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이러스가 침투하고, 머물다가 떠나기도 하는 인간의 신체가 무대라는 시공간에서 움직이는 것이 무용공연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무대가 네모난 화면으로 옮겨지면서 내가 지금까지 경험하고 연구해오던 ‘무용’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모르겠다. 동료도, 교수님도 모른다. 참고할 사례도 없다. 그저 그립다. 나의 일상, 손을 잡고 극장에 가고, 몸을 부딪치며 춤을 배우던 때가.

국내에서 첫 코로나 확진 판정이 나온 것은 1월 20일이다. 우리는 메르스를 기억하며 빨리 잠잠해지길 기다렸지만 여름으로 넘어가는 지금 시점에 마음만 점점 지쳐간다. 잠잠해지긴커녕 팬데믹이 시작되고 공연예술계는 멈췄다. 국립무용단, 국립발레단,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은 줄줄이 취소되고 예술의 전당, LG아트센터는 잠정 휴관에 들어갔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는 봄 시즌을 취소하고, 프랑스 샤이오국립극장은 문을 닫았다. 무용수들은 자신의 부엌, 거실, 마당 어디서든 의지할 바(Bar)를 찾아서 신체 훈련을 한다. 다시 서게 될 무대를 바라며.
내 졸업식도 취소됐다. 졸업 후 계획한 이스라엘 여행도 취소됐다. 나는 텔아비브에 있는 바체바무용단1에서 진행하는 워크숍에 참여하려고 했다. 그들의 움직임 언어를 경험하고, 나의 움직임 언어를 찾고 싶었다. 아쉬워하던 차에 오히려 코로나 덕분에 온라인 가가(GAGA)수업2이 열렸다. 하루에 7개의 수업이 줌(Zoom)을 통해 전 세계에 공유된다. 수업비는 기부금으로 받는다. 나는 이게 웬 행운인가 싶어 방에 있던 침대를 팔아 빈 공간을 마련했다. 수업은 텔아비브와 뉴욕에서 각 시간대로 9, 14, 18시마다 30분에서 45분 정도 진행된다. 아이들을 가르치던 일도 코로나로 쉬게 되어 나의 생활은 이 수업을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한정된 공간에 갇혀 마음까지 처지기 십상인 상황에서 이 수업은 그 자체로 하나의 퍼포먼스다. 무용인들이 이 재난에 적응하는 방편이면서 동시에 무용을 즐기는 사람들과 무용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자택 거실에서 가가(GAGA)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
다양한 장소에서 수업을 받는 학생들

진짜 퍼포먼스도 온라인으로 옮겨갔다. 바체바무용단은 매년 프랑스 샤이오국립극장에서 공연을 해왔지만 지금은 레퍼토리를 극장 홈페이지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립 무용단체들도 네이버TV와 유튜브를 통해 일정 기간 동안 레퍼토리를 공유했다. 관객은 더 이상 공연장에 오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공연 내내 침묵하지 않아도 되고 과자를 먹어도 된다. 기존의 공연 제도는 허물어지고 있다. 공연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면 우리는 이제 어디서 작품의 수익을 얻을 수 있을까? 최소 3개월 이상의 무용수의 트레이닝, 안무가의 계획, 리허설, 디자이너, 작곡가, 기술자와의 협업, 모금하고 관객을 동원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은 어떤 무대를 바라봐야 할까? 이를 위해 존재하던 지원제도들의 목적지는 어디가 될 수 있을까?
국립현대무용단은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응한다. 그들이 제작한 온라인 현대무용 콘텐츠 중 ‹DANCE ON AIR 혼자 추는 춤›은 가장 큰 성과를 이뤘다. 이 시리즈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취소된 ‹봄의 제전›, ‹비욘드 블랙›,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출연할 예정이었던 무용수들이 제작한 짧은 솔로 춤 영상이다. 각자의 공간에서 셀프로 제작된 3분 가량의 25개 영상들은 유튜브를 통해 관객에게 공유되어 누적 조회수는 18만회를 넘었다. 무용수와 관객 모두 기존의 무용의 관념에서 벗어나보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동시에 무용수는 무대에 서지 못하고, 관객은 극장에서 신작을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며 수익도 창출한 사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막막하다. 무대에 미처 올라가지 못한 채 사라지는 작품들을 보는 것은 쓸쓸하다. 공연 전 시끌벅적하던 객석의 풍경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비어있는 자리들은 무대 위 무용수들에게 공허함을 안겨준다. 그들의 몸짓은 의연했지만 지난 시절들을 그리워하는 눈빛에 담긴 씁쓸함은 감출 수 없었다.

국립현대무용단 ‹DANCE ON AIR›

이 씁쓸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월 말 긴급지원책을 발표하며 예술인의 생계를 위한 융자제도와 창작활동을 위한 지원제도 예산을 긴급하게 편성했다. 서울문화재단에서도 ‘코로나 19 피해 예술인 긴급지원사업’ 계획을 발표했는데, 당초 선정 규모의 10배에 해당하는 4,999건이 접수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공연장 대관료 지원 등 구체적인 대안 찾기에 나섰다. 기간도 앞당겨지고 금액도 확대했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활동을 시작하는 나와 같은 신진 무용가들은 기존의 작업 형태 대신 새로운 형식을 고민해야 한다. 이 참담한 현실을 감당하기에 학교에서의 경험과 배움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이번 사태는 한국의 무용 생태계가 작가들과 작품들에게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이에 비해 영국에선 엄격한 이동제한조치가 발표된 다음날 기다렸다는 듯 영국 예술위원회가 문화 예술 지원 특별 프로그램을 발표하였다. 이 기간 동안 정부는 위기에 처해 있는 예술 단체와 개인을 지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자금을 사용한다.3 또한 영국 무용계의 중심 협회, 원댄스 유케이는 홈페이지에 ‘디지털 댄스 이벤트 캘린더’를 통해 무용가들이 온라인상에서의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예술 활동과 춤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오랫동안 영국 무용가들이 노력한 결과였다.
얼마 전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만난 머스 커닝햄의 춤은 현재 코로나 사태로 갇혀버린 인간의 신체와 사라져버린 무대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했다.4 영상 속 그는 도시를 배경으로 전성기가 지난 노인의 신체로 춤을 추고 있다. 이 원숙한 신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현재 사태를 예견한 듯 물리적 한계를 넘어선 확장된 영역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당시 그도 느꼈을까. 영상이라는 기술이 무용과 접목할 때 무용은 어떤 지혜를 얻고 발전할 수 있을지. 무용은 과연 행복해지고 풍요로워질까?
춤은 공연되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오랜 시간에 걸친 무용수의 모든 트레이닝, 안무가의 계획, 리허설, 디자이너, 작곡가, 기술자의 모든 노력은 춤이 물질화되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 이렇게 붙잡아두기 힘든 예술은 아마도 더 없을 것이다.5 그런데 이번 사태로 춤이 온라인으로 옮겨지면서 영상으로 기록되고 관객은 그것을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본다. 재생산 없는 재현이었던 춤은 영상 속에서 재활용될 수 있을까? 무대 위에서 발생하는 무용수의 초인적인 힘과 사라짐의 마법이 없는 무용 공연은 어떠할까? 작품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층을 쌓아 하나의 견고한 구조물을 이루는 것이 퍼포먼스라면 영상과 만나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그러면 관객과 무용수가 가까이 호흡하던 무대는 사라져도 괜찮다. 나는 폐허가 되어 먼지가 가득한 극장을 상상하며 홀로 내 방을 무대 삼아 춤을 춘다. 그곳에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춤을 꺼내본다.

글 서태리
1 오하드 나하린(Ohad Naharin)이 상주 안무가 (House Choreographer)로 있는 바체바무용단(Batsheva Dance Company)
2 가가(GAGA)는 오하드 나하린이 개발한 움직임 언어이다. 수업에서는 개인이 가진 이미지, 경험 그리고 감각을 신체의 민첩함, 체력, 힘과 연결시켜 움직임 속에서 즐거움을 찾도록 한다. 가가수업은 화상회의 서비스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인에게 실시간으로 전송되어 매 수업마다 200~300명이 참여하고 현재까지 2만달러에 가까운 기부금이 쌓였다. 강사들은 주로 무용단의 단원이거나 가가를 가르치던 선생님들이다. 무용단원들은 시즌이 취소되어 쉬면서 잃어버릴 수 있는 춤에 대한 감각들을 이 수업을 통해 지속적으로 단련한다. 물론 수입도 얻으면서.
3 이 지원 프로그램은 크게 3가지 지원 프로그램으로 나뉘는데, 국가 지정 단체들, 이들 단체 이외의 예술단체, 개인 예술가와 문화 예술계 종사자에게 각각 배정된다. 영국예술위원회는 국가 복권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익금과 창작 개발 기금으로 지원금을 조성했다.
4 ‹머스 바이 머스 바이 백›(1978)은 백남준이 춤추는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 1919-2009)을 촬영한 작품으로 무용가 머스를 머스 자신이 안무하고 백이 비디오 아트로 담아냈다는 뜻이다. 포스트모던댄스를 창안한 커닝햄은 백남준과의 협업을 통해 비디오 댄스로 나아갔다.
5 안드레 레페키, 『코레오그래피란 무엇인가』, 문지윤 옮김, 현실문화연구, 2014, 28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