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름, 두 사물의 끝이 맞닿아 있는 자리를 뜻하며 남사당놀이의 줄타기를 의미하기도 하는 이 단어는 현재 전통예술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다. 가끔은 실연자들에게 지켜야 하는 사명감이며 대중화를 이루어내야 하는 의무감으로 다가오기도 한 전통예술. 현재의 자리에서 전통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느껴왔던 전통이라는 단어 안에는 분명한 선이 존재했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연자에게 있어 분명한 규정을 제공하기도 했고, 사명감을 느끼게도 하였으며, 때로는 권력으로 다가와 자기 검열의 매개체로 자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시기나 예술 장르에서도 그래왔듯이, 전통이 만들어 내는 선 위에서 줄타기하며 넘나드는 이들 역시 존재한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선을 넘나들고 전통과 현대 어름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거문고는 특히 ‘선비의 악기’라는 상징성이 담겨 있는 만큼 악기를 만진다는 것 자체를 싫어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많은 비난도 받았지만, 해야 할 작업이 많았기에 그런 반응만 신경 쓸 새가 없었어요.” 1

이제 막 1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고 있는 ‘거문고 팩토리’는 당시 획기적인 시도로 해석되었다. 팀의 이름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그들은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에 본질적으로 접근해 새로운 거문고를 만들고, 기사창작에 활용하는 작업을 보여주었다. 악기를 변형시킨다는 것, 서양의 클래식을 비롯하여 전통음악 내에서도 자주 보이는 변화는 아니었기 때문에 많은 견해들이 보이기도 했다. 이들의 작업은 기존 퓨전국악 혹은 창작국악으로 통용되었던 분류 안에서 새로운 시도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통음악, 그것도 한 그룹 내에서 악기의 개량과 연주법의 변화, 이 두 가지가 모두 시도되었던 것은 아직까지 ‘거문고 팩토리’ 외에는 찾기 어려운 시도이다. 이정석, 유미영, 정인령, 김선아로 이루어진 ‘거문고 팩토리’는 거문고라는 악기에서 줄 수 있는 모든 변화를 꾀한다. 전자 거문고, 미니 거문고, 첼로 거문고, 실로폰 거문고와 같이 이들만이 연주할 수 있는 악기를 만들어냄으로써 전통음악을 한계가 아닌 월드뮤직의 범주까지 확장시켰다. 악기의 변화에 따라 생기는 연주법에 대한 연구 역시 꾸준히 이어오며 창작음악 내에서 조금씩 소외되었던 거문고라는 악기에 대한 인식을 깨뜨림과 동시에 독립적인 악기로서의 색채 역시 만들어 나가고 있다.

거문고팩토리 / 잠비나이

이제는 록 페스티벌에서 더욱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잠비나이’ 역시 기존 전통음악의 어법을 탈피하고 새로운 길을 제시한 대표적인 팀 중 하나이다. ‘거문고 팩토리’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시작한 ‘잠비나이’는 국악기인 피리와 해금, 거문고와 일렉트로닉한 장비를 함께 사용하여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음악을 보여주었다. 국악기를 사용한다는 것 외에는 전통음악에서 나타나는 어법을 찾아보기는 어려워 명확히 이 팀을 표현할 단어를 찾기 어려운 지점들이 존재한다. “전통악기를 쓰니 포크(folk)의 범주에 들어갈 것이고, 거기에 헤비한 사운드가 들어가니 ‘포크 메탈’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본다. 또 ‘포스트록’이라는 요소가 있으니,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도 같고. 만약 우리가 다음에 다양한 시도를 해 보고, 품을 확장해간다면 더 많은 명칭이 따라붙을 수 있겠지.” 2 한 인터뷰에서 직접 언급한 것과 같이 그들의 확장된 음악영역이 곧 그들이 존재하는 위치를 알려주는 지표가 됐다. 어떤 것에 소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음악, ‘숨(su:m)’의 대표 박지하는 ‘그저 자유로운 음악을 이어나가고 있는 아티스트’ 중 하나이다. 피리, 생황 등을 활용하지만 전통어법과는 다른 형식의 음악으로 국악과 현대음악 사이의 경계를 걸어 나가고 있으며 자신의 음악 장르를 퓨전국악으로 규정하기를 거부하며 그저 박지하 자신의 음악임을 공고히 하고 있다. 전통음악이라는 범주 안에 한정되어 박지하의 음악을 듣는다면 듣는사람들로 하여금 생소함을 선사한다. 피리와 생황을 중심으로 잔잔히 풀어내는 그녀의 음악은 전통음악의 정체성과 동시에 모호함을 주며 경계를 허물어 나가고 있다.

박지하의 정규 1집 ‹Communication› / 상자루의 공연 모습

법고창신(法古創新), 국악 공연에 있어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더불어 정체성을 부여하는 단어로 이것만큼 많이 쓰이는 단어가 있을까. 2014년에 창단한 ‘상자루’가 목표를 법고창신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꽤 클래식하네’라고 생각하며 지나갔다. 그런데 이 팀의 행보는 생각보다 파격적이다. 전통예술원의 권효창, 남성훈, 조성윤이 모여 만든 ‘상자루’는 10년 넘게 전공해온 국악이 정작 본인들의 일상에 내제되어 있지 않은 것에 의문을 던진다. 특수한 소비로서의 전통예술과 이미 희화화된 소재로의 전통음악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면서 기획공연과 집시 프로젝트를 통해 인도 음악과 전통 음악의 접점을 찾는 등의 활동 또한 이어가고 있다.

“내가 하는 것을 꾸준히 이어 나가면 시간이 지나 이것이 또 미래의 전통이 되지 않을까요.”라고 이야기하는 ‘정민근무용단’의 예술감독 정민근은 전통무용 분야에서는 생소한 작업을 시도한다. 공연예술로만 대부분 자리했던 궁중무용을 무용극 내에 배치하고 내용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주는 작업을 창작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전승되어 내려오는 작품을 변형하는 것에 대해 보수적이었던 한국무용 분야의 분위기 속에서 전통무용을 극에 대입하고 창작을 더하는 시도는 새로운 시초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조건적인 변형이 아닌 전통무용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더해진 작업들은 다양한 호평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팀들 사이에서 화려하고 독특한 이미지에 대한 변화가 경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중 ‘악단광칠’은 화려한 무대 의상과 멤버들별로 부여된 독특한 정체성으로 국악이 가지는 무거움을 탈피해나가고 있다. ‹클럽으로 간 굿›과 같은 공연을 중심으로 대중들에게 생소한 서도민요와 황해도굿 등을 차용해 굿판의 현대적 재현을 수행한다. 키치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복고풍의 유랑악단 이미지와 특유의 유쾌한 무대는 관객들과 전통예술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를 좁히며 공감을 얻어낸다.

정민근무용단 / 악단광칠

새로운 시도는 결국 기존 질서가 가지고 있던 선을 넘는 것부터 시작된다. 전통예술의 경우 지속적으로 전승되어 내려오던 흐름에 변화를 주는 것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타 분야에 비해 아직까지 많은 활동이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다양한 곳에서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 원고를 쓸 당시 현재의 분위기를 대변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하는 우리들이라는 글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했다. 현재의 흐름을 기점으로 변화하고 있는 예술 따위의 형식을 만들어야 할 것 같은 강박도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오만했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단체, 새로운 시도, 새로운 공연을 찾고 찾다가 이제는 새로움에 갇혀버린 나에 비해 이전부터 계속 이어지던 그들의 행보는 그저 꿋꿋하기만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별다른 미동 없이 전통과 현대의 어름에서 새로운 시도를 이어나가고 있다. 어떤 기점을 시작으로 탈바꿈하는 변화보다 서로 어긋나지 않고 다시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움직임이 아닐까. ‘새로움’이 아닌 ‘원래 그랬던 것처럼’ 자신만의 세계를 이어가는 그들의 지속적인 움직임 속에서 변화된 우리의 삶을 마주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 신혜주
1 ‹뮤직프렌즈›, 2014년 12월호 ‘거문고 팩토리’ 인터뷰
2 웹진 ‹異鳴›, 2015년 8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