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수

친근한 음악이 아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음’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난 ‘소리’로 이루어진 곡이다. 그래서 “그것이 음악이야?”라고 물었을 때 그들은 자신들만의 악보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한다.

“저희는 지금 이 시대의 기술로 음악을 만드는 것을 선택한 것뿐이에요. 흘러가는 시간에 음의 세기, 길이, 높이를 조직하고 기록하죠. 때론 그것을 잘 전달하기 위해 평면적이거나 입체적인 비주얼을 사용해요. 작업과정에 숫자코드, 데이터, 알고리즘이 쓰였지만 내세우고 싶지 않아요. 낯선 그릇일 뿐 그 안에 담은 것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독일의 도시 깔스루에에 위치한 미디어 아트센터 ZKM에 물리학자 하인리히 헤르츠를 기리는 헤르츠랩이 있다. 그곳은 전자음악이 역사에만 머무르지 않고 어떤 새로운 것들이 나올 수 있을지 연구하기 위해 해마다 ‘기가 헤르츠 어워드’를 주최하고 있다. 나이와 국적에 상관없이 오로지 작품만 보고 평가한다. 그리고 작년에는 GRAYCODE와 jiiiiin이 만든 작품이 한국인 최초로 작품상을 수상했다.
jiiiiin: 단순하고 정갈하지만 그 안에 모든 의미가 함축적으로 담겨있다는 심사평이 있었어요. 최소한의 표현으로 끌어가는 흐름 안에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것들이 전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GRAYCODE: 소식을 들었을 때 매우 기뻤지만 3일 갔나? 그 이후엔 베를린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선보일 신작 준비에 바로 들어갔어요.
jiiiiin: 전시도 하고 공연도 하는데 저희는 작업을 선보일 때보다 만들 때의 과정이 훨씬 재미있는 것 같아요. 지금도 작업 끝부분이라 온통 빠져 있어요.
GRAYCODE: 정리를 하면서 유레카를 외치는?
jiiiiin: 유레카까지는 아니고요. (웃음) 현재 준비하고 있는 작업의 제목은 ‹10^-33cm›이에요.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것의 수학적 표기예요. 신작이 지금 이 순간으로부터 굉장히 미시적으로 들어가서 바라본 것이라면 수상작이었던 ‹+3×10^8m/s, beyond the light velocity›는 거시적으로 빛의 절대 속도 너머의 소리를 상상해 보았어요. 이 세상을 이해 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이해하고 감각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예요.
GRAYCODE: 기존에 저희가 한 작업은 다각도로 감각이 이용된 반면 이번에는 소리로만 구성을 했어요. 저희가 준비하는 것은 듣기에 가장 좋은 환경을 구축하고 좋은 헤드폰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11개의 트랙이 담긴 앨범을 전시하는데 그 중 10번과 11번 트랙에 대해 짧게 설명 드리자면, 10번 트랙은 0.102초이지만 그 안에 40분이 넘는 음악이 압축되어 있어요. 들어보면 찍- 하고 지나가는데 우리 너머의 미시적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죠. 그리고 11번 트랙에서는 41분 39초 동안 그 세상을 들려드려요.

‹+3×10^8 m/s, beyond the light velocity›, 2018, 237/465sec
‹+3×10^8 m/s, beyond the light velocity›, 2018, 269/465sec
‹+3×10^8 m/s, beyond the light velocity›, 2018, 359/465sec

실제로 볼 수 없는 것을 듣는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관객으로서 짜릿한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GRAYCODE: 저희가 사운드를 이해하다보니 닿은 생각인데요. 우리가 들을 수 있다는 건 공기의 진동 때문이에요. 중요한건 보이지 않는다는 거죠. 너무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걸 인식하는데 꽤 오래 걸렸고 머릿속 깊이 들어왔을 때부터 작업에 대한 방향이 잡혔던 것 같아요.
jiiiiin: 그 시작이 ‹#include red›라는 작업이에요. 빨간색이 주는 정보들을 배제하고 ‘우리가 만약 빨간색을 듣는다면?’ 그런 가정을 해봤죠. 사람의 귀가 가시광의 주파수 영역(빨강, 630~700mm)까지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빨간색을 들을 수 있어요. 실제로는 불가능하지만 현재 감각하는 것을 느끼면서 우리가 보는 감각이 들릴 수 있다면 어떤 식으로 들릴까? 상상해 본 거에요.
GRAYCODE: 저희가 볼 수 있는 빛이 가시광선인데 그 중에 빨간색의 주파수가 가장 낮아요. 빨주노초파남보가 프리즘처럼 나눠지는 것이 주파수가 달라져서 들리는 것과 같다면 가장 낮은 주파수인 것 아니야? 그걸 우리가 들으려면 어떻게 들릴까? 생각해봤어요.
jiiiiin: ‘우리가 뭔가를 듣고 보긴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듣고 보는 거지?’ 방금 GRAYCODE 작곡가가 말한 것처럼 물리적인 진동으로서 소리를 듣고 빛의 진동으로서 색을 본다고 했을 때, 이 두 감각에 대해서 갖고 있는 어떤 의미적 이야기 말고 실제적 감각에 대한 작업을 했어요.

‹#include red›

두 분의 대화를 들어보면 작업 과정 속에서 수많은 질문이 오갈 것 같다.
jiiiiin: 둘의 대화가 두서없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작업을 할 때 굉장히 많은 시간을 개념과 맥락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할애해요. 실질적인 것들은 우리가 시간을 투자해서 섬세하게 하면 돼요.
GRAYCODE: 우리는 의심이 많아요. 왜 이런 소리와 비주얼이 나와야 하고 왜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굉장히 많은, 정말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나눠요. 그 시간이 제일 오래 걸리는 것 같아요.
jiiiiin: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 아이디어를 내고 또 내고 콘셉트에 대해 말하고 수정하고 하는 식이에요. 작업의 거의 반 혹은 그 이상이죠. 이게 만들어지면 그 다음은 쉽게 가요. 전자음악이니까 “작품 만들 때 컴퓨터 앞에 5시간씩 앉아서 코딩해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그렇지 않아요.
GRAYCODE: 오히려 처음 시작은 모눈종이에서 연필로 스케치해요. 그것을 프로타입으로 코딩해서 소리를 만들어 보는 거죠. 사실 소리를 디테일하게 만드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지만 어떤 형태로 해야겠다는 접근을 이미 오랜 시간 해 와서 익숙해요. 마치 근육이 발달한 것처럼 그런 지점에서의 시간은 줄일 수 있어요.

작곡가 GRAYCODE와 jiiiiin의 작업실 ⓒ 김경수

두 분 모두 음악원 음악테크놀러지과에서 컴퓨터 작곡을 전공하셨는데 지금과 비교한다면? 학교에서 어떤 것들을 배웠는지 궁금하다.
GRAYCODE: 제가 먼저 작업을 시작했어요. jiiiiin 작곡가는 후배였고요. 처음 3년 정도는 ‘왜 이런 음악은 좀 어렵지? 왜 예술의 전당 같은 곳에서만 해야 하지?’라는 의문을 가졌어요. 그래서 졸업 후 음악원 뿐 아니라 영상원, 미술원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new.in.paper› 프로젝트를 실행했어요. 그때 jiiiiin 작곡가가 도와주면서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죠. 그러다 보니 둘이 함께한 작업이 나오면서 어딘가 지원할 수 있었어요. 그 전까지는 기금을 받아야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jiiiiin: 둘 다 작업을 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본론적으로 우리가 하는 작업인 사운드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죠. 다행히 합의점이 나왔고, 그러한 미학이 저희가 작업을 할 수 있는 큰 기둥이 되었어요.
GRAYCODE: 팀명을 짓지 않는 이유는 어떤 이름에 존속되기보다는 두 개의 자아로서, 프로젝트식의 그룹이 되고 싶기 때문이에요. 조태복이 아니라 GRAYCODE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것도 저와 작업을 분리하는 거죠. 제 앨범 «+1 Music Difference»에 ‹Sad›라는 곡이 있어요. 이 곡은 천안함 사건을 보고 느낀 감정을 바탕으로 썼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주목해주셨어요. 어떤 파장까진 아니지만 다양한 해석들로 피드백이 오니까, 많이 부담스러워서 작곡가로서 이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jiiiiin: 저 같은 경우는 정진희라고 하는 저 자신이 어떤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작곡가로서 감당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의심을 했어요. 이겨내기 위한 방법이 작품을 하는 자아를 하나 만들자는 거였죠. 그래서 jiiiiin이란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지금은 조금 혼돈스러워요. 오히려 제 작업이 정진희 같기도 해서요. GRAYCODE와 jiiiiin이라는 캐릭터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사람의 이름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가늠하기 어렵잖아요?
GRAYCODE: 작곡은 굉장히 개인적일 영역일 수 있어요. 엉덩이로 곡을 쓴다는 말이 있는데, 어쿠스틱 작곡은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는 작곡가이면서 연주가이고 청취자이기 때문에 작업과정에서 혼자면서 같이 해야 하는 부분이 생겨요. 테크놀러지라고 하면 딱딱한 느낌이 들지만 막상 함께 작업 하다보면 엄청난 유대감이 생기죠.
jiiiiin: 학교에서 정기공연을 할 때 보면 무대 세팅을 위해 스피커를 설치하더라도 둘이 같이 들어야 하고, 누군가가 좋은 지점에서 음악을 듣고 음(音)에 대한 말을 해줘야 해요. 이렇게 준비하고 회의하는 과정들을 통해 컴퓨터 음악이 내가 혼자 해서 되는 게 아니고 누군가가 같이 도와주고 협력해야 좋은 결과를 같이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배웠죠.

‹+3×10^8 m/s, beyond the light velocity› 악보

현대 순수 예술에 대한 탐구와 작품을 효과적으로 감상하며 동시에 소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창의적인 형태의 플랫폼을 제시하며 새로운 예술을 창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jiiiiin: 플랫폼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요. 우리의 작업이 손에 잡히는 게 아니니까 전달하는 지점이 어려운 것 같아요. 이런 고민이 우리가 하는 음악에게만 국한되어 있진 않아요. 가능하면 한 작품을 많은 곳에서 공유하고 싶어요.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이라면 어디든지요. 그런데 작업을 공유하는 과정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 같아요. 미디어 파일을 보내기만 해도 그게 전시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것에 대해 간편하다고 느끼기보다는 이 작품의 정체성이나 본질을 어디에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가져가야 하는지 계속 고민할 것 같아요.
GRAYCODE: 단순하게 저는 제가 하는 작업이 좋고, 제가 하는 작업을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그런 좋은 에너지가 되길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것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과정에서 ‘왜 전자음악은 앨범이 없지?’라는 생각으로 음원사이트에 앨범을 발매해보기도 하고, 꼭 극장이나 외국만이 아니라 어디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홍대에 있는 카페 사장님에게 허락을 받아 그곳에서 작업하기도 했어요.

앞으로 무엇을 공유하고 싶은가?
jiiiiin: 지금 이 순간에 대해서요. 우리는 지금에 대해서 생각하고 집중해요. 몇 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아니라 정말 현재 이 시간에 있는 우리가 어떻게 인지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요. 음악을 듣는 그 찰나마다 지금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희 작품 앞에 발길을 멈추고 보는 그 순간의 느낌들, 그 찰나들이 생길 때 희열을 느껴요. 내가 어디 있는지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누구이고 어떤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갖고 답을 찾는 것이 사운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인 것 같아요. 이러한 여정을 작품에서 펼치고 싶습니다.

미지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듯, GRAYCODE와 jiiiiin은 보이지 않는 소리 그 자체를 오묘하게 느낀다. 그렇기에 음악에 대해 점점 더 깊이 파고들고 연구하는 것일까. 그렇게 탄생한 소리는 그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시간에 쓰여진다. 그 악보를 연주하는 두 사람을 앞으로도 계속 만나고 싶다.

글 서태리 | 사진 김경수 | 영상 이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