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훈, 조성윤, 권효창 ⓒ상자루

‘코리안 집시 상자루’는 우리의 고유한 전통 가락에 독특한 요소를 담아내어 새로운 음악을 창조해내는 3인조 그룹이다. 전통예술원 연희과 풍물 전공 권효창, 음악과 아쟁 전공 남성훈, 한국음악작곡과 작곡 전공 조성윤 이 세 명의 만남으로 이루어졌다. 전통에 대한 열정이 가득 담긴 상자루의 음악은 갈수록 대중의 관심을 얻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들만의 가락과 금빛 열정을 만나봤다.

‘코리안 집시 상자루’의 탄생기
한국의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새로운 음악을 창작하고 연주하는 단체 상자루입니다. 상자루는 ‘상자’와 ‘자루’를 합친 이름이에요 ‘자’가 중복되었죠. 전인평 선생님의 이론 중 하나인 상자 음악과 자루 음악의 합성어로서 만들었어요. 상자 음악은 상자 안에 어떤 것을 넣어도 일정한 틀이 유지되는 것을 말하고, 자루 음악은 자루 안에 넣은 것의 모양에 따라 자루 모양이 변하는 즉 유동적인 음악을 말합니다. 우리는 상자 음악을 전통음악으로 두고, 자루 음악을 여러 가지 창작 요소로 여겨 ‘상자 안의 자루 음악’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기에 팀 이름을 ‘상자루’라 짓게 되었습니다. 음악을 하는 집시들은 살면서 많은 지역을 유랑합니다. 그들은 각 지역을 다니며 문화를 습득하게 되는데 각 지역에서 들은 음악을 있는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스타일로 다시 재창조하여 연주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우리도 집시들처럼 우리만의 색깔로 창작 요소를 더하기에 상자루 스스로를 ‘코리안 집시’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동갑내기 삼총사, 도전을 위해 뭉치다
우리는 모두 국악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대학교 1학년 때까지 기숙사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뭉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죠. 고등학교 때도 국악 작곡 전공이었던 성윤이의 경우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고, 자발적으로 행동해 보고 싶고, 팀을 만들어서 같이 연주해보고 싶었지만, 작곡가에겐 그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팀을 만들고자 했고, 뜻이 맞는 친구를 구해보고 싶어서 함께 학교에 많이 붙어 있는 사람, 본인 전공에 열정적인 사람을 찾았죠. 또한 가치관이 뚜렷해서 음악을 작곡할 때도 함께할 수 있는 멤버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효창이와 성훈이를 만나게 되었고, 각자 갈 길을 가더라도 대학에 다니는 기간에는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 스터디 그룹을 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효창이와 성훈이가 흔쾌히 수락해준 그날부터 상자루가 시작되었습니다. 2018년 그 이후 여러 도전과 소중한 시간들이 우리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는 것 같아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의 연주ⓒ상자루

Camino de Santiago 800km 국악여행기
세 명 모두 군대에 갔다가 전역을 하고 다시 뭉치게 되었는데요. 군대에서의 2년이라는 공백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습니다. 2년간 우리의 가치관과 전통에 대한 생각, 악기에 대한 생각이 좀 달라져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대화를 많이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죠. 국악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고 절충해 나갈 수 있는 그런 시간을 가지고자 효창이의 아이디어로 순례길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각자 최소한의 악기와 짐을 가지고 ‘깨달음의 길’이라 불리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도전해보자, 악기까지 들고가는 마당에 할 거면 확실하게 해보자 싶어서 과거에 선비들이 입던 전통의상을 입고 걸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산이 너무 빠듯했습니다. 후원을 받으면 좋을 것 같은 마음에 종로의 유명한 한복집들에 저희가 만든 포트폴리오를 돌렸습니다. 대부분의 의상실에서 거절당했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목운단 고전의상실에서 너무나도 예쁘게 한복을 맞춰 주셨습니다. 순례자의 길에서 매일 7~8시간 동안 그 옷을 입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상자루의 음악뿐만 아니라 그 한복 하나만으로도 우리를 기억해주시는 분들도 많이 계셨습니다. 그곳에서 ‹상자루 타령›, ‹경북 스윙›이라는 곡도 만들면서 여러 방면에서 함께 많이 성장할 수 있었어요.

상자루TV에 소개된 영상의 한 장면 ⓒ상자루

모두를 위한 다큐멘터리
상자루에 관심을 주시는 분들을 위해 ‘상자루TV’라는 한예종 채널을 비롯하여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이용해서 단편적으로 가벼운 영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 영상들을 비롯해서 저희가 찍은 부분들은 박철우 감독과 함께 추후 다큐멘터리로 제작할 계획입니다. 최종적인 영상 결과물은 국악 여행기에 상자루의 성장 스토리를 포함하여 2019년도 중반이나 후반에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상영할 예정입니다.

국악여행기부터 다큐멘터리 제작까지 가능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이 있었기 때문인데, 플랫폼 창동에서 공연했을 때 후원자분들께서는 우리가 계속 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에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텀블벅 후원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관심을 보여주시는 많은 분들을 보면서 우리의 음악도 팬덤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전통예술원 잔디밭에서 연주하는 상자루

‘K-Arts 플랫폼 페스티벌’과의 인연
‘제1회 K-Arts 플랫폼 페스티벌’에서 가졌던 공연이 사실 우리에게도 첫 공식 공연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인연이 돼서인지 학교에서 계속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첫 공연 때는 정식 무대가 아닌 야외의 가설 무대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사실 그때는 정식 참여자이기보다는 오프닝 밴드의 느낌이 강했죠. 공연과 공연 사이의 ‘발 묶어두기’용이었달까요.(웃음) 그러나 ‘2018 K-Arts 플랫폼 페스티벌’에서는 ‘상자루’라는 이름이 정식으로 들어가서 저희에게는 더욱 뜻깊은 페스티벌이었습니다. 제1회 페스티벌 때는 ‹푸너리›라는 곡을 연주했습니다. 이 곡은 페스티벌 참여를 위해 성윤이가 작곡한 곡입니다. 셋이 처음으로 연주한 곡이었고, 상자루로서 내딛는 첫걸음을 대변할 수 있는 곡으로 우리에게는 인트로의 의미를 가진 곡입니다. 또한 이를 발판으로 멤버 전원이 팀을 위해 다른 곡들을 작곡하게 되면서 단독 콘서트까지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상자루의 음악이 가진 가능성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 전통예술원 게시판에 붙어 있는 ‘무소속 프로젝트’ 포스터를 보게 되었습니다. 포스터를 발견하고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했어요. 우승 조건이 너무 좋기도 했고, 언젠가는 지원해보고 싶은 사업이기도 했습니다. 지원했던 400~500팀 중에서 국악 혹은 퓨전 국악으로 분류되는 사람은 10팀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이 대회는 대중음악을 위한 행사로 보였죠. 그러나 대회가 진행될수록 우리도 관객들과 소통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스스로가 지레 겁먹으며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한 우리 상자루의 음악에 대해 편견을 쌓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심사위원이었던 최백호 가수는 국악이 새로 창작되는 것에 부정적이었으나 우리의 무대를 보고 그 가능성을 보았다고 평가해주셨습니다. ‘무소속 프로젝트’를 통해서는 실제적으로 타인들이 보고 있는 우리 음악에 대해 객관적으로 들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국악 그리고 상자루
전통이라는 말은 굉장히 상대적인 말인 것 같습니다. 국악이라는 용어는 일제강점기 이후에 외부인의 시선에서 국가의 로컬 음악 분야를 한 장르로 묶고자 사용된 것입니다. 이것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의 국악이 국악이라고 불리게 되면서 이전에 있었던 고유의 지역적 특성 등이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우리만의 독특한 로컬 문화가 오히려 정제되어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악이라는 이름 아래서 다양한 음악들이 하나의 이름, 하나의 문화로 묶이는 점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거죠. 상자루의 특색을 담아 우리가 창작한 ‹경북 스윙› 같은 경우 한국의 농악과 재즈의 스윙을 결합시킨 음악입니다. 한국에서 존재하는 농악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경북 구미시 무을면의 농악을 생각하고 이 노래를 작곡했습니다. 우리는 ‹경북 스윙› 같은 음악을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즉 국악의 보편화가 아니라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장르로 인정되는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은 것이죠.

우리의 음악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기는 매우 힘들어요. 상자루의 음악은 상자루의 음악일 뿐이죠. 정의한다면 우리 세 명이 모여 의기투합해서 만든 음악이라는 점이죠. 그리고 앞으로도 이러한 작업을 계속해서 해나갈 것입니다.

또 다른 유랑기
2019년엔 ‹박물관 탈출기›를 준비 중입니다. 예술이 형식화되어 박물관에 박제되는 것 같은 상황은 전통예술에서 더더욱 많이 발견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것들을 다시 박물관에서 나오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가 시작된 작업이에요. ‹경북 스윙›이 외부적인 ‘자루’적 요소였다면 새로 기획하는 ‹박물관 탈출기›는 ‘상자’적 요소에 집중하여 전통적인 어법에 맞춘 공연이라고 할 수 있으니 기대해 주세요.

대중들이 인정하고 기대하는 상자루의 음악은 권효창, 남성훈, 조성윤의 열정과 호기심이 함께했기에 가능했다. 2년간의 공백을 없애고자 한복을 입고 무거운 악기를 들고 800km에 도전한 상자루의 음악은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다. 그들의 황금빛 열정은 그저 듣고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졸업 전에 ‘상자루’가 매거진을 통해 소개되었다며 좋아하는 순수한 코리안 집시들은 오늘도 악기를 매고 길을 떠난다.

글 이교영 | 영상 김건희 | 사진 윤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