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수

2010년 해외에 나갔을 때였어요. 저를 ‘줄리아’로 불러 달라고 이야기했는데 답변이 의외였어요. “너 한국 이름 있잖아? 원래 이름을 이야기해 줘.” 충격을 받았어요. 그 사람들 편하라고 이름을 새로 만들었는데, 꼭 그러지 않아도 되겠구나 생각했죠. 그래서 영화사 이름을 순우리말로 지어보기로 했어요. 외국 사람들도 발음하기 쉬운 단어 중에 선물이라는 뜻을 가진 ‘아토’를 찾아냈죠.

영화 제작사 ATO의 김지혜 PD는 아토의 의미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ATO는 김순모, 김지혜, 이진희, 제정주 이렇게 4명의 프로듀서가 의기투합해 만든 영화 제작사이다. 각자의 영화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네 명은 영상원 영화과 전문사 기획 전공으로 들어와 서로를 만났다. 이후 정기적인 기획 모임에서 서로의 영화를 도와주자는 제안을 하면서 영화사가 만들어졌다. 특이점이 점차 소멸해가는 한국 영화계에 나타난 ATO는 올해 두 편의 영화 ‹홈›, ‹살아남은 아이›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 ‹용순›

네 개의 의견, 하나의 선물
동문이어서 자주 만나다 보니까 회사를 차리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ATO가 만들어졌어요. 이런 작품이 있는데 이 사람에게 잘 맞을 것 같다거나, ATO의 이름으로 해 보고 싶은 작품이 있으면 같이 결정하는 편이라 일하는 방식은 수평적이면서 복합적입니다. 제작은 한 작품당 한 사람이 총괄해요. 각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기획자, 제작자가 있다면 다른 세 명은 다른 역할들로 어시스트하면서 캐스팅이나 정보수집 같은 지점들을 도와주는 방식이죠. ‹용순›은 단편을 보고 재미있다고 같이 이야기를 했었는데, 김지혜 PD가 장편화 하자고 주도적으로 행동하면서 각자 할 수 있는 것들을 한 거죠. ‹우리들›은 윤가은 감독님이 이진희 PD에게 장편 제작을 하고 싶은데 제작사가 있냐고 물어봐서 시작된 경우인데, 김순모 PD가 하는 것으로 합의를 하게 됐고요. ATO의 모토를 말하자면 ‘따로 또 같이 작품을 만들자‘인데, 회사 이름으로 만들 때는 당연히 네 명의 동의하에 이루어져요. 하나라도 반대가 있다면 ATO라는 이름 아래에서는 제작되지 않고 개인적으로 만들어야 하죠. 그래서 각자 다른 의견이 생기면 열심히 싸워요. 되게 자주 싸워요.(웃음) 왜냐면 네 명이다 보니까, 의견이 진짜 다 다르거든요.

시작의 경계를 지워 버리다
네 편의 영화를 찍었고 두 편의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지만 처음부터 저예산이나 독립영화를 하려고 한 건 아니었거든요. 어떤 기준을 세워서 그 기준의 영화만을 제작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상업영화든 예술영화든 기획하거나 제작해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독립영화 제작이라는 선을 긋고 시작하진 않았어요.

영화 ‹홈›

주변부를 관찰하다
신준 감독은 관찰력이 굉장히 뛰어나요. ‹용순›이 그리고자 하는 캐릭터가 평범한 여고생도 아니었지만 그다음으로 인상깊었던 인물은 새엄마였죠. 그 둘의 연대라는, 피가 섞이지 않는 관계의 지점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개봉한 ‹홈›이나 하반기에 개봉 예정인 ‹살아남은 아이›도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홈›은 불행한 사고로 엄마를 잃은 준호와 성호가 성호의 친아빠인 원재를 찾아나서요. 그리고 원재와 그의 딸을 만나 함께 생활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렸어요. 혈연관계가 모두 사라진 준호의 곁엔 반혈연 관계인 성호와 비혈연 관계인 원재와 지영이 남아서 지켜주고 있는 거죠. 그러면서 아이나 여성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나 싶어요. 어떤 연대나 캐릭터들을 비틀어 놓은 방식을 더듬어 보면 각자 다른 영화를 추구하지만 서로 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비슷하다는 생각도 해요. 일반적으로 여타 영화와 다른 영화를 하고 싶다는 취향도 반영된 것 같아요.

한국 영화, 기획 전공
2009년 한국 영화계는 완전히 침체되어 있었어요. 어떻게 영화계의 현재가 이렇게 계속 불안정한 건지, 영화과에 들어가서 산업의 불완전한 시스템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학교에 들어와서는 좋은 네트워킹을 쌓을 수 있었던 게 자산이 된 것 같아요. 기획 전공끼리 함께하면서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것과 다른 전공 파트와 다양한 스킨십을 맺으면서 주변의 창작자가 어떻게 커나가는지를 지켜보는 과정이 흥미로웠어요. 아쉬운 건 기획 전공의 커리큘럼이 충분하지 않거나 장기적인 계획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저희 때는 기획 전공 전임 교수님이 안 계셨거든요. 학교 후배들을 만나다 보면 대부분 투자사로 가고 싶어 하고, 제작 현장에 오고 싶어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어요. 단편과 장편 워크숍은 완전히 다르거든요. 영화가 만들어지는 시스템을 모르고 나오기 때문에 학교에 그런 측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긴 해요. 영화는 현장에서 나오는데, 교육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진 않은가 싶기도 하고요.

영화 ‹우리들›

ATO의 고민
네 편의 영화를 제작하다 보니 몇 년씩 회사를 운영하는 일이 어렵긴 해요. 영화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은 다 겪고 있는 일이지 않을까 싶긴 한데, 독립영화가 만들어지는 시스템이 부족해서 운영하는데 불안정한 면이 있어요. 그래서 회사를 어떻게 하면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까. 각자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회사가 지속적으로 순환될 수 있는 구조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그렇다면 수익이 될 만한 영화를 어떻게 기획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는 것 같아요.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는 출발점에서 저예산으로 영화를 제작했는데, 이제는 예산이 큰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그 안에서 주인공은 여성이 되기도 하고, 아이가 되기도 하고, 노인이 되기도 하는 이야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예산에 상관없이 다양한 연령대의 이야기를 꿈꾸고 있어요.

다행히 지금까지 기회가 아주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바탕으로 앞으로도 꾸준히 영화를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으면 좋겠어요. 그 영향을 받아 다른 영화 제작사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고요. 지금은 독립영화의 제작 방식이 공적 기관에서 제작비를 받아 저예산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아서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제작 지원의 방식이 장점만 있는 방식은 아니어서, 이런 상황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독립영화로 시작을 했는데, 이젠 상업영화로 확장해야죠. 회사 이름이 선물인 것처럼 재미있고 기분이 좋아지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또 다른 면에서는 다음 세대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어요. 그게 영화 제작사 ATO만의 결인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들을 부르는 독립이라는 외피는 오히려 한국 영화계가 만들어낸 기형적인 구분점이 만든 편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따로 또 같이’라는 서로 다른 단어가 만나는 방식. 순우리말과 영어의 뉘앙스를 품는 ATO라는 이름은 한국 영화가 가지지 못할 것 같았던 외피를 만들어내고 변형을 시작했다. 다른 형태의 안과 밖에서 어떤 꿈이 펼쳐질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그들이 만들어 내는 영화의 궤적들을 따라가다 보면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글 송원재

사진 김경수

영상 김건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