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었든 아니든 그 줄거리는 누구나 알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발레, 뮤지컬, 연극, 동화, 소설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자, 그럼 로미오와 줄리엣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뒤의 무대를 한 번 종이에 그려보자. 머릿속에 그려봐도 좋다. 그들은 어떻게 쓰러져 있을까? 무대 위에는무엇이 더 있을까? 관객들은 무엇을 보고 있나?
이 질문에 모든 사람은 쓰러져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그린다. 좀 더 세심한 사람은 관이나 약병, 단검을 같이 그리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줄리엣 옆에 파리스의 시체가 있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한다.파리스 백작은 베로나1) 군주의 친척으로, 17세인 로미오가 그를 ‘젊은이’라고 부르는 대사에서 추측하건대 10대 중반 정도의 소년이다. 그는 줄리엣의 정혼자이며, 마지막 장면인 5막 3장에서 줄리엣의 시신을 보러 묘지에 왔다가 뒤이어 나타난 로미오와 싸우다가 죽는다. 그의 마지막 부탁 때문에 로미오는 파리스의 시신을 줄리엣 옆에 눕혀준다.
익히 알려진 대로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가 온전히 창작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5막 3장에서의 파리스의 등장과 죽음은 셰익스피어가 추가한 내용이라고 한다. 사실 우리가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많은 각색자가 파리스를 이 장면에서 아예 빼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5막 3장에서 파리스는 사족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왜 굳이 그것을 추가했던 것일까?
요리에서 ‘소스나 수프를 걸쭉하게 하여 농도를 내고 풍미를 더하는 것’을 리에종이라고 한다. 리에종은 주재료가 아니면서도 요리의 깊이와 완성도를 결정하는 어떤 것이다. 리에종처럼 사소하면서도 결정적인 어떤 것들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사소해서 그냥 지나치기도 하지만, 다시 곱씹어보면 결정적인 것들. 물론 누군가는 이것이 결정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작의 비밀을 명징하게 밝히는 일이 가능하기나 할까. 삶에서 풍미를 결정하는 것들도 그렇게 미묘하고 주관적이다.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화폭 속의 거울

첫 번째 주인공은 유럽 북부 르네상스를 이끈 네덜란드 화가 얀 반 에이크의 대표작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다. 그림 속 상황에 대해선 이견이 좀 있지만 플랑드르의 부유한 상인 지오반니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 지오반나 체나미의 결혼식 장면이라는 해석이 가장 유명하다. 반 에이크 특유의 사실적이고 정밀한 묘사 덕분에 보면 볼수록 실제 사물을 보는 것만 같은데, 특히 그림 속 소품들은 결혼이나 종교에 관련된 의미를 표현하는 도상으로 해석되곤 한다. 이 소품 중 우리가 주목할 리에종은 바로 벽 중앙에 걸린 작은 볼록거울이다.
거울에는 부부의 뒷모습이 비친다. 그 모습이 아주 작아서 원근감은 두드러지고, 앞에서는 보이지 않는 부부의 뒷모습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전체를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까지 실현해준다. 게다가 거울을 자세히 보면 화폭에는 등장하지 않는 두 명의 인물이 추가로 등장하는데, 반 에이크 자신과 조수라는 설도 있고 결혼식에 참석한 사제와 증인이라는 설도 있다. 중요한 것은 관람자가 거울이 무엇을 비추고 있는지 발견하는 순간 화폭의 공간이 확장된다는 점이다. 반 에이크는 거울을 통해 닫혀있는 캔버스의 경계를 열어버린다. 그러므로 이 거울을 인지하기 전과 후의 공간감과 깊이감은 완전히 다를 수 밖에 없다.
에두아르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역시 인물 뒤편에 거울을 배치해 화폭 속 공간을 확장한 작품이다. 마네의 거울은 반 에이크의 거울보다 훨씬 크다. 거울엔 주인공인 종업원의 뒷모습과 손님 가득한 술집 풍경이 담겨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거울 속 살짝 기울인 자세로 손님과 마주한 뒷모습은 정면에 서 있는 자세와 미묘하게 다르고, 다른 사물과 비교할 때 반사 각도도 어색하다. 거울 속 반영과 실제 인물 사이의 모순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마네는 거울을 통해 인물의 두 가지 모습, 즉 종업원으로서의 모습과 혼자 있을 때의 공허하고 쓸쓸한 내면을 한 캔버스에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거울 이미지의 의도된 어색함이 이 그림의 주제를 완성한 리에종이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작품 속 거울

한 문장이 전체를 관통한다

몇 개의 단어나 문장이 작품 전체를 대변할 수 있을까? 작가는 흔히 대사를 쓰는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사실 극에서 대사는 작가가 창작하는 것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보통은 플롯이나 주제, 캐릭터가 더 중요하다. 그러나 가끔은 그것들만큼이나 대사 한 줄이 중요할 때도 있다. 한 줄의 대사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며 주제를 발설하는 경우다.
물 부족에 시달리는 가상의 도시, 한 대기업이 화장실 사용권을 독점했고 가난한 시민들은 돈을 내야 용변을 볼 수 있다. 돈이 없어 노상방뇨를 했다가는 경찰에 체포되어 ‘오줌마을’로 가게 되는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풍자 뮤지컬 <유린타운>의 배경 설정이다.
<유린타운>은 황당한 설정을 통해 통제사회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코믹하게 풀어낸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매력은 패러디에 있다. 예를 들면 주인공의 아버지가 노상 방뇨로 체포되어 끌려간 뒤 <햄릿>의 아버지 유령을 패러디하며 아들 앞에 나타나고, 기업의 횡포를 참지 못한 시민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1막 마지막 장면은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패러디하는 식이다. 유명한 장면뿐 아니라 장르 관습 자체도 패러디의 대상으로 삼는데, 이러한 기발한 유머들에 신랄하고 날카로운 메시지가 결합하며 위력을 발휘한다.<유린타운> 의 이런 매력은 후렴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Urine Town(오줌마을)”이라는 가사가 슬쩍 “You’re in town”으로 들리는 순간에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 번 발음해보자. Urine Town. You’re in town. 이것은 일종의 말장난이면서 동시에 “당신도 타운에 있다, 이 통제사회의 우화는 당신의 이야기다.”라는 주제를 전달한다. 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를 우리가 알아챌 때 작품의 의미는 훨씬 흥미롭고 풍부하게 다가오게 된다.
어떤 작품은 첫 대사가 작품의 주제를 발설하며 시작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햄릿>의 첫 대사는 이미 유명하다. 1막 1장에서 버나도와 프란시스코가 근무 교대를 하며 상대방을 확인하는 첫 대사, “거기 누구냐?”는 작품 내내 햄릿이 스스로를 마주하며 던지는 질문, “너는 누구냐”를 은유한다. 작품의 주제인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탐구가 첫 대사에서 이미 발설된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첫 문장 역시 마찬가지다. “재산이 많은 미혼 남성이라면 반드시 아내를 필요로 한다는 말은 널리 인정되는 진리이다.”2) 이 문장은 작품 내에서 부딪히는 주요한 힘, 즉 사랑의 추구자는 남성이어야 한다는 표면적인 관습과 실제로는 생활수단이 없는 여성이 남성이라는 재산을 붙잡아야 한다는 강박을 요약하는 주제문이다. 동시에 오스틴 특유의 장점인 풍자와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첫 문장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왜 거기서 죽었을까?

야경꾼

군주님, 살해된 파리스 백작이 여기 있고
로미오도 죽었으며 앞서 죽은 줄리엣은
따뜻한데 다시 죽었습니다.

- <로미오와 줄리엣> 5막 3장 194~196행3)

에두아르 마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파리스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셰익스피어는 왜 거기에 파리스를 등장시켰고 그의 시체를 줄리엣의 옆에 눕혔을까?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프롤로그가 있는데 해설자가 무대에 등장해 작품의 결말을 미리 얘기해버린다. “그들은 불운하고 불쌍하게 파멸하며 부모들의 싸움을 죽음으로 묻었도다. (중략) 그 내용을 두어 시간 무대 위에 펼치오니…”4) 이렇게 결말을 미리 알려주는 것은 이후 브레히트가 서사극에서도 사용했듯이, 관객들이 사건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하며 결말 자체에 집중하는 대신 그 일이 왜 벌어졌는지 집중하게 만든다.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이 벌어진 과정에 관객들이 집중하길 원했다. 아마도 그는 비극적인 로맨스 이상의 무엇인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시 영국은 헨리 8세로부터 시작해 ‘피의 메리’로 불리는 메리 1세와 엘리자베스 1세까지 성공회와 가톨릭 세력이 번갈아 집권했고 그때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던 시기였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몬테규와 캐플릿이라는 가문이 서로 한을 갖고 반목하다 결국 두 집안의 아이들이 죽는 이야기다. 로미오와 줄리엣뿐 아니라 결투로 죽은 티볼트와 머큐쇼 역시 두 가문의 젊은이들이다. 이 이야기를 현실에서 반목하는 두 종교에 대입하면 “두 종교가 싸움을 계속하면 아이들이 죽을 것이다”라는 메시지가 된다.
게다가 파리스는 몬테규나 캐플릿이 아닌 베로나 군주의 친척이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파리스의 죽음은 두 집단의 싸움이 그들만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베로나의 군주는 미혼으로 아이가 없는데, 이런 설정은 엘리자베스 1세를 떠올리게 한다. 셰익스피어는 중요한 장면에 전혀 중요해 보이지 않는 캐릭터를 하나 추가함으로써 자신의 여왕에게 조심스러운 조언을 하고 있다. 원한과 복수의 연쇄를 방치한다면 이는 두 종교만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것이라는. 파리스는 요리사 셰익스피어가 추가한 리에종이다.5)

“God is in the details”

똑똑한 예술가들은 때로 작은 것을 추가해서 작품의 크기를 키운다. 한 가지 소품이나 한 마디의 대사, 혹은 아주 작은 캐릭터 하나도 작품의 레벨을 다르게 만들어준다. 이런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장치는 때로 작가가 눈 밝은 관객에게 보내는 은밀한 암호와 같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작가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척하면서 사실은 큰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티를 내지 않으면서 강조해야하는 이 모순적인 상황에서 어떤 리에종이 얼마만큼 필요한지 잘 알고있다. “신은 디테일에 깃든다(God is in the details).” 독일 출신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에의 말이다.

글 | 김윤영
1)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되는 도시
2) 원유경 번역, 열린책들
3-4) 최종철 번역, 민음사
5) <로미오와 줄리엣> 5막 3장에 대한 해석은 2015년 연극원 극작법세미나 수업의 하워드 블래닝 교수의 해석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