖에서 아이들과 아내와 지지고 볶으며 끌어안고 뒹굴다가 라면도 끓이고 보글보글 따뜻한 김치찌개 된장찌개도 끓여놓은 식탁에 둘러 앉는다.

어릴 때부터 부뚜막에 앉아 어머니가 요리하시는 모습을 보며 자랐고 그 정서가 좋은 나는 가족과 해 먹는 요리가 즐겁다. 하지만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 이면에 주사가 심한 아버지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를 자식들에게 풀었던 어두운 모습도 있었다. 어머니의 성격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나는 지난날을 때때로 후회하던 어머니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요즘도 부단히 나를 경계하고 있다.

내 많은 치부와 지나온 시간들 모두 만화가 된다. 부끄럽지만 이 또한 나를 돌아보는 방법이고 독자들과 소통하는 방식이 되었다. 이제 내 도마 위의 칼은 예전 같지 않고 많이 무디다. 아이들이 원하는 바깥 먹을거리를 쉽게 자르지 못한다. 학교 급식이 제일 맛있다지만 그래도 우리 집 김치가 최고라는 아이들을 위해 나는 이 녀석들의 입맛이 삶을 풍요롭게 이어갈 힘이 되는 음식으로 길들여지기 바라며 부엌으로 간다.

글 | 홍연식 (만화가, <마당 씨의 식탁>, <불편하고 행복하게> 등 다수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