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수

“디자인은 소통이다.”
박인석 교수는 디자인과 소통을 말하며, 사회의 소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저변의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자신의 문제의식을 전했다. ‹디자인, 세상을 비추는 거울›로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한국 디자인계에 대해 나름의 진단을 내렸던 디자이너 박인석 교수. 다시 한 번, 그에게 지금의 디자인은 어디쯤에 왔고, 우리의 소통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매거진 ‹K-Arts›에서 물었다.

지금, 우리의 디자인은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
이제 건강한 삶을 위한 디자인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동안 디자인과 관련해서는 산업이라는 용어가 당연히 따라다니는 것으로 이해했어요. 예술이 저쪽에 있다면 디자인은 이쪽에서, 돈을 많이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겨지고 인식되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이유는 디자인을 명사로만 취급해온 이유도 있는 것 같아요. 과거에 디자인은 ‘좋은 디자인’, ‘나쁜 디자인’처럼 명사로만 쓰일 때가 있었죠. 하지만 요즘은 ‘동사’로서의 디자인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디자인 ‘하다.’ 즉,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내며, 그 대안을 창조해 내는 것이지요. 무엇보다도 삶을 보다 더 건강하고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디자인에 관한 동사적 관심, 즉 세상을 건강하고 이롭게 하려는 것. 이것이 디자이너가 갖춰야 할 덕목이고, 디자인이 세상에 해야 할 일입니다.

이에 더해서, 지구적인 규모의 디자인 발전 현상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 디자인사를 가르치거나 배울 때, 우리는 미우나 고우나 1861년 유럽에서의 ‘Arts and Crafts Movement’를 세계 디자인사의 시작이라고 배웠어요.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반쪽짜리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서양 디자인사를 놓고 우리의 선생님인 것처럼 대하고, 빨리 숙달을 해서 따라가야 했죠. 하지만 지금 한국은 우리의 지혜와 가치관에 빛을 더하고, 세상의 문제를 풀어내는 근본을 준비하고 창조할 때에 왔습니다. 누군가 ‘동과 서를 넘어서는 디자인(Design beyond East&West)’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처럼 국제 사회라는 새로운 짐 하나를 거뜬하게 지고서 달려 나가며, 시대적 소명을 감당할 때가 온 것이지요.

공공디자인문화진흥법(안) 관련 포럼에서 토론하는 박인석 교수

디자인이 일종의 키워드로 사회 여러 분야에서
저변을 확대해 나가는 것 같다.
디자이너가 디자인의 프로세스를 주도한다고는 할 수 있지만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전담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각계 각 층의 정보와 지식이 응축되고, 새로운 가치가 창조되어야 훌륭한 디자인이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의 대상인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 이와 관계되는 모든 사람들이 디자인에 참여합니다. 고객들이 어떤 요구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 요구분석도 하지요. 그런데 이 요구분석은 직접적인 고객에게만 하지 않죠. 모든 관계 집단의 요구를 찾아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합니다. 그러니까 디자인은 세상의 모든 이들과 같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디자인을 잘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요? 당연히 소통입니다. 디자인을 하는 쪽도, 의뢰한 쪽도 모두 ‘이것이 불편하고, 이것은 좋고, 이것은 박수 받을 만하다.’ 하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해 내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때, 디자인의 확장은 각자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관, 조건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들 간의 어쩔 수 없는 차이와 다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 자기 얼굴을 찾아나가고, 이를 소통하는 사회가 된 것이지요.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께서 최치원이 언급한 ‘접화군생(接化群生)’이란 말로 디자인을 설명하신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세상의 다양한 것들이 서로 만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번성하는 곳. 그게 세상이고 그게 디자인 아닐까요?

공공디자인 진흥에 관한 법률을 입안하는 데 참여하셨다.
많은 예술 분야에 공공성 논의가 요청되고 있는 시점에, 공공을 위한 디자인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묻고 싶다. 한국디자인학회의 일을 할 때, 디자인 문화를 진흥하기 위한 법안을 연구하는 일에 참여했고, ‘공공디자인 진흥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었습니다. 공공디자인의 정의는 책이나 학자에 따라 매우 다르겠지만, 이 법에서 말하는 공공디자인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디자인”입니다. 정부가 길을, 다리를, 포스터를 만든다고 할 때, 서울시가 발주하는 어떤 사업이 있다고 할 때에 해당하는 것이에요. 만약 사적인 디자인에 대비하여 공공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건 아니라는 거죠. 사실, 그런 디자인이 어디 있겠어요. 모든 디자인은 집에서 쓰는 것이라 할지라도, 심지어 속옷이라 할지라도 바깥에 노출될 수 있죠. 그러한 점이 유의되어서 디자인되어야합니다. 때문에 완전히 사적인 것으로 놓을 수 있는 디자인은 없다는 것이죠. 공공성이라는 성질은 당연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디자인은 밀실에서, 몇 사람에 의해서, 정치적 판단에 의해서 결정되기도 했거든요. 디자인이 동시대 문화를 반영한다고 말들은 하지만 그게 일부에 의해서 결정되고 나머지는 그냥 조용히 숙연하게 참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메커니즘, 프로세스를 잘 정립하는 공공디자인이 여전히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5년 방글라데시 국립다카대학교 드림프로젝트에 참가한 당시 모습

그동안의 디자인 업적을 돌아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이나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유학을 늦게 갔어요. 준비하던 미국행을 버리고 프랑스로 갑자기 목적지를 바꾸었지요. 국내에서 벌어지는 지나치게 편향된 디자인 문화현상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보고 싶었습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첫 인상은 ‘무언가 다르구나,’ 였습니다. 그런데 뭐가 다른가? 개인의 낱낱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시스템의 문제이죠. 그들은 문제 상황이 생기면 계속 논의를 해요. 결정권을 가진 한 군데서만 물어보고 ‘됐어, 결정 났어.’ 이게 아니라 많은 사람의 얘기를 끊임없이 듣는거죠. 단두대를 거치면서 황제를 바꾼 혁명의 역사를 가진 그들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의 메커니즘을, 시스템을 돌보고 또 돌보면서 혁신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내가 스스로 우리 인프라 구조를 개선하는 일에 헌신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유학에서 돌아오니 할 일이 되게 많더라고요. 디자인 정책, 교육, 전문 디자인 기업 경영, 일반 기업에서의 디자인 경영, 디자인 트레이드, 미디어. 아이디어는 많으나 그것이 세상에 쓰이지 못하거나 디자인을 필요로 하지만 어떻게 의뢰할지 모르는 경우 등 소통이 필요한 곳에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줄곧 인프라의 문제를 다루는 일에 관계해 왔습니다. 그 신념에는 지금도 바뀐 것이 없고, 또 후회하지도 않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MI 리뉴얼, 2008

‘K-Arts’라는 UI와 브랜딩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다.
2002년에 학교에 왔어요. 가을 학기에 와서 겨울을 지나고, 학교 차원에서 맡았던 문화부 상징물을 디자인했죠. 그 후에 당시 총장님이 University Identity, UI 제작을 제안하셨어요. 우리 학교의 설립이념이 ‘Creative Minority’, 창조적 소수입니다. 학교의 규모도 작고 인원수는 적지만, 이를 불리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일당백(一當百)의 결론을 만들어내자는 것이지요. 그때 총장님께서 일당백 가지고는 안 된다, 일당만(一當萬)은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한예종 초창기엔 그런 절박함, 사명감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상황에서, 학교 이름으로 통용되는 커뮤니케이션 브랜드가 없었어요. 그때는 우리 학교가 한종대, 한예종, 크누아(KNUA) 등 다양하게 불리면서 통일된 명칭이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통일하는 일을 먼저 건의했죠. 그리고 제 마음 속에서 유일한 솔루션이라고 생각했던 ‘K-Arts’라는 브랜드가 채택이 되었어요. K-League나 K-POP은 K를 앞에 쓰죠, 이것은 당연히 코리아(Korea) 입니다. 국가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면 K를 쓰지 않아요. 또한 미국의 UArts나 CalArts처럼 뒤에다 Arts를 붙이면 예술학교가 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K-Arts’는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학교라는 상징을 자연히 얻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주)디자인파크와 함께 ‘K-Arts’를 디자인했습니다. K 뒤에오는 빨간 점은 문장부호 아포스트로피(')인 동시에 학생들이 뛰어놀 수 있는 예술의 마당이라는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 빨간 점은 각 원 별로 활용하여 변경할 수 있도록 하고, 전체 이미지는 국제화와 국립대학의 긍정적인 의미를 위해 틀을 잡는 것으로 했습니다. 로고 혹은 심볼이 처음에는 당연히 낯설기 마련입니다. 처음부터 익숙한 디자인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늙은 것입니다. 처음부터 마음에 쏙 든다면, 동시대성에 맞는 것이지 더 먼 미래를 바라보는 것은 아니거든요. 처음에 K-Arts가 브랜드로서 UI로 자리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많은 분들의 지지를 받아 지금 이렇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미술원 디자인과는 어떤 비전으로 꾸려졌고
향후 어떤 성과를 기대하는가?
우리 학교 디자인과는 운송 디자인, 인터랙션 디자인 그리고 시각디자인, 제품디자인 이렇게 네 전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세부 전공에 따라 학생들을 나눠서 뽑고 있어요. 입시와 관련된 최근의 시도들은 인재를 선발하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첫 걸음의 중요함을 대변합니다. 우리는 집념과 재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학생의 자의적 판단과 열정을 믿었어요. 그리고 그것을 최대한 물어보고 답을 얻어 전공에 맞는 학생에게 기회를 주고 있지요. 무엇보다도 우리 학교는 콘서바토리라는 교육 키워드가 있어요. 콘서바토리는 미국형의 일반적 대학교가 아니라 유럽형에 가까운 실무 교육 기관입니다. 프랑스의 요리 학교 수업을 보면, 반드시 메뉴를 개발을 해서 스텝들과 모여서 메뉴를 가지고 장사를 해 봐야 해요. 공짜로 주든 판매를 하든, 대중들이 와서 음식을 먹고 그 메뉴에 대한 찬반을 이야기하도록 해요. 그리고 홀 서비스는 어떻게 하고, 메뉴는 어떻게 하고, 식재료는 어떻게 사서 관리를 해야 하는지 등 식당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것들을 준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모든 일에 실무적으로 익숙하게 되어야 졸업장을 준다는 것이에요. 이렇게 되면 공부가 재밌지 않겠어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디자인과는 실무 중심의 문제를 중요시하고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UI, 2006

정년을 앞두고, 기억에 남는 일화나 향후 더 매진하고 싶은
디자인 연구가 있다면 무엇일까?
교육과 관련해서 정년 이후에라도 협력할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요. 너무 빨리 변하는 대신, 그에 대한 대응책을 만들기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죠. 특히 교육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니까요. 필요하다고는 주장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잡기가 어렵죠. 일단 미디어를 사용해야 하겠더라고요. 물론 새로운 미디어의 여러 부정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심리학이나 기술이나 분석을 통해서 다르게 이용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남녀노소 모두가 미디어를 사용할 수 있는 휴대폰은 다 가지고 있잖아요? 덧붙여 교수를 하면서 갖고 있는 중요한 기억 한 가지는 우리 학교에서 외교부의 지원을 받아 방글라데시의 국립다카대학교에서 디자인 봉사를 했던 일입니다. 2014년, 2015년 여름에 외교부에서 우리 학교를 지정해 다른 나라에 가서 예술 교육을 하는 사업을 요청해 왔어요. 지금의 방글라데시는 우리나라가 수출국을 국가의 지상 과제로 해서 구로공단 만들고, 마산수출자유지역 만들던 때와 분위기가 무척 비슷해요. 아직 디자인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죠. 가령 인사동 같은 문화구역이 있지만, 교통 표지판이나 안내 사인이 없어요. 국립현충원 같은 곳은 국가 행사가 있으면 대통령도 오는 곳인데 평소엔 우범지대예요. 싸움이 빈번하고, 쓰레기가 쌓여 있고. 이런 상황에서 지역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이 도입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죠. 또한 지역의 산업을 브랜딩 차원에서 다루는 문제 등 여러 아이디어들을 1, 2차에 걸쳐서 국립다카대학교의 그래픽 디자인과 학생들과 교수와 함께 논의할 수 있었어요. 3차에 구체적으로 실현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우리가 가끔 가던 레스토랑 근처에서 테러가 일어나면서 세 번째 해에는 외교부의 출국 제한 조치가 내려오게 됐어요. 많이 아쉬운 일이에요. 정년을 맞으면 방글라데시 관련 일도 해야 할 일 중에 하나로 있어요.

당신의 디자인 철학을 묻는 어설프고 방대한 질문에 박인석 교수는 답한다. ‘좋은 디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디자인하는 동사적 태도가 있을 뿐이라고. K-Arts의 미래와 한국 문화의 인프라 구축을 고심하고 헌신한 박인석 교수. ‘디자인하는’ 태도 속에서 펼쳐진, 그의 넓고 깊은 시야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글 허호정 | 사진 김경수 | 영상 이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