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사적으로 뉴 웨이브는 젊은 예술인들이 아버지 세대와의 단절을 선언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선언은 필요와 욕망에 의한 공표를 넘어서 새로운 힘과 논리, 아름다움을 향한 도움닫기로 작용한다. 모두가 영화비평의 침체를 시인하고 각개전투를 벌이는 시점에 스루패스1로서의 비평을 선언하는 영상비평플랫폼 『마테리알』이 나타났다. 『마테리알』이 노리는 것은 비평의 성좌(聖座)에 오르는 것이 아니다. 『마테리알』은 동시대의 동 세대 선수들이 함께 뛰는 리그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함연선 정경담

『마테리알』 의 지향: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다
정경담: 『마테리알』은 ‘스루패스로서의 비평’을 목표로 모든 종류의 실험적인 무빙이미지를 다루는 영상비평플랫폼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트랙을 운영 중인데 오프라인에서는 주로 신문을 발행하고요, 간혹 ‘비평의 비평’과 같은 행사를 기획해서 좌담회를 열기도 합니다. 저는 정경담이고 『마테리알』의 편집자이자 발행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함연선: 저는 『마테리알』 창간준비호부터 함께해오고 있는 공동편집자 겸 발행인 함연선입니다. 2018년 5월 사적인 모임 도중에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주관하는 비평 공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때 “반드시 등단을 해야만 지면을 얻어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쓸 수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시작됐죠.
정경담: 전업비평가가 되기를 바라지만 등단 자리는 너무도 한정적이고, 등단 뒤에도 글 쓸 기회가 많지 않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선생님’이나 ‘선배’들이 정해주는 주제로 글을 써야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됐고요. 우리가 지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좋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보자, 지면을 만들어서 글을 싣고 같은 세대의 필자들한테도 기회를 제공해보자는 결심으로 『마테리알』을 발족했습니다. 1년 동안 방향성을 잡고 플랫폼을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지 논의한 다음 2019년 5월 전주국제영화제 현장에서 창간준비호를 무가지로 배포한 게 시작이었습니다.
함연선: 기성 평론계에 대한 불만을 어떻게 타계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건 같은 그라운드 내에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축구 팬이거든요. 아스날 FC라는 축구 클럽에 메수트 외질 선수가 있어요. 외질이 수비수가 달라붙지 않는 공간으로 공을 보내 골을 넣을 기회를 만들어내는 상황을 많이 봐 왔어요. 설명을 들은 경담씨도 스루패스 개념을 『마테리알』의 신조로 삼으면 좋겠다고 말하더라고요. 새로운 공간을 만들겠다는 이야기인 만큼 기세 있게 선언의 형태를 취하기로 했어요. 2호부터 ‘다함께 박차차’씨가 편집자로 합류하면서 기존 선언문을 놓고 새롭게 해석할 여지를 논의한 뒤 그 갈래를 붙잡아 각자가 자기 방식대로 말을 보탰죠.
정경담: 지금 기조를 유지하는 한편 편집실 내부에 변화가 생길 때마다 ‘스루패스로서의 비평’을 다시 생각해보고 증보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어요.

비평의 비평: 기성 영화비평의 답습을 거부한다
함연선: 예전에는 ‘선생님’들 수준이 되지 못해서 글을 쓰고 있지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사실 20대 중후반에 활동을 시작한 86세대 평론가들 대부분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내공이나 식견을 가지고 글을 쓰지는 않았을 거 아니에요? 일단은 쓰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쓴 글을 공적 지면으로 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쨌거나 86세대는 시대적인 운을 타고난 세대예요. 그분들의 활동은 사회적인 맥락에서 주목을 받았고, 문화계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면서 교수가 되거나 영화제의 높은 직위에 가는 식의 위상을 가지게 되었으니까요. 반대로 우리 세대는 어떤 불안이나 불행 같은 걸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렇다고 86세대를 부러워하거나 “당신들은 운을 타고났으니 우리한테도 그 운을 좀 떼어 달라”고 말하는 건 웃기잖아요.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봐요. 우리는 우리의 불운으로부터 시작하자, 이렇게.
정경담: 한국의 기성 영화평론계를 돌아보고 비판하는 ‘비평의 비평’ 좌담에 대해서는 응원의 말도 있었지만 공격적인 피드백도 많이 받았어요. 개중에는 『씨네21』이나 『FILO』처럼 영화비평계에서 자리를 잡고 잘 해나가고 있는 잡지들을 굳이 왜 건드리느냐는 의견도 있었어요. 기성 평론가를 비판하지 않고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새로운 걸 시도하면 된다는 건데, 이전 세대의 관행과 확실하게 결별하고 새로운 세대로서의 저희를 구분 짓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벽을 세워 딛고 튀어나가는 반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런 자리를 만들었던 거예요.
함연선: 90년대처럼 여러 비평 잡지들이 등장하고 많이 팔리기도 하는 일은 앞으로는 없을 것 같아요. 그때는 경제호황으로 중산층이 급증하고 문화적인 욕구도 팽창하는 시기였으니까요. 지금은 영화비평을 소비하는 사람들만 집적 관심을 보이는 시대인데, 관심의 집중도가 굉장히 높아지게 된다면 그 나름대로 비평의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테리알』을 소개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강조하고 싶은 건, 동시대 예술작품과 비평의 상호 플레이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지 않고 존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저희가 『마테리알』을 잡지가 아니라 플랫폼이라고 소개하는 이유도 특정 정체성을 가진 집단을 유지하기보다는 같은 세대 젊은 필진들의 글이 모이고 공유되는 장이 되고 싶기 때문이거든요. 우리 함께 가시화가 되자는 거죠.

ma-te-ri-al.online
『마테리알ma-te-ri-al』 출판물

동료와 동업: 쉽게 뱉어 내는 우정을 거부한다
함연선: 편집자들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면 일단 싸웁니다. 싸우고, 풀고, 싸우고, 풀고. 싸우는 게 큰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테리알』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갔으면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싸울 수 있고.
정경담: 오히려 충돌을 통해 좀 더 방향성을 잡게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싸우고 나서는 잘 싸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아무래도 비평에 대한 관점이나 가치관이 자로 잰 마냥 똑같을 순 없으니까, 공동의 대주제 아래 무언가를 만들다 보면 계속해서 벗어나는 부분이 생기는 건 당연한 것 같네요. 서로 설득해나가고 싸우기도 하면서 조금씩 해결해나가고 있어요.
함연선: 올드 시네필들 사이에서 나오는 우정이라는 말은 온정주의적이기도 하고 호모소셜한 경향도 있어요. 그런 것들로부터 좀 멀어지고 싶기도 했고, 영화를 너무 사랑하는 감정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비평을 하고 싶어서 더욱 동료라는 표현을 쓰기도 해요. 나는 모 감독을 지지한다, 나는 모 감독의 어떤 영화들을 사랑한다, 왜 유독 영화에 대해서만 그런 말들이 나오는지 잘 공감이 가지 않더라고요. 어떤 우정인지 설명하지 않고서 우정에 대해 계속 이야기한다든가 영화를 사랑한다는 식의 찬사를 계속해서 보내는 건 너무 쉬운 말이에요. 비평가가 그런 말을 던질 때는 조금 더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축축하더라도 그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축축함이 있을 것 같거든요? 그 다른 축축함도 발굴해보고 싶어요.
정경담: 영상원에 다니며 지적으로 매력적인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세미나를 주최한 적도 참여한 적도 많은데, 그를 통해 맺어진 관계나 나눴던 대화 속에서 받는 자극들이 분명 있었죠. 학교를 다니면서 제일 고무적이었던 부분이에요. 특정 주제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은 욕망도 분명 있었지만 동료를 구하고 싶은 욕망도 세미나를 조직하는 데 크게 작용했어요. 그분들에게서 좋은 영향을 받아가고 싶었고, 같이 공부하면서 같이 발전할 수 있다고도 생각해요.
함연선: 『마테리알』이 추구하는 동료 관계도 공동편집자 세 명의 관계를 주축으로 하기보다는 외부 필진한테서 글을 받고 그 사람과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받을 수 있는 영향력까지를 전부 포함한 의미의 동료이고 동업입니다.

무빙이미지 비평: 영상매체의 구획을 거부한다
정경담: 오늘날 영화와 미술영상을 분류하는 기준은 화이트큐브를 통해 접하는지, 블랙박스에서 보게 되는지와 같은 관람 조건의 차이, 제작 주체가 미술계에서 활동을 시작했던 사람인지, 영화 제작 경험이 있는 사람인지와 같은 출신의 차이가 전부라고 생각해요. 『마테리알』의 관심사인 매체특정적 실험의 구현만을 놓고 보면 경계를 나눌 수 없어요. 무빙이미지라는 개념의 모호성에 의문을 드러내는 사람도 많지만 영화와 영상설치를 포괄할 수 있는 정의로서의 무빙이미지에 방점을 찍고 비평을 하고 싶었어요.
함연선: 지금까지 영화계에서 이루어져왔던 비평은 사후적인 해설이고 다양한 해석의 판본을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을 해요. 영화가 상업예술이라서 그런지 창작자들이 비평에 큰 관심이 없는 경우도 많고요. 그런 경향을 바꿔보고 싶어서 ‘스루패스로서의 비평’을 말하는 것도 있어요. 우리는 활발하게 당신 창작자들과 피드백을 주고받고 싶다, 이런 의미로요. 한편으로는 『마테리알』이 대안영화들을 소개하는 장으로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작업의 실험적인 차원을 분석하는 데서 나아가 일반 독자층이 좀 더 관심을 가질 만한 요소와 엮어서 소구대상을 넓히는 것도 목표입니다.
정경담: 다함께 박차차님을 영입한 이유 중 하나는 대중영화나 상업영화의 프로덕션 또한 같이 다루는 지면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대중영화라도 실험적인 시도를 할 수 있고, 그 지점을 비평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거죠.

『마테리알』의 근미래: 치고 달리기는 계속된다
함연선: 『마테리알』 편집자로 있으면서 비평계 전반에 대한 관심을 확장시키게 돼요. 비평사를 공부하다 느낀 건데 한국의 영화비평은 문학비평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조영일 선생의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 문학』을 다시 읽어보고 있는 중이에요. 동시대 미술비평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갖고 있고, 음악비평은 영화비평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도 궁금해요.
정경담: 세 명이서 『마테리알』을 발행하다 보니 우리 공동의 지향을 갈무리해볼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매체 비평들을 계속 읽어볼 필요는 분명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문학비평과 사회비평,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지 않은 이론의 동향을 파악 중이에요. 최근 눈여겨 본 작업으로 위켄드에서 열렸던 이소정 감독과 박세영 감독의 2인전 «범퍼! BUMP!»가 있는데, 그 전시에 대해서 『마테리알』 3호에 우리가 같이 쓴 비평이 실릴 예정입니다.

『마테리알』 편집자들은 그들 자신이 힘차게 차올린 공을 다른 선수들이 이어받아 달리기를 바라고 있다. 언젠가 다시 한 번 도래할지 모를 영화비평의 새로운 르네상스는 단독적인 성좌(聖座)의 구축보다는 성좌(星座)들의 발견과 운동을 통해서만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성공적인 스루패스를 위해 선수들은 자신의 감각을 믿고 돌파를 시도해야 한다. 그때까지 지치지 않고 움직일 것을 약속하면서, 『마테리알』은 언제나 동료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다.

글 이상현 | 사진 김경수 | 영상 안정민
1 스루패스(through-pass) : 축구 경기에서 공격하는 팀의 선수가 상대 팀의 후방에 있는 두 명의 수비수 사이로 또는 수비진의 틈을 “관통하여”, 수비수 뒤편이지만 골키퍼는 접근할 수 없는 열린 공간(open space)으로 보내는 패스. 사람에게 패스하는 것이 아니라 비어있는 공간으로 패스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간패스라고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