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시간 맞춰 모바일 기기로 생중계 공연을 보는 사람들. 코로나 시대에 극장과 관객이 만나는 모습이다. 극장 공간에 대한 논의는 이전부터 있었지만 코로나 시대에 더욱 중요한 고민이 되었다.
“어떻게 관객과 만날 수 있을까?” 다양한 모습의 극장을, 그리고 그 사이를 떠도는 관객을 어떻게 포착할 수 있을까? 여러 시도와 논쟁이 오가는 가운데 최근 『극장에 대하여』를 출간한 예술경영가 이승엽 교수를 만났다. 그는 오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극장의 통시적인 차원의 종단면과 개별 극장의 미션인 횡단면을 살피며 그 교차 지점을 질문한다. 예술의전당 창립 멤버이자 세종문화회관 사장을 역임했고, ‘하이서울페스티벌’1의 예술감독이었던 이승엽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극장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본다.

연극의 새로운 형식적 시도에 대해서
저는 주로 주류 극장에 있었지만 느슨한 간극이 가능한 장르를 좋아하거든요. 딱딱한 극장에서 성장했는데, 막상 좋아하는 것은 딱딱한 극장을 부정하는 공연인거죠. 2010년 ‘하이서울페스티벌’ 예술 감독으로 있었을 때 특히 좋아했던 것은 공중에서 하는 에어리얼 쇼였어요. 에어리얼 쇼는 퍼포머가 야외 담벼락에서 줄을 타거나 특별한 스토리 없이 높은 곳에 올라가 흔들흔들 움직이는 쇼예요. 그런 극의 형식은 무정형이에요. 기존의 프로시니엄 아치 극장이 가장 일반화된 것이라면 이렇게 일반화된 것에 도전하는 시도들은 아직 뭐라고 정의하기가 어려운 것들이죠.
예술이라는 것이 그런 거잖아요. 기존의 질서, 고정관념, 가치에 대해서 회의하고 전복하려는 속성이 있는 거죠. 극장도 주류 극장에 대해서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가 팽팽하게 지속되고 있어요. 코로나19 이후에 눈에 띄는 현상 중 하나로 이머시브 시어터2 이슈가 있죠. 이머시브는 기본적으로 극장 아닌 곳에서 진행되고 개인의 예술 체험을 중시하기 때문에 지금 상황처럼 개별화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상당히 좋은 대안이 되는 것이죠. 핸드폰이나 모바일을 통한 예술경험이다보니 다 같이 모여서 프로시니엄 극장에 모여 한 방향을 보고 소비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대척점에 있는 거죠.

“비정형, 탈장르, 융복합, 혼종, 다양성” - 극장의 미래
제가 『극장에 대하여』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 키워드들은 ‘극장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자문하며 나온 것이고, 사실 그 질문에 대해선 ‘명확하게 얘기하기 어렵다’가 답이에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예술계의 지난 30년만 되돌아보더라도 두 가지의 큰 흐름이 있거든요. 하나는 문화폭발이죠. 공연 단체 수, 작품 수, 관객 수, 극장 수 모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시장 매출도 상승세가 4.5년마다 두 배씩 늘어났어요. 시장 폭발과 함께 또 목격되는 것은 세분화예요. 역할과 분야가 가지를 치고 새로운 주체들, 경향들, 시도들 심지어는 새로운 장르들까지 들어오고요. 예술경영도 그렇게 생겨난 분야 중 하나죠. 예술 생태계의 분화된 역할, 요소들이 지난 30년 동안에 새로 생겼거나 세분화된 것이 굉장히 많아요. 그러니까 비정형이나 탈장르, 융복합 이런 것들은 우리 예술 생태계가 폭발과 세분화를 경험했듯이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는 거거든요. 다만 극장은 금방 바뀌지 않아요. 그래서 지체가 생기죠. 다양한 시도들이 극장이라는 공간에 반영되는 것은 상당히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테크놀로지와의 융합이 지속 가능하기 위하여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예술 감독을 할 때 제가 좋아했던 초청작품들은 다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것들이었어요. 그 중 영국 극단 1927의 영상이 주가 되는 퍼포먼스는 전형적인 영상 사용과 상당히 달랐어요. 영상을 단순히 테크놀로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절묘하게 확장하는 데 성공한 사례였죠. 이전에 「새로운 경향 그러나 멜로로의 귀환」3이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거든요. 공연의 형식이 더 기술적이고, 더 첨단화될수록 플롯의 구조는 멜로4에 더 가까워져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기술을 과시하지 말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도록 노력하자는 것인데, 그것이 지금 통하는 주요한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어릴 때 저희 집은 시골에서 영화관을 운영했거든요. 그때도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등장해서 영화산업이 몇 번 위기에 처했고, 당시에도 많은 시도를 했죠. 안경을 쓰고 보는 입체 영화가 그 시도 중에 하나인데 성공하진 못했어요. 그런 의미로 지금 시도들에서 멜로가 중요하다고 한 것이에요. 기술이 작품에 녹지 않으면 한 번 해보고 지나가는 것으로 끝날 수 있다는 뜻이에요.

하이서울페스티벌 2010, 스트레인지 프룻 ‹스피어스›
세종문화회관 사장 재직시 2016년 ‘세종 시즌’을 기획, 발표하는 이승엽 교수 ©세종문화회관

온라인 플랫폼과 극장의 관계
요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공연 중계나 공연 영상물 상영에 관해 이슈가 있는데, 사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전에도 있던 논의예요. 우리나라에서 논의가 되어왔던 것은 영상 공연이 단순히 극장에서 하는 공연을 스크린으로 옮겨서 재현하는 것이냐, 아니면 그 자체로 새로운 영역이냐는 질문이었어요. 그때 핵심적인 용어는 현장성이죠. 저는 영상공연이 변형된 형태긴 하지만 직접적인 공연과는 또 다른 형태의 현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코로나 사태로 인해서 온라인 공연이 급격하게 쏟아지는 이런 사태는 불가피한 상황에 의한 것이죠. 이것이 새로운 영역으로서의 공연 영상물 시장을 구체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극장과 무대를 둘러싼 예술가들이나 스태프들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죠. 서로 보완관계에 있기는 하지만 무대공연과 영상공연이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시도들은 주로 극장이 주도하는 것이거든요. 극장이 기존의 콘텐츠나 자원들을 배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콘텐츠를 확장하는 개념이죠. 그런 측면에서 이해하면 되는데, 그 두 영역이 경쟁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긴장 관계가 되는 것 같아요.

현재의 문화 정책에 대한 고민
극장이나 예술이 사회적 산물인 것은 자명한 것이잖아요. 법률로 대변되는 제도, 정책, 경제, 문화, 사회 이런 요소들이 다 반영되죠. 극장에도 당연히 반영되고요. 문화정책이 어떤 때는 현장보다도 많이 앞서는 경우도 있어요. 어젠다를 세팅하고 개발하는 데 있어서 예술 현장, 예술가들의 공감이 생기기도 전에 앞서가는 경우죠. 특이하게 예술인복지 같은 것이 대표적으로 그렇게 생겨난 제도에요. 아마도 우리가 효율을 중시하고 경제성장이나 여러 고속 성장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일 거예요. 적은 인풋에 많은 아웃풋을 내는 가성비를 바라는 것이 정책 결정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는 거죠. 예술정책에선 그런 공식이 잘 맞아 떨어지지 않아요.
속도를 더 줄여야 하고, 당국이 앞장서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해당 주체들이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죠. 당연히 시간은 느리게 가고 효율은 떨어지겠죠. 그럼에도 동질적인 요구를 가진 그룹이 자기 목소리를 솔직하게 내는 것이 필요해요.

관객이 지나가기 전 - 경영자의 눈으로 본 노동환경
극장이라는 공간은 예술가들이나 스태프들에게는 노동 현장이거든요. 사명감과는 별개로 안전문제 같이 노동 현장으로서 갖춰야 할 것들은 극장을 운영할 때 상수로 고려해야 하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예술가들이나 그들을 서포트하는 스태프들뿐만 아니라 극장엔 눈에 안 보이는 노동자들도 많아요. 시설 관리인들, 관객이 지나가기 전에 작업하는 미화원들과 관객이 극장에 들어갈 때 제일 먼저 마주치는 주차 안내원들까지. 그런 인력들과 서비스들이 다 합쳐진 것이 극장이라는 공간이거든요. 그런 일을 하는 분들은 눈에 띄지 않고, 그 노동이 핵심노동이라고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처우가 열악하죠. 그런데 달리 보면 그런 곳에서 서비스와 예술이 생겨나는 것이거든요.

수업에서 학생들을 만날 때
전통적인 교육관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요. 전통적인 교육관이라고 함은 ‘학생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쏟고, 학생들의 성장을 위해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것이죠. 아마 제가 처음 커리어를 극장에서 시작했고 극장은 내부 고객들인 스태프들이나 외부 고객들인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니까 그런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처음 학교에 왔을 때 학생들을 나의 고객으로 보는 관점을 가졌어요. 아까 얘기했던 교육관과는 전혀 맞지 않죠. 그런데 이 관점에서 한 가지 제안한다면, 교원이나 학생이나 직원이나 마찬가지로 존중이라는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어떻게 보면 무책임할 수도 있어요. 내 것은 내가 알아서 하고, 학생은 학생 개개인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죠. 얼마 전에 라디오에서 들은 농담으로 ‘선생들이 처음엔 배운 대로 어려운 것만 가르치고, 나이 들면 아는 것만 가르치고, 더 나이 들면 기억나는 것만 가르친다’고 하는데 저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예술경영인이 갖춰야 할, 혹은 그에 요구되는 태도와 조건
예술경영을 본래 학문적으로 간(間)학문이라고 하거든요. 예술과 경영 사이에, 항상 사이에 있어요. 그래서 그것 자체로 영역을 만드는 순간 정체되는 것이죠. 공연 현장에서도 예술가와 관객 사이에 있고 스태프와 예술가 사이에 있어요. 어떤 때는 통역자라고 얘기하기도 해요.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그룹들 사이에 있거든요. 재정 당국이 사용하는 언어, 용어, 방식, 또는 계산은 예술가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달라요. 그래서 어떤 때는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수 있고 양쪽 모두에 속할 수도 있어요. 예술경영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쨌든 자기가 발 디딜 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하지만 그것은 일정하지 않아요. 예술가에 아주 가깝기도 하고, 정책가에 아주 가깝기도 하고요. 그 자리에서 다만 열려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다른 분야에서도 매우 중시하는 덕목이긴 하지만 소통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자질에 가까운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승엽 교수는 코로나와 관련해 “죽음의 골짜기를 건너야 한다”는 말을 인용하며 “청년에게 왜 그 골짜기가 더 깊고 힘들까 생각해보면 불확실성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 해요. 어쨌든 그 골짜기를 지나가야겠죠.”라고 말한다. 최근 학교 실험무대 공연에서 본, 서로 조심하고 긴장하며 불안한 골짜기를 ‘어쨌든’ 지나고 있는 예술가들이 떠오른다. 이승엽 교수는 여러모로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불안한 골짜기의 예술가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여 그 교차점에서 새롭게 시도될 극장의 미래를 기다리며 어쨌든, 무사히 지나가자고.

글 김연주 | 사진 김경수 | 영상 김지웅
1 2016년부터 ‘서울거리예술축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 Immersive theater. 관객이 수동적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작품에 참여하는 공연을 뜻한다. 배우들이 관객들 사이로 내려와 연기하거나, 관객들이 걸어 다니면서 관람 장소를 옮기는 방식도 이머시브 시어터의 한 형태다.
3 『한국연극』, 2008년 07월호.
4 장르로서의 멜로. 통속적이고 감상적인 극을 말한다. 파토스, 과도한 감정, 도덕적 양극화, 비고전적 서사 구조, 선정주의 등이 특징이다. 비고전적 서사 구조, 선정주의 등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