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선별적 승인의 산물이라고 할 때, ‘승인’이라는 가치판단의 구조에서 배제된 것들이 분명히 있다는 전제에서 전시는 출발한다. 역사 서술의 규범에 의해 재현되지 못한 이들은 누구인가. 전시는 동아시아의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이 발생하고 작동하는 방식을 의제로 삼는다. 특히 젠더복합적 인식을 바탕으로 규범화된 전통을 해체-재배치해봄으로써 전통의 해방적 가능성에 접근하고자 한다. 김현진 예술감독과 세 명의 작가는 다른 시간의 파편들을 수집하고 재배치하는 예술 행위를 통해 규범에서 탈주하는 탈역사적 개입을 수행한다.

“세계는 변화했습니다”
남화연의 ‹반도의 무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구로 무용가 최승희(1911~1969)가 한 인터뷰에서 언급한 구절이다. 최승희는 20세기에 조선인으로 태어나 ‘사이쇼키’라는 일본 이름으로 활동했던 일제의 신민이었고, 국제적인 예술 활동을 펼쳤지만 조선의 해방 후 1946년 월북하였고, 그곳에서 동양무용을 완성시키고자 했으나 1960년대에 숙청된 예술가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 안에서 최승희는 늘 신화적 존재 혹은 이데올로기의 상징으로 해석되었다. 남화연 작가는 “아카이브에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의 시간이 내재되어 있다”며 ‘아카이브의 존재론’을 작업의 주제로 삼아왔다. 멀티채널 비디오 설치 작업인 ‹반도의 무희›에선 최승희의 인터뷰, 서신, 공연 사진, 영상 등 실재하는 텍스트가 타임라인의 한 축을 구성하며 제시되고, 다른 한편에선 최승희가 모티프로 삼았던 중국의 경극과 일본의 노(能)등을 현대의 무용가가 재현하는 쇼트들이 제시된다. 그 결과 영상은 과거의 자료와 현재의 안무 재현이 대면하여 브리콜라주적 내러티브를 구축하고, 최승희의 실제 텍스트에 기반한 내레이션은 이 시차를 관통한다. 작가는 최승희의 아카이브를 구성함으로써 그녀가 어떤 상태에 위치하고 있었는지 보여주고 당시의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한 인물의 이동과 곤경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그녀가 그런 상태에서 어떠한 선택을 하고 행동하는지 보여주며, 최승희라는 예술가가 어떠한 예술적 사건을 만들고 추동하는지를 제시한다. 작가는 아카이브의 재편을 통해 그녀에게 부여된 이데올로기적 이미지를 깨뜨림으로써 최승희라는 ‘예술적 사건’을 확장한다. 그리하여 지정학적 영토와 이념의 지형을 통과하며 춤추는 주체로서의 예술적 욕망을 조명해낸다.

제인 진 카이젠, ‹이별의 공동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상상적 계보학을 질감하기2
한편 정은영 작가는 공연예술계의 ‘퀴어 계보학’의 상상적 지형을 그려봄으로써 역사적 젠더 규범에서 탈주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이하 섬광) 파트1, 2, 3은 여성국극3 2세대 남역 배우인 이등우(이옥천)가 분장을 통해 남성으로 변하는 모습과 그가 무대에서 이몽룡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성 배우가 분장과 행위를 통해 재현하는 남성 표현은 성별 개념이라는 규범을 비튼다. 한국의 전통소리와 마찬가지로 여성국극의 남역 연기는 구음전수되며, 전수받은 원본을 제자가 일종의 독자적 해석을 통해 훈련하게 된다. 정은영 작가는 이 과정에서 각 창자들의 해석과 기량에 따라 맥락의 변형이 생긴다는 점을 밝히며 이로 인해 현대에 도착한 ‘전통’이라는 개념은 텅 빈 기호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4
이어서 작가는 여성국극의 변칙적 수행이라는 특징과 그 상상적 계보를 현대의 퀴어 퍼포머들로부터 발굴해낸다. ‹섬광›의 파트4는 반짝이는 프린지 커튼으로 둘러싼 유선형의 공간 안에 분리되어 존재하고, 관객은 일종의 무대 장치를 통해 상영 공간으로 입장하게 된다. 이러한 연극적 공간 연출은 퍼포먼스의 서사와 호응하는 형식의 기능을 하게 된다.
레즈비언 배우 이리, 장애여성극단 연출가이자 배우 서지원, 드랙킹 아장맨, 트랜스젠더 전자음악가 키라라, 이 네 명의 퀴어 퍼포머들은 자신의 신체적・정신적 정체성을 퍼포밍하고, 작가는 이들의 퍼포먼스를 기록하고 리드미컬하게 재구성한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안정적인 디지털 매체의 감각을 탈주하는 방식으로 섬광, 잔상, 소음들을 적극적으로 배치한다. 이러한 시청각의 혼란과 일상성과의 낙차로 인해 퀴어 퍼포머들이 경험하는 불일치하고 변칙적인 수행이 재현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퀴어한 몸과 퍼포밍을 ‘질감할 수 있는’ 공간에 놓이게 된다.

부재의 구전으로 구축되는 상실의 장소
주로 효 사상에 대한 설화로 통용되는 바리설화에서 바리는 딸이라는 이유로 버림받은 뒤 죽은 부모를 살리고 다시 공동체에 소속될 권리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바리는 이를 거절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영혼을 인도하는 삶을 선택한다. 원형적 무당의 출현이다.
제인 진 카이젠의 ‹이별의 공동체›는 바리설화로부터 유래한다. 작품의 뼈대는 제주의 고순안 무당이 행하는 무속의식과 노래다. 무당은 제주 4.3학살의 생존자인 무당 자신,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후손, 국적이 없는 재일조선인, 가족을 잃은 탈북 여성, 한국전쟁 후 ‘양공주’라 불리던 여성, 국가적 장려 속에 해외로 간 입양인 등 제도적으로 배제된 이들의 넋을 달래는 굿을 한다. 근대화, 식민주의, 가부장제, 전쟁 이데올로기로부터 지리적 기원이 상실당한 이들이 사회적 죽음을 맞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작품에서는 크게 두 갈래의 목소리가 나타난다. 이별과 이주를 겪은 이들이 자신의 삶을 말하는 목소리와 무당이 굿을 행하는 목소리다. 여성들은 말하고 카메라는 그들이 ‘상실당한’ 장소를 비추며 기억이 구전된다. 제주의 무당은 청자이면서 동시에 화자가 된다. 버려진 자들의 사연이 무당의 몸을 통과하며 목소리로 재현된다. 작품의 보이스오버 내레이터 중 한 명이자 ‹이별의 공동체›라는 제목에 영감을 준 김혜순 시인은 바리를 ‘자신의 부재를 여행하는 자’라고 언명한다. 낮과 밤, 죽음과 삶, 선과 악, 남자와 여자와 같이 분리된 제도・규칙・체제 사이에서 부재의 장소를 발견하는 자가 바리이다. 제인 진 카이젠의 작품에서 무속 제례는 단지 샤머니즘적 기원의 재생이 아니라 시공간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영토 없는 공동체5, 즉 바리의 공간이 되길 자처한다. 무속 의식의 수행에서, 추방된 타자의 목소리에서, 카메라가 응시하는 상실당한 장소에서 개인의 상실들이 모여 이별의 공동체가 재현된다.

“여자와 짐승을 변두리에 두거나, 권외에 두는 언어 체제가 있다. 이 체계를 거슬러 가노라면 ‘여자이고자 하는 자’를 죽음, 부재, 텅빔으로 변질시키는 ‘죽임’이 있다. 그러면 나는 부재의 운동성이 된다. 결핍의 수용이 아니라, 결핍이라고 규정되는 범주를 거치지 않는 방식의, 내 운동성의 리듬이며 속도가 된다. 나는 부재와 맞물려 움직인다.”6

글 김다은
1 2019년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관은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역사가 우리를 망쳤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전시를 선보이고 2020년 5월 아르코미술관에서 귀국전을 열고 있다. 전시의 제목은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에서 인용.
2 정은영 작가는 ‘질료의 물질성과 텍스처’로 인해 발생하는 의미를 지시하기 위해 ‘질감하다’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고 밝혔다.
3 여성국극은 해방 이후 대중문화의 한 흐름 속에서 번성하고 쇠락한 공연예술로 여성 배우가 남성을 연기한다는 장르적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
4 오혜진, «원본 없는 판타지», 후마니타스, 2020, 114쪽
5 김혜순, ‹쓰레기와 유령›, «여성, 시하다-김혜순 시론», 문학과지성사, 2017, 40쪽
6 김혜순, «여자짐승아시아하기», 문학과지성사, 2019, 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