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저는 파리에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누가 이 편지를 읽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떤 관객들이 공연을 보러 와주실까 기대하며 무대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누군가에 닿을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닿았듯이.

올해 2019년 저는 드디어 만 29세가 되었습니다. 이 편지를 쓰며 정말 오랜만에 10년 전을 뒤돌아보았습니다. 2009년 저는 만 19세의 발레리나였습니다. 저는 남들보다 일 년 빠르게 대학생이 되었고, 그 덕분에 조금 더 빨리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던 저는 2009년 난생 처음으로 ‹백조의 호수›라는 작품에서 주역을 맡게 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지요. 그때는 백조의 날갯짓의 무게가 버거웠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직 미성숙했고, 덜 여물었던 제 감정들을 끌어 모아 배신감에 휩싸인 오데트를 연기했습니다. 결국에는 지그프리트를 용서하며 그를 끌어안는 결말은 음악을 따라가며 연기해내었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어린 나이에 맡은 주역이라는 자신감에 들떠 있었던 과거의 제 연기는 조금 오만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짧은 국립발레단 생활을 뒤로 하고, 저는 2011년 파리오페라발레단의 공개 오디션에 합격하게 되는 극적인 행운을 붙잡았습니다. 다른 국립발레단에서 솔리스트 입단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파리오페라발레에서 제 자신의 한계를 깨보고 싶었지요. 주역이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파리로 날아온 지난 8년 동안 가장 밑바닥부터 차례차례 올라가면서 날것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국에서 누릴 수 있던 것, 과분했던 칭찬은 프랑스에는 없었습니다. 저는 서툰 불어와 그보다 더 서툰 영어로 동료들과의 대화를 필사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서럽고 억울했던 순간들은 이를 악물고 참아냈습니다. 현대무용 작품을 연습하다가 동료의 구두 굽에 채여 평생 남게 될 이마의 커다란 상처도 이겨냈습니다. 고국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유럽의 무대에서 홀로 고군분투 했었던 과정이었으며 하루하루가 도전이었죠. 그 모든 순간을 믿음으로 기도했기 때문에 신께서 내려주신 은혜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큘로. 002: 이미지, 먼지와 기념비 사이에서

지난 10년 동안 저는 커다란 시련을 극복하면서 좀 더 단단하게 여물어지며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모습으로 2017년 미국 뉴욕 무대에 파리오페라발레단 공연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조지 발란신의 안무작인 «보석» 3부작 중 ‹다이아몬드› 공연이었지요. 오랜만에 방문한 뉴욕이었지만 아메리칸발레시어터Ⅱ에서 2007년부터 2년 동안 활동했었던 무대였기에 낯설지는 않은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공연으로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수상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요. 그래서 더 기쁨이 컸고 그동안의 노력과 앞으로 걸어갈 길에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올해 1월에는 한국에서 한국이미지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이렇듯 과분한 수상을 통해 그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무용수로서의 에너지를 무대에서 남김없이 불태워볼 생각입니다. 3월에 올리는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정기공연 ‹백조의 호수›에서 주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폴 라이트풋·솔 레옹, 마르코 고크 등 저명한 현대안무가들의 신작 무대에도 설 예정이고, 상하이, 도쿄 등 한국과 가까운 아시아에서의 해외 투어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한국에서도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제 춤을 통해 많은 이들이 감동을 느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으니까요.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님, 선후배님, 그리고 제 무대를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더욱 더 발전된 모습으로 뵙기를 희망하며 이번 시즌 인사 드립니다.


2019년의 어느 초봄에
파리국립오페라발레단 제1무용수
박세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