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라는 건 단지 거대한 서사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가의 흥망성쇠 속에서 펼쳐지는 왕의 일대기나 위대한 침략자들의 움직임만이 역사의 한 페이지는 아니다. 종종 주류 집단의 서사만이 보편의 이야기로 포장되곤 하지만 정말 보통의 역사는 권력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개개인의 삶 속에 있다. 김덕수의 일대기를 담은 ‹김덕수전傳›은 한 사람의 삶에 녹아들어 있는 역사를 꺼내어 보여준다. 광대이자 예인인 김덕수의 역사이며, 요동치는 근대의 기록이자 동시에 새로운 전통의 시작이고, 그 새로움이 다시 ‘고전’이 되어가는 일대기다.
가로등이 깜빡이던 불노상점의 불이 꺼지고, 음악이 시작된다. 무대의 중앙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김덕수의 장구 소리에 맞춰 연주되는 음악에는 많은 것이 혼재되어 있다. 국악기의 낯설고도 익숙한 소리에 이어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녹아든다. 피아노의 연주는 재즈를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흐르는 장단과 맞아 들어가고, 바이올린의 소리는 국악기를 연상시키는 음정과 울림을 펼쳐 낸다. 그리고 그 많은 악기를 이끌고 있는 김덕수의 장단은 분명 한국의 장단이다. 사물놀이로 대표되는 김덕수이기에 가장 기본적인 사물놀이 장단에서 시작하지 않을까 했던 예상과 달리 오히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다양성을 받아들인 현대의 국악이 어디쯤 와있는지를 보여주는 사운드였다. 그렇게 국악의 최전선에 서있는 지금의 김덕수는 어린 시절의 모습과 오버랩되며 다시 가장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첫 장면, 관객들은 조치원의 난장에서 어린 무동인 ‘새미’로 연희 인생을 시작한 어린 김덕수를 통해 과거의 한국 음악을 만나게 된다. 어떤 관객에게는 새로운 체험이고 누군가에게는 함께 살아낸 시대에 대한 회고일 것이다. 새미가 등장하는 남사당패의 공연은 ‘마당’의 음악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익살스러운 인형들을 통해 풀어내는 가장 낮은 곳의 삶. 원초성을 드러내고 흥을 돋우는 타악기들의 장단이 이어진다.
그 시절의 공연은 윗동네 아랫동네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구경하고 즐기고 함께하던 진정한 의미의 마당극이었다. 낙랑악극단 시절을 재현하는 두 번째 장면에서는 아코디언과 바이올린과 드럼이 때로는 민요를 때로는 트로트풍의 음악을 연주한다. 단순한 음악공연뿐만 아니라 B급 마술쇼까지 함께 펼쳐지는 이 ‘종합엔터테인먼트’는 그 시대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을 만나던 광대의 삶이 그 시대를 품어내고 위로하는 역할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마당에서 시작된 김덕수의 광대 인생은 점차 무대로 그 판을 옮겨 가기 시작한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빠르게 산업화가 진행되고, 삶의 형태가 변하면서 광대들은 마당을 상실해갔다. 공연의 개념 역시 무대 위에서 행해지는 것으로 전환되었고, 국악은 더 이상 삶 속에 녹아들지 않는 대신 ‘전통’으로만 남게 된다. 그렇게 상실한 전통의 자리를 새롭게 바꿔 놓은 것이 바로 ‘사물놀이’였다. 농악의 무대화에서 가능성을 보고 만들어진 사물놀이는 흔히 생각하듯이 오래 내려온 음악의 형태가 아니라 1978년도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전통적인 마당이 해체되면서 ‘무대’로 올라가기 위한 필요에 의해서였다. 마당에서 벌이던 놀이이자 삶 속에 녹아 있던 노래와 장단이 재편성되어 무대로 올라간 것이 하나의 사건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렇게 무대로 올라가 ‘공연’이 된 사물놀이는 다시 전통으로서 뿌리내리고 뻗어 나가기 시작한다.

©세종문화회관

하지만 ‹김덕수전傳›의 관심은 흔히 그를 수식하는 이름인 ‘사물놀이의 창시자’로서의 김덕수를 조명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傳)’이라는 명칭에서 읽히듯 ‹김덕수전傳›은 한 명의 광대, 한명의 예인으로서 김덕수를 공연을 통해 총체적으로 조명한다. 사물놀이 이전의 남사당패 공연과 낙랑악극단의 무대는 온갖 타악기가 보여주는 장단의 향연인 동시에 버나와 인형극 등 여러 극적 요소들로 화려하게 채운 축제의 장이었다. 이어서 가장 전형적인 사물놀이의 무대와 더불어 창과 결합된 복합적인 형태의 무대의 등장까지, 김덕수는 그 속에서 장구를 치고 태평소를 불며, 때로 목청을 높여 추임새를 넣고, 장단을 타는 몸짓을 보여주며 그의 예술 세계의 총체를 보여준다. 공연은 때로 연주에 집중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장면에 관객을 몰입시키기도, 영상과의 조화를 보여주는 순간을 만들어 내기도 하며, 어떤 지점에서는 김덕수가 독백을 하며 이것이 결국 그의 자전적 이야기임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물론 이렇게 많은 요소가 결합되다 보니 전체의 흐름에서는 산만하다는 인상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시간 변화하고 흡수하며 넓혀온 그의 예술적 삶을 드러내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때로 관객을 참여시키기도 한다는 점이다. 김덕수가 관객과 호흡해온 역사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사물놀이의 기본 장단을 객석의 관객들에게 가르치고 이끌어 내면서 모두 함께 전통 음악을 체험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든다. 사실 국악은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낯선 음악이라는 점에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박물관의 유물을 감상하듯 전통을 살아 있는 것으로 대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관객들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장단과 그 장단들이 악기 속에서 어떻게 호흡하는지, 서로 다른 악기와 주고받는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장단과 여러 소리가 함께 얽혀 들어가고 합쳐질 때 발생하는 희열을 객석에서 느끼게 하는 것은 분명 특별한 경험이다. 객석에 앉아서 일방적으로 감상하는 대신 모두가 실연자가 되고 동시에 다 같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관객이 되는 그 순간은 어쩌면 전통적인 마당극이 무엇이었을지 가장 잘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곳엔 다같이 하나의 에너지를 공유하는 몰입의 경험이 있었다. 사라져버린 과거의 마당을 현재의 무대 위로 진정한 의미에서 소환한 순간이었다.
그의 이름을 내건 공연이었고 그 속에서 김덕수는 엄청난 에너지와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의 63년 인생을 그려냈다고 하나, 앞으로도 더 많은 서사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걸어온 시간 속에는 언제나 음악과 연희가 숨 쉬고 있었기에 이를 회고하는 전기에서는 자연스레 전통연희에 대한 그의 책임감과 자부심이 묻어났다. 때문에 이 공연은 공연이라는 형태를 지니고 있는 하나의 기록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외관을 바꾸고 재구성되었다가 아예 새로운 것과 융합하여 변화를 꿈꾸기도 하는, 지키고 전승해야하는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변신을 요구받는, 외면당하면서도 동시에 인정받고, 많은 고민과 의무를 동시에 안고 있는 ‘전통예술’의 역사가 김덕수라는 한 개인의 인생을 관통하여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글 윤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