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수

현대미술가 곽남신을 만났다. 그의 방 한편에는 책들이, 다른 쪽에는 아직도 진행 중인 작업이 빼곡하다. 그의 멈출 줄 모르는 사유와 실천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누군가는 그림자를 그리는 작가로, 또 누군가는 좌절한 지망생 소년 앞에서 아그리파 두상을 부숴버리는 선생님으로 알고 있을 그의 세계로 한 발짝 더 들어선다.

미술을 시작한 계기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만화를 따라 그리곤 했지요.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당시에 화가는 공부하기 싫은 사람들이 하는 일로, 혹은 먹고 살기 힘든 일로 생각되었거든요. 고등학교 3학년 때 거의 투쟁에 가깝게 미술 대학 진학을 가까스로 쟁취해 냈습니다. (웃음)

양분된 70-80년대 미술계의 새로운 활로
당시에는 단색화로 대표되는 모더니즘 담론이 우리 미술계의 주류였습니다. 그 작업을 하시는 분들은 노장사상 등을 서양의 형식에 적용해 차별화를 시도하셨죠. 하지만 그런 방법은 저의 마음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다른 한쪽의 민중미술은 정치적인 내용을 그냥 표면화했죠. 물론 당시 정치적 상황을 생각하면 청년들이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도 미술을 통한 저항의 필요성에는 공감을 하고 있었지만, 직설적인 표현은 제가 생각하는 미술의 형식과 동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위 ‘그림자 그림’을 통해서 구상과 추상을 절충하고, 모더니즘에서 배제되었던 정서적인 측면을 다시 가지고 오려고 했습니다. 동시에 그것을 통해 모더니즘 담론에서 논의되었던 회화의 평면성이나 그 자체의 물성에 대한 형식적 성취도 이룰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그림은 당시 어떠한 사조에도 명확히 속하지 않았습니다. 단색화 그림들과 함께 걸리기도 했고, 또 다른 방향의 서양 사조였던 하이퍼리얼리즘 계열 작업들과 함께 전시되기도 하였습니다.

유망한 작가 생활을 정리하고 프랑스로
그림자 작업이 계속되면서 모더니즘의 좁은 담론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던 중 멀리 떠나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판화를 전공했는데, 한국에서 회화를 쭉 공부했기 때문에 유학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테크닉을 익히면 더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판화가 미술에서 새로운 매체였습니다. 그것은 기존의 페인팅과 달리 다양한 방식으로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는 수단이었습니다.

다양한 매체의 사용을 강조하는 이유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고 지루한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작품의 외양이 수시로 바뀌는 것도 그 때문이죠. 하지만 제 생각은 어느 정도 일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생각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보는 것입니다.

‹포토제닉 제작 장면›, 2014

다시 그림자 작업으로의 귀환
유학 이후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을 하다가 다시 실루엣을 작업에 도입하였습니다. 다양한 형식들을 통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지만, 결국 저의 근본적인 성향을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것은 아마 단순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점점 색채가 다시 절제되고, 마티에르1도 가벼워졌습니다. 또한 모티브도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 가면서 다시 그림자 형식을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초기 그림자 작업들과는 판이한 모습입니다. 평면에서 벗어나 조각 혹은 빛이나 다른 요소들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다변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그림자 작업에서 눈에 띄는 주름들
모더니즘의 평면성이라는 과제가 아직 제 옷자락을 붙잡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당겨지는 화포가 이미지에 텐션을 주는 것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러한 방식은 모더니즘적 논의를 유머로 전치시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서구 담론에 천착해온 우리 미술계, 지금은?
모더니즘에 갇혀 있던 시절보다 담론의 범위는 매우 넓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솔한 우리 삶의 경험에서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서구 인문학 담론을 그냥 재생산하는 것 같다는 성찰도 하곤 합니다. 지나치게 트랜드를 쫓고, 작업 방식도 마치 정해진 매뉴얼을 따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 이슈를 소재화하고, 그것을 작업으로 만들어 내는 일종의 공식 같은 것들이 있다고 할까요. 물론 좋은 작업도 있지만 대부분 진심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

서구 담론을 반복하더라도 탈식민적 변주가 발생하지는 않나?
일본 제국주의,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탈식민, 이후의 서구화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나름의 모던을 취득하였지요. 하지만 우리 선배 미술가들이 모더니즘을 소화하는 과정을 직접 본 저는 질문을 주신 그러한 관점에 회의적입니다. 그러한 작업들은 껍데기뿐인 서구 미술의 유입이었어요.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작업에 대한 비판
우리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모든 미술은 근원적으로 정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의 정치를 그대로 드러내는 미술은 결국 변질됩니다. 인간의 보편적 진실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이죠. 현실 정치를 너무 앞세우는 형식은 신문 만평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미술은 감수성을 바꾸어 내는 것에서 더 근본적 차원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감각할 지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이미지와 인터넷 네이티브 세대
저는 사실 기계치라서 컴퓨터를 잘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컴퓨터는 작업에 큰 도움을 줍니다. 인터넷에서 자료도 찾고,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이미지를 변형시키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스프레이 작업도 컴퓨터로 출력한 것을 이용합니다. ‹덫› 연작에는 3D프린터를 이용한 작업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움을 얻기 위한 것뿐이고, 제 사유의 근본은 아날로그적인 것 같습니다. 반면에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다릅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환경이자 삶 그 자체이죠. 근본적으로 사고의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학생들을 통해서 그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덫› 시리즈의 오브제

작업을 시작하는 작가들에게
우리는 모더니즘을 취득하기도 전에 그것을 넘어서야 했고, 요즘 학생들은 미술을 배우기도 전에 미술이라는 것 자체를 해체하는 담론 지형에 서서 작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럴수록 미술 작업이라는 큰 담론을 어떻게 취할 것인가를 두고 꾀부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절실하거나 흥미로운 일을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투명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신체 전부를 동원하여 온몸으로 밀고 나아가야 제대로 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한예종, 이제 다시 새롭게 나아갈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을 만들기 위한 설립 기획위원으로 참가했었습니다. 홍익대학교 판화과 교수를 하고 있었는데, 초대 원장님의 권유로 학교를 옮겨 와 22년째입니다. 기획위원으로 학교의 틀을 만들어 가면서 이렇게 함께 만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다면 참으로 보람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은퇴를 앞두고 돌이켜 보면 자부심 느끼는 만큼 또 한편으론 과연 제대로 도움을 주었나 하는 두려운 마음도 생깁니다. 한때는 아주 진취적이었던 한예종의 시스템도 새롭게 정비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세상이 변한 만큼 초심으로 다시 변화를 주도해야 합니다. 지금이 오히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새롭게 나아갈 때입니다.

‹비행연습›, 2013

연구실에서 대화 내용을 갈무리하며, 미술계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청했더니, “지금의 논의는 너무 주어진 담론에 머물러 있다. 미술이 무엇인지. 그 자체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부족하다”고 따끔한 일침을 준다. 꼬리를 무는 무겁고 큰 질문. 실루엣이라는 껍데기를 통해 오히려 근원에 다가가려는 그의 작업처럼. 그와 그의 작업은 자꾸만 우리를 멈춰 세운다. 꼼짝없이 우리의 감각을 재고하게 한다. 사유의 덫에 빠뜨린다.

글 권태현

사진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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