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또 처음 경험해 보는 생중계라는 특별한 시스템 안에서 하는 연주였기 때문에 많은 것을 감안한 연주였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려고 했다.”
지난 4월 24일, 서초캠퍼스 이강숙홀에서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연주회가 열렸다. 두 시간이 넘는 공연 시간 동안 홀 안에는 관중이 한 명도 없었지만, 네이버TV의 한예종 예술극장 채널에서는 5,000명이 넘는 관객들이 생중계를 관람했다. 텅 빈 홀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음악원 기악과 김준한은 이 연주의 소회를 “피아노를 만지는 동안 직접 공연을 보지 못할 관객들에게 음악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함께 나누고 싶었고 최대한 전달되길 바랐다.”라고 전했다. 친구나 가족과의 만남도 자제하라는 지침 아래 극장, 전시장, 콘서트홀, 영화관의 풍경은 멈춘 지 오래다. 반면, 오프라인에서 막힌 문화생활을 대체하는 온라인 공연과 전시의 활발한 활동은 고무적으로 보인다. 국내 유수의 예술단체들은 앞다투어 온라인으로 작품을 공개하고, 영상으로 전달되기 비교적 어려운 미술 전시들은 VR을 사용한 가상현실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껏 장소 특정성의 한계가 명확했던 예술계 안에서 ‘장소’가 점점 옅어지고 있다. 바야흐로 물리적 좌표를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현재 활동 중인 한예종 6개원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고자 한다. 현재와 미래의 예술을 가로지르는 금 앞에 서 있는 젊은 작가들은 이 변화를 어떻게 체험하고 있을까.

올해 2월, 미술원 조형예술과 전문사 졸업 전시가 갤러리175에서 열렸다. 미술원 조형예술과 전문사 졸업생이자 설치미술 작가로 본 전시에 참여한 이세림은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전시에 대한 생각을 아래와 같이 전했다.
“솔직히 불안하기도 했고 관람객이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걱정도 많이 했지만, 전시는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설치 작업을 할 때는 설치 장소의 공간적 특성이나 시각적 균형을 먼저 생각하고, 최종적으로 전시장에 설치된 모습까지 머릿속에 그려 놓기 때문에 자기만족에 가깝지만 이번 작업이 전시장에 설치된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돌발적인 상황도 있었다. 특히 한 작가분이 전시를 3주쯤 앞두고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전시를 포기하고 싶다고 하셨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2인 1조로 진행되는 전시를 개인전으로 바꿔야 하나 당황했지만, 다행히 잘 마무리되어 전시는 예정대로 진행했다. 홍보가 특히 어려웠다. 개강이 미뤄져 학생이 아무도 없는 학교에 포스터를 붙일 수도 없고. 고민 끝에 작가들의 SNS를 중심으로 개별적 홍보를 진행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SNS 활동을 활발히 하기에 가능한 3일이었다.”
전시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작가 개인으로서 느끼는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다. “가상공간에 설치된 작업이나 가상공간 자체에 흥미가 계속 있었기 때문에 예술계의 이런 변화는 즐겁고 신기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부터 생각해오던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에 관련한 작업을 더욱 세밀하게 구상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전시 방식은 설치미술이 가진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고 영역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은 현실 세계, 즉 물질세계에서 지각하는 모든 감각 정보를 가상 세계에 그대로 구현할 수 없기 때문에 당분간 VR 전시나 영상 관람 이상의 큰 변화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공연 취소 사태를 직접 겪은 이들도 있었다. 연극원의 한 재학생은 작가로 참여했지만 3월에 중단된 공연 소식을 전해왔다. “아주 많은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걸 보면서 공연을 중간에 취소하게 될까 봐 불안감이 컸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극장 관계자들이 공연 중단을 종용했다. 강제로 그만두게 할 수는 없으니 제작팀 측에서 공연을 취소해주기를 바라면서 극장 주차장 무료 이용, 네이버 생중계 등을 ‘보상’으로 내세웠는데 그 무엇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온라인 생중계 같은 방식은 생계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저작권 문제도 있으니까. 공연 취소는 최대한 피하려고 하자 ‘욕심이 너무 많으시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결국 매진이었던 주말 공연 2회차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공연 표를 예매해주셨던 관객들께 죄송하다. 답답할 텐데도 마스크를 쓰고 객석에 앉아 공연을 보는 관객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 어느 때보다 공연의 필수 요소에 ‘관객’이 있다는 걸 되새기게 되는 날들이었다.”
전통예술원 연희과 예술사 졸업생이자 창작음악팀 ‘상자루’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쟁 연주자 남성훈은 영국에서 매년 열리는 ‘The Great Escape’ 뮤직 페스티벌에 공식 초청을 받았지만 페스티벌 자체가 취소되어 해외 진출로의 기회를 놓친 것에 짙은 아쉬움을 보였다. 다만 “전통예술은 워낙 마니아층이 적어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최근의 온라인 생중계 공연, 연주 영상 제작 등의 방식으로 접근성이 높아졌다. 일반인들도 전통예술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특히, ‘상자루’팀처럼 창작 음악을 하는 분야에서는 장소와 상관없이 더 많은 사람에게 음악을 들려줄 수 있을 뿐 아니라 흥미와 관심을 유발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라며 온라인플랫폼 활용에 대한 긍정적 견해를 보였다. 실제로 올해 무용원 예술경영과에 입학한 김수민은 감상자로서 느끼는 장점을 먼저 손꼽았다. “지금은 무료 온라인 생중계가 관객이 공연장에 오지 못하는 위기를 넘기는 수단이지만, 나중에는 문화권을 초월해 관객을 모으는 플랫폼이 될 것이다. 스트리밍이 관객과 아티스트가 함께 호흡하는 무대를 완전히 대체할 순 없겠지만 금전적, 시간적, 지리적 문제로 공연을 접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겐 단비 같은 존재다. 요즘 해외 극장에서 유튜브에 올려준 공연들을 찾아보는데 빠져있다. 새벽에 공연실황 중계를 켜면 온갖 나라 언어로 감상평이 올라온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계속되지만, 공연을 함께 보고 있다는 묘한 동질감이 들면서 심리적 거리는 줄어든다. 방식은 낯설지만 예술은 여전히 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코로나 19사태가 본인의 예술 활동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시나리오 작가인 영화과 예술사 졸업생은 “시나리오는 주로 집이나 카페에서 혼자 하는 업무 위주라 딱히 지장이 생기지는 않았다. 극장에서 상영하든 넷플릭스에서 상영하든 재밌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작품 창작에서도 큰 영향을 받을 것 같지 않다. 다만 동영상 플랫폼이 늘어나고 그곳에서 자체적인 콘텐츠를 개발하려는 시도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서 창작자로서는 긍정적 효과라고 생각하고 있다. 작가들에게는 시장이 넓어진 셈이니까. 드라마 같은 경우도 기존 공중파나 TV에서는 관람등급이나 표현 수위에 대한 제재가 보수적인 편인데 온라인 플랫폼으로 넘어가면서 창작자들이 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느낌이 든다. 개성 있는 작품들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라고 시장과 작품의 지경이 넓어질 거라는 희망을 내비쳤다. 이를 방증하듯 2020년 백상예술대상은 발 빠르게 심사 대상에 OTT(Over The Top)1 플랫폼의 콘텐츠들을 포함시켰다. 극장을 건너뛰고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사냥의 시간›처럼 스트리밍 플랫폼을 활용하는 사례는 점차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막 학교 밖에서 예술 활동을 시작한 신진작가들이 공통으로 주목한 것은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의 대두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현재는 공연예술계의 빙하기이며, 동시에 새로운 대륙 발견의 시대다. 물리적인 공간을 점유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던 신진 작가들로서는 금전적, 물리적 한계가 없이 즉각적인 반응을 볼 수 있는 가상의 플랫폼에 작품을 게재하는 것이 새로운 기회일 수 있다. 작가와 관객 간의 빠른 소통, 장소와 시간의 한계가 없는 자유로움 등 온라인 플랫폼의 장점은 확실하다. 반면, 아직 확실히 확인되지 않은 온라인 플랫폼의 한계와 문제점 또한 고려해야 할 문제다.
“접하기 힘들었던 국내외 공연들을 집에서 보면서 문득 이렇게 ‘집에서 편하게’ ‘무료로’ 공연을 보는 것이 당연해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현장성이 공연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 극장에 갈 수 없다면 NT Live처럼 처음부터 영상 기록을 염두에 두고 영상 촬영팀과 편집팀이 공연 연습 과정부터 참여하는 프로덕션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러나 현장성을 대체할 정도로 질 좋은 공연 영상이라는 전제가 가능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기록 영상 판매, 유료 스트리밍 같은 수익 모델도 제대로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처럼 현재진행형인 온라인 플랫폼의 문제점도 제기됐다. 저작자의 권리와 보상이 보장되지 않은 채 관객들이 무료 공연을 보는 것에 익숙해진다면 이 또한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에게 큰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변화구 속에서 예술가의 생계와 지위를 구제할 안전망과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았다.
바이러스로 인해 공장이 멈추자 미세먼지가 걷혔다. 관광객이 줄자 야생동물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좁아진 물리적 벽을 느끼면서도, 반대로 한없이 확장된 예술의 가능성을 엿본다. 거센 변화의 풍랑 속에서 누구나 불안하겠지만, 이에 대한 대답으로 이세림 작가의 말을 빌려 글을 마치고자 한다.
“아마 이 사태 이후 우리의 삶 자체가 크게 변화할 겁니다. 삶의 방식, 문화, 생활, 사고방식, 거의 모든 것들이 급격하게 변화하겠지요. 당연히 전시의 판도도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런 사태에 직면해서는 기술의 발달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고 변화시킬 것입니다. 지금은 그냥 보기만 하는 수준의 VR이나 영상 관람이지만 기술의 발달로 우리의 오감을 전부 가상으로 감각할 수 있게 된다면 현대 미술이 가진 물리적 한계와 틀을 뛰어넘는 큰 변화가 생길 겁니다. 당장은 관객의 참여 방식이나 설치 방식, 어떻게 체험하게 할 것인지, 혹은 어떻게 설치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지만 더 나아가 이런 시대에 설치미술을 포함한 예술의 범주와 의의에 대해 사유하며 작업의 주제나 실행 방식 자체가 옮겨갈 거라고 예상합니다. 사고의 범주를 완전히 바꿔야 할 때가 오고 있어요. 작가로서 이런 급박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은 두렵기도 하지만 아주 즐겁고 스릴 넘치는 경험이기도 합니다.
시대에 의해 변화를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부분이 저나 제 작업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인 것 같네요. 전에는 고정불변한 것을 쫓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변화하는 것들이 더 흥미롭고 즐겁거든요.”


우리는 지금 시대가 그어놓은 금 앞에 서 있다. 안온한 금 안에 웅크릴 것인지,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와 정면으로 마주할 것인지 그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있다. 새로운 물결을 타고 나아갈 예술가들의 건투를 빈다.

2020년 4월 네이버TV 채널 ‘한예종 예술극장’에서 생중계된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 시리즈 ‹Sturm und Drang› 2
2020년 2월 갤러리175에서 열린 미술원 조형예술과 전문사 졸업전시 전경
글 김수림
1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TV 서비스. 대표적인 OTT 서비스로는 넷플릭스, 유튜브, 티빙, 왓챠플레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