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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하빈




무난하고 단정할 것.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성공적인 졸업사진의 요건이다. 단정할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무난할 것은 또 무엇일까. 사전은 ‘무난하다’라는 형용사의 뜻을 이렇게 정의내리고 있다. 별로 어려움이 없다, 이렇다 할 단점이나 흠잡을 만한 것이 없다. 불현듯 작년에 졸업사진을 찍었던 한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졸업사진은 역시 유관순이 제일 무난하더라.”


여기서 유관순이란 유관순 패션-흰 블라우스에 검정 치마를 뜻하는 용어로 이른바 졸업사진 패션의 정석이다-의 준말이다. “평생 남을 건데, 안 튀고 무난한 게 제일 나은 것 같아.” 친구는 흰 블라우스에 검은 치마를 입고 사진을 찍었다. 무난. 아무 어려움이 없었고 딱히 흠잡을 만한 것도 없었다.


무난의 대척점에 있는 단어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문득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무난無難이니 유난有難은 어떨까. 사실 흔히 쓰이는 ‘유난하다’라는 말은 순우리말로, ‘유난有難하다’ 라는 말은 사전에 없다. 하지만 그 뜻을 곱씹어 보면 사실상 ‘무난하다’의 반대말은 ‘유난하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언행이나 상태가 보통과 아주 다르다, 또는 언행이 두드러지게 남과 달라 예측할 수 없는 데가 있다. 단어의 뜻을 곰곰 살펴보면 딱히 부정적이지 않은데도 우리 주변에서 ‘유난하다’라는 형용사는 흔히 ‘피곤하다’라는 또 다른 형용사와 직결되는 경향이 있다. 남들과 다르면 어떤 식으로든 어려움이 있고, 흠 잡히기 좋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가운데 2016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는 여느 학교보다 ‘유난한’ 졸업사진들이 등장했다.


“자신과 관련된 물품(악기, 작품 등) 혹은 의상을 준비하여 찍거나 졸업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구상해 자유롭게 찍으셔도 됩니다. 전공과 관련되어도 좋고, 현재의 관심사와 관련되어도 좋습니다.”


지난 8월 한국예술종합학교 누리 알림마당에 올라온 졸업위원장 정의진 학생의 글 중 일부이다. 올해 졸업사진의 유난스러움은 바로 이 공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졸업 앨범에 학생 한 사람당 한 페이지를 할당할 것이라는 파격적인 선언 역시 함께였다. 이러한 기획에 힘입어, 졸업 사진 촬영 기간 한 달 반 동안 학생회관 2층 영감다방에서는 실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무대의상이나 악기 등은 물론이고 마네킹의 다리, 만화책으로 가득찬 캐리어, 갈기갈기 찢긴 대본 등 학생 개개인의 연출이 반영된 소품 역시 렌즈 앞에 자리했다.


학생들의 ‘유난스러움’은 소품뿐만 아니라 포즈로도 드러났다. 영상 합성용 그린 스크린 앞에서 슬레이트를 드는가 하면, 아끼는 후배의 손을 잡고 힘차게 도약하기도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대미술과 출신의 사진작가 최용석은 렌즈 뒤에서 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첫째로는 정장 없었는데 다행이다, 둘째로는 뭘 해야 하나 고민 엄청 되겠다.”


배우로서 자신의 강점인 친숙함, 포근함을 나타내기 위해 보부상 의상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섰던 연극원 연기과 박상윤 학생은 처음 졸업사진 기획을 접했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자신을 표현하라는 것-그것도 ‘자유롭게’ 표현하라는 것-은 언제나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이며, 더욱이 한 장의 사진으로 나타낼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은 말 그대로 하나의 작품을 기획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촬영을 앞두고 고민을 거듭했던 사람이 비단 상윤 학생 하나만은 아닐 터. 학생들은 졸업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의상이며 소품을 준비하고, 틈나는 대로 이런저런 포즈나 표정 역시 구상해 보았을 것이다. 그 일련의 과정은 그야말로 유난有難했을 것이다. 무난한 것을 따라가기는 쉽다. 하지만 그렇게 무난하게 만들어진 무언가가 잊히는 것 역시 쉽다. 유난한 것은 분명 피곤하지만, 그에 따르는 성취감이 있고 설렘이 있다. 4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학교에서 치열하게 보낸 졸업예정자들이 알고 있듯이.


“평생 남을 건데 가장 저다운 모습으로 찍고 싶었어요. 나중에 ‘내가 그때 왜 그랬지?’하는 생각이 들더라도 지금 제가 가진 모습 그대로를 온전히 담고 싶었습니다.”


“50년 후에는 절대 못 찍을 만한 사진, 나중에 꺼내어 보면 자랑이 될 만한 사진을 찍고 싶었어요.”


역시 올해 졸업사진을 찍은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김도은 학생과 무용원 실기과 윤별 학생의 말이다. 그들의 말을 듣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진의 이미지는 흔히들 ‘흑역사’로 취급하며 책장 한 구석에 숨기기 바쁜 졸업사진과는 사뭇 다르다. 남들이 다 찍으니까, 그래도 졸업하는데 사진 하나쯤은, 하는 마음으로 찍는 사진은 아닐 듯 했다. 과연 졸업준비위원회에서 보내온 그들의 사진은 빛나는 대학 시절의 단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들의 사진과 더불어 다른 학생들의 사진들을 넘겨보며 그전에는 가져보지 못했던 의문이 하나 들었다. 평생 남을 건데 무난하게, 보다는 역시 평생 남을 건데 특별하게, 가 더 이치에 맞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어떤 사진들은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다시 보았을 때 부끄러울 수도 있다. 도은 학생의 말처럼 ‘내가 그때 왜 그랬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왜 그랬는지’ 정말 생각조차 나지 않는 사진보다 낫지 않은가.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 앨범에 실릴 청춘의 한 페이지-그야말로 한 페이지-는 완벽하지는 못하더라도 충분히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모습과 고민을 온전히 담아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alt이수진 미술원 디자인과                                                                송문경 영상원 멀티미디어영상과

alt박상윤 연극원 연기과                                                                   윤별 무용원 실기과

alt문소영 전통예술원 연희과                                                              유숭산 음악원 지휘과

alt김동규 전통예술원 연희과                                                              김도은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이 유난한 사진들이 담긴 졸업앨범은 내년 2월에 있을 학위수여식에서 배부될 예정이다. 지난 늦봄에 앨범 기획을 시작하였다 하니 꼬박 네 계절을 거쳐 세상에 나오는 셈이다. 졸업위원장은 인터뷰에서 졸업자들이 선물을 받는 기분으로 앨범을 받아갔으면 한다는 말을 했다. 이런 사진들이 담긴 앨범이라면 사회로 나아가는 졸업자들에게 충분히 선물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의 한 마디를 매듭짓고 더 큰 세계로 나아가는 학생들의 앞날에 행운을 기원하며, 시인 이상의 시 구절을 변용하여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자, 그러면 내내 유난하소서. input image

alt정태건 연극원 연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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