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럽게도 “예술의 리에종”

리에종(Liaison). 이 부드러운 말은 프랑스어에서 왔다. 말의 소리가 그 자체로 좋아서인지 영어에서도 독일어에서도 리에종은 리에종으로 가져다 쓴다. 우리말에서는 리에종을 무엇과 대체할 수 있을까? 의미연관을 떠올려 본다면 가령 이런 말들이 가능하다. 연결, 연대, 연음, 연속, 혹은 어떤 인연. 예술의 리에종에 관한 글을 쓰고있는 지금, 나는 정확히 위의 단어들을 따라 사고의 수순을 밟았다.예술가들을 연결해주는 서비스? 예술가들 사이의 연락망? 그들 사이의 관계? 그들 간의 애정? 예술의 연결, 예술 속 연대, 예술 간의 연속…
이 모두는 새삼스러운 말일 수 있다. 흔히 동시대라 말하는 작금의 예술에 있어 전통적인 형식 혹은 장르의 구분은 무의미해졌고, 이미 리에종된 예술을 다시 ‘연결된다’라는 식으로 서술하는 문장은 그리 유력한 힘을 갖지 못한다. 예술의 경계는 이미 허물어졌고, 예술이 예술 아닌 것과의 경계를 허무는 지점까지 오간다. 때문에 우리는 예술에 대해 다른 사유를 시작한다. 예술적인 것은 대체 무엇이기에 연결되거나 경계를 허물거나 한다는 것일까? 예술적인 것은 어떠해야 하기에 연결과 경계의 지점을 촉발하는가?


원형적 이미지?

어쩌면 예술은 허물어짐, 뭉개짐, 그리고 이어짐 속에서 그 자체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 가능성은 항구적으로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아주 긴박한 상황 속에서 섬광처럼 나타난다. 칠흑 같은 어둠. 혹은 눈을 뜰 수조차 없게 밝은 서치라이트 속에 놓인 상황에서의 긴박함이었다. 하지만 우리 존재가 어둠이나 밝음 속으로 수렴해버리고 마는 그 안에서도 솟아 오르는 힘이 있었다.1)
이를테면 세계대전의 한 가운데에 놓인 일군의 예술가 난민들(도망자들)의 상황이 그랬다.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가슴에 작은 소망을 담은 그림을 안고 쓰러졌을 것이고, 누군가는 안전지대에 무사히 도착했을 것이다. 무사히 중립국의 품에 안긴 이들 중 몇몇은 취리히 모처의 작은 공간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일을 지속하고자 했다. 매일같이 모여 퍼포먼스를 하고, 자신들이 쓴 극을 낭독하고 연기했으며 회화인지 조각인지 시인지 모를 것들을 무대 위에 올리고 선보였다. 이 예술가들은 후에 우리가 다다2)라 부를 운동을 시작하며 ‘들고 일어나 ‘‘부수고 뒤집는다‘는 말을 담은 선언문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이것은 예술의 연결, 예술 속 연대, 예술 간의 연속, 예술가들끼리의 연합을 지시하는 특정한 이미지가 될 수 있다. 다방이나 술집 혹은 아지트에 몰려드는 각계각층의 예술가들의 모습과 연동되는 이미지의 원형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집중하는 부분은 이러한 원형성, 특정한 방식의 물리적인 장소, 구성원들의 집합된 양상, 혹은 다다이스트라 묶인 말이 아니다.
대신 긴박한 와중에 그들이 시도한 산발적이고 우연한 몸짓에 집중하고자 한다.그 자체로 이질적이고 부서지고 불협하는 행위들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들이 하나의 연대, 연속, 연결을 이룬 듯 보였다면 그것은 물리적이고 단일한 지대를 전제하기 때문이 아니다. 즉 저들의 이야기, 소리, 그림을 만들어낸 것은 중립국의 도시나 캬바레 볼테르가 아니다. 어둠과 서치라이트의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빛나던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이어 떠올린 장면은 다른 차원의 연대를 조직한다.

<불협화음의 기술:다름과 함께 하기>전 Ⓒ서울시립미술관

이어서 떠올린 장면

또 이러한 장면을 떠올려본다.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들었고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촛불을 들고 외쳤다. 어떤 가수는 목놓아 애국가를 불렀다. 누군가는 광장 앞에 텐트를 쳤다. 누군가는 그림을 걸었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었으며, 어떤 이들은 더 많은 빛을 위해 초를 나눠주었다. 열 몇의 음악인들이 선거를 독려하려 홍대의 모 클럽에서 만원짜리 공연을 위해 모여든 것이 그즈음의 여름이었고, 정치라 하면 텔레비전에서 송출되는 장면인 줄만 알았던 어머니와 내가 길에 나서게 된 것은 그즈음의 겨울이었다. 어색한 외국어로 길 가던 외국인에게 정치나 사회 등의 단어로 어떤 정황들을 설명한 일도, 침몰하는 모습과 한편에서 물결을 만드는 모습들이 겹치어 각종 뉴스 이미지들과 SNS상의 이미지들에 짜깁기 된 것도 모두 이 무렵이었다.
누군가 지루하다고 그만하자고 말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너와 내가 촛불을 들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노래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었던 것은 지루하게 어떤 사건을 지속시키거나 기억하려는 일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순간을 길게 늘어뜨리는 식이 아니라 아주 이따금 반짝이는 식이었을 테다. 하루 종일 징징대는 아이들과 씨름하던 젊은 엄마이거나 온종일 모니터 앞에서 눈을 비비적대던 지친 직장인. 이들이 늦은 밤에 자신의 촛불을 켜는 순간과 같이 말이다. 누군가 후- 불어버리면 그만이라고 했던 바로 그러한 양태로 모든 일은 일어났다. 그것은 아주 잠깐이었을지라도 강력한, 차라리 잠깐이기 때문에 가능한 기록들을 이어갈 뿐이었다.

기록물과 예술 사이

발터 벤야민은 자기 사유를 정리해 나간 짧은 글에서 <벽보 부착금지>라는 제목 하에 ‘속물들에게 맞서기 위한 13개의 테제’를 개진한다. 예술가와 예술작품에 관한 것으로 이루어지는 이 테제의 오른편에는 다큐멘트에 관한 문장이 병치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이 13개의 테제는 13개의 쌍을 이루는 26개의 문장으로 구성된 것이다. 눈에 띄는 것은, 벤야민이 스스로 예술에 부과한 규정이 있되 그것은 다시 다큐멘트에 관한 문장과 병치됨으로써 상쇄 효과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예술이 ‘명장’이나 예술가의 ‘종합적’이고 특정한 ‘형식’ 의 전유물인가 하면, 벤야민이 서술하는 다큐멘트는 ‘그 자체로는 예술작품이 아닌’ ‘소재적’이고 ‘흩어져있는’ 기록물이다.3) 이 둘을 병치하는 노트의 구조는 결국 완고한 형식을 갖춘 예술과 흩어지고 산만한 기록에 지나지 않을 다큐멘트를 동일한 위상으로 다룬다. 나는 이로 말미암아 예술가들이 모여서 내는 소리와 도시의 곳곳에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서 내는 소리를 겹쳐보았다. 이어서 “예술의 리에종”이라는 구절을 조정하려 한다. 예술은 리에종이라는 단어를 만나서 예술 간 예술가들끼리의 예술 속에 머물지 않고 다시 허물어지고 뭉개지고 연결된다. 그리고 나는 미흡하고 거칠며 불협하는 부분을 더 많이 가진 다큐멘트의 지점을 고민하고 있다.

제레미 델러, 알란 케인, <포크 아카이브> Ⓒ영국문화원

이 마을 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영국의 미술가 제레미 델러와 알란 케인은 1998년부터 2005년까지 대략 7년여 기간 동안 영국의 크고 작은 마을에서 사진, 영상, 사물들을 수집했다. 곳곳에서 흥미로운 사건과 사물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2005년에 작가들은 한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었다. 제목 은 <포크 아카이브>. 말 그대로 이 마을 저 마을을 이루는 민간 사람들의 일상적 단편을 모은 기록이었다. 아카이브에는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바스티유 기념일을 맞이하여 올려진 연극, 아마추어임이 분명한 여럿의 사람들이 가게 문을 닫고 그 앞에서 혁명의 순간을 연기한다. 그중 한 사람은 급기야 들라크루아 그림에 나오는 자유의 여신이된다. 노팅힐 카니발의 행진, 온몸에 칠을 하고 장신구를 단 채 거리에 나선 이주 아프리카인들의 걸음. 스코틀랜드에서 8월이면 열린다는 가시 돋친 남자 대회와 그해 우승자인 가시 돋친 남자의 의상. 그리고 못생긴 표정 짓기 대회의 일그러진 얼굴들. 파이프 담배 오래 피우기 대회의 참가자들. 병가 기록 제출장을 가득 메운 그림과 낙서들. 매춘을 홍보하는 전단지. 담배의 모양을 한 커다란 꽃다발. 곱게 꽃과 풀이 수놓인 레슬링 챔피언 팬츠.
이것들은 기록용 비디오 영상이나, 사진, 프린팅된 종이류 등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때로는 벽화, 시위대 선전용 깃발 등도 보였다. 그 외에도 진열대에는 크고 작은 패브릭, 라이터, 장갑, 관과 모터사이클(의 사진), 의상, 신발, 기타 연주용 피크, 성냥갑 등의 일상용품이 놓였다. 말하자면 모두 한갓 일상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평범하다 하기엔 조금 이질적인 감각적 형태를 가진 것들이었다. 알록달록하고 기이하여 일상적이지 않은 일상의 이미지들.
이들은 델러나 케인의 주의 깊은 관심에 의해 <포크 아카이브>에 포함되었다. 따라서 전시장에 놓인 기이한 이미지들은 일정한 선별에 의해 배치된 것이긴 하겠으나, 이미 그것을 조직하고 구성한 사람들을 상상하도록 한다. 사람들은 유별나 보이는 행사를 조직하고 일상 사물을 변형하고 이따금 다른 것을 덧대어 적극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결과적으로 나타난 사건과 사물은 다소 기이해 보인다. 그것들이 사실 일상의 한 편린이기에, 그러니까 익숙한데 익숙지 않은 광경을 촉발하기 때문에 유래하는 기이함이다. 일상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일상의 사물과 일상의 나날은 나름의 미적 형태를 갖춘 채 덧대어지고 일그러진 형태로 변경된다. 질서 정연하게 정박해 있던 일상은 흔들린다. 결국 일상은 정해진 자리로부터 조금씩 벗어난다. 그리고 틈을 열어 보이는 순간을 맞이한다.

감히 기대를 걸자면, 예술

분명 <포크 아카이브>가 제시하는 이미지는 매끄럽지 않고 소위 아름답다 할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마침 해당 작품을 가져왔던 서울 시립미술관의 전시 제목은 <불협화음의 기술, 다름과 함께하기>였다.
나는 예술들이라는 복수형으로 기사의 제목을 쓰면서 모든 다른 형태들과 기꺼이 함께하는 예술의 지점을 말하고자 했다. 무수한 일들이 일어나는 순간, 즉 ‘이게 나라냐’라며 울부짖던 사람들, ‘기억하라’ 외치며 울던 사람들, 추위 속에 초를 하나둘 켠 사람들, 꺼진 불을 다시 켰던 많은 사람들이 있던 순간에 예술과 예술적인 것은 어떻게 작동했는가? 그리고 지금 다시 예술과 예술적인 것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이를테면 저 무수한 일들을 기록하고 지켜보고 기억하고 다시 쓰는 일에 기대를 걸 수 없을까?
멀리는 1990년대, 가까이는 2000년대 초반 무렵부터 여러 이론가와 평자들이 예술에 또 한 번 전환이 일어났다고 입을 모았다. 그것은 예술이 보다 사회 깊숙이 관여해야 한다는 윤리적인 명제를 낳기도 했다.4) 나는 아직 이 전환의 구체적인 양상을 어떻게 정의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주제를 전면적으로 다루게 되었다는 것일까? 퍼포먼스나 아카이브 문서 같은 특정한 형태들이 더 각광받는다는 것일까? 일상에 놓인 관객들이 더 많이 참여하게 되었다는 말일까? 이 질문들에 답하기 전에 나는 이 짧은 글로 몇가지 단상을 갈무리한다. 그리고 그 실마리가 된 리에종이라는 단어는, 첫 도입과 다르게 예술 분과들의 몫이거나 특정한 예술가들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님을 보았다. 리에종은 아주 느슨하게 실가닥과 같이 남아서, 흩어지고 불협하고 산만한 조각들을 이름 붙일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감히 기대를 걸자면, 예술인 것이다. 예술, 조각이고 이따금 빛나고 곳곳에 기식하며 이상한 모양새로 등장 할 것이라 짐작할 뿐인 것들. 이 기대는 벤야민의 말을 빌리자면 다만 ‘속물들에게 맞서기 위한’ 것인 다른 형태들을 불러 모은다.

글 | 허호정
1)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반딧불의 잔존> 참조
2) 다다 : 후고 발, 트리스탄 차라 등이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을 광고한 이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반미학, 반합리주의 예술 운동
3)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조형준 역 참고
4) “Social Turn”, “Ethical Turn”과 같은 용어들이 논자들에 의해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