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TER 2017

빈우혁, <오스카-헬레네-하임 54>, 캔버스에 목탄과 유채, 70×70cm, 2016

Liaison

Liaison. 리에종. 맞습니다. 불어입니다. 영어로도 그렇게 발음하지만 그 느낌이 좀 다릅니다. 불어로 ‘리에종’을 들을 때는 아주 비싼 음식에 곁들여진 부드러운 소스나 수프를 만난 것처럼 풍미가 감돈다고 할까요. 반면 영어로 ‘리에종’을 말할 때는 업무상 정확한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는 연결자나 VIP 옆에서 의전이나 의사소통을 명확히하는 통역자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조금은 낯선 이 단어, ‘리에종’이 그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술을 예술로서 더 빛나게 하는 그 어떤 장치들, 예술 장르간 연결고리가 되는 그 어떤 움직임들을 보고 싶어 겨울호의 주제로 삼았습니다. 그나저나 예종인들은 ‘리예종’으로 들릴 수도 있을텐데요. 국어사전 맞춤법/표기법에서 친철히 안내하고 있습니다. liaison(리에종) 외래어 표기, 리예종(X) . ‘리에종’ 맞고요, ‘리예종’ 아닙니다.

작가의 소소한 삶으로부터 리에종의 본질로 접근합니다. 첫 메뉴는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며 만화를 그리는 홍연식 작가가 ‘불편하고 행복하게’ 가족들과 차리는 식탁 안팎의 이야기입니다. 이어 탄핵과 대선, 어느 때보다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다사다난했던 올해의 모습을 영화, 드라마, 예능 등 대중문화의 여러 지층을 통해 분석합니다. 세 번째 차림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작가 셰익스피어가 작품의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풍미들’을 위해 배치한 몇몇 장면과 가려진 인물을 재발견하며 읽는 재미가 아주 쏠쏠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술이 ‘리에종’이라는 마법의 단어를 만나 예술 간, 예술가들끼리 그 안에만 머물지 않고 다시 허물어지고 뭉개지고 연결되는 지점으로 나아가는 사유의 흐름을 찬찬히 짚어 봅니다.

때 이른 추위 속에 찾은 스승은 황지우 시인입니다. 잡다하고 복잡하고 너저분한 시가 연극이 됐다가 그림이 됐다가 음악이 된다고 소년처럼 신났다가 시인으로서는 20년간 한예종에 저당 잡힌 시간에 회한을 섞다가도, 금세 전혀 예기치 않은 예술의 출현을 기대하며 하루빨리 통섭 교육의 복원을 갈망하는 선생님으로 돌아오는 그의 눈빛을 응시합니다. 다음은 발레리노에서 사진작가로 전향한 독특한 이력 덕에 늘 호감과 부담의 시선을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박귀섭 사진작가입니다. 오로지 자신만의 생각을 사진과 영상, 다양한 매체로 담아내며 ‘표현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주저 않는 그만의 이미지를 전합니다. 올해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 마민지 감독의 <버블 패밀리>가 한국인 최초로 대상을 수상했지요. 부모의 부동산 사업 흥망성쇠를 통해 한국 자본주의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버블 패밀리>는 블랙코미디 가족사로서 길이 남을 역작입니다. 마 감독이 얼마나 깊은 고민과 성찰 속에 가족의 삶을 켜켜이 쌓아올린 것인지 알게 되는 순간 그 솔직한 고백에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얼른 개봉되어 많은 관객들과 만나길 기원합니다. 또한 서로 다른 장르의 <적로>, <유리정원>, <다른 사람>, <재주도 좋아>가 각기 내뿜는 에너지도 대단합니다. 함께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리에종,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으니 긴 말이 필요없겠지요. 나머지 빈 칸은 이 계절에 흔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눈으로 채우겠습니다. 안녕, 안녕!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