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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나이 2016 서울 단독공연

글. 이지웅




어느 순간부터 한국음악을 세계와 관련짓는 상상력이 달라졌다. 전통음악을 보존하며 서양음악과 교류를 해나가려던 노력은 어느새 까마득해지고, 이제는 케이팝이라는 한국 대중가요가 얼마만큼 외국 대중에게도 노출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진 것이다.

모든 지역이 다 다르던 전통 대신 서로 다른 지역을 대중이란 이름으로 뭉뚱그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음악을 논의하는 양상도 역전되고 말았다. 설령 대중가요일지라도 전통음악을 삽입해 한국성을 보여주려던 시도는커녕 케이팝 자체를 한국음악의 고유성으로 다루는 게 훨씬 합리적인 방식으로 간주된다.

이유에는 한국 대중가요의 성장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전통음악을 세계화하는 방식이 잘못됐다는 근본적인 요인이 자리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국악을 대중화하고 세계화하려는 노력이 거세게 있었으나 언제나 그 방식은 국악기로 서양 음악을 연주하는 복제식 퓨전이었으니 말이다. 이 퓨전음악들은 음악성 자체도 모방의 지위를 넘어서지 못할 뿐더러 전통음악을 단순히 재료로만 사용했다는 점에서 한국성 또한 후진시켰다는 평가를 받기 일쑤였다.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사용되던 음악을 일방적으로 합치려고 하니 그런 음악이 당최 어느 시공간에서 존재할 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잘못된 세계화 방식으로 인해 전통음악의 세계화에 대한 희망이 사그라들어버린 상황이다. 전통음악은 마냥 전통의 시간, 전통의 공간에서만 박제되어 재현될 수 있는 것일까. 전통이 현재와 그리고 세계와 접점을 찾지 못할 거라는 짐작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altⓒ잠비나이



그런 지점에서 2008년 데뷔한 잠비나이는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고 있다. 이미 전통음악이 강남스타일에 가려진 시점에 등장한 전통음악+포스트록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연달아 좋은 평가를 받으며 전통음악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2013년 월드 빌리지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SXSW, 프리메라, 리버풀 사운드 시티, 헬페스트 등 굴지의 음악페스티벌에서 공연하며 발매한 음반마다 여러 매체에서 높은 음악성을 평가받았다. 이전까지 실패만 거듭해온 전통음악의 세계화가 다른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 사실은 잠비나이가 그동안 실패만을 반복했던 이전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악에 매몰되거나 서양음악에 경도되지 않고 두 음악의 성격을 재료 삼아 아예 새로운 현대음악으로 나아가는 잠비나이만의 특징이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해외에서 성공한 아티스트를 보고 또다시 전통음악의 세계화를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지금까지의 통념과는 거리 두어 단지 자신의 음악성을 만들어내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잠비나이는 국악기를 디지털화한다거나 여타 다른 장르를 끌어들이며 궁극적으로는 현대음악을 추구한다. 국악밴드라거나 록밴드라는 기존의 이분법적인 구도를 넘어 새로운 음악을 한다는 잠비나이의 정체성은 세계적인 성공이 일방적인 세계화 노력이 아니라 밴드 스스로의 음악적인 진취성에 기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요컨대 통상적으로 정의된 장르의 폭을 넓히면서 얻은 국악의 현대화가 세계화까지 나아간 셈이다. 가령 기타, 드럼과 같은 록 음악 악기와 더불어 전자 음향 장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그에 맞춘 국악기 연주 기법 자체를 개발하는 시도들은, 전통은 전통에 머물러야했던 기존의 방식과는 큰 차이를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 방 안에서 연주되던 방중악房中樂을 큰 무대에서 공연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디지털화를 마냥 따르지 않고 여러 가지 이펙터를 사용하며 딜레이나 리버브, 루프 등 의도적으로 여러 기법을 사용해 아예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altⓒ플랫폼창동61



오로지 자신들의 음악성을 목표로 하다 보니 전통음악까지 진일보하게 된 셈이다. 그렇지만 대부분 무대가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마련되다 보니 한국에서 잠비나이 공연을 볼 기회는 쉽지 않곤 했다. 오죽하면 간간이 갖는 그들의 공연을 ‘내한’이라 표현했을 정도니 말이다. 그러던 잠비나이가 지난 6월 음반을 발매하곤 공연 전문 시설로 지어진 플랫폼창동61에서 양일간 공연을 가졌다. 빡빡하게 이어진 월드 투어 일정을 생각하면 국내 팬들에게 상당히 고마운 일정이었다. 셋 리스트에는 2집 모든 곡과 더불어 한국 래퍼 이그니토가 피처링한 곡도 들어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라이브는 가히 최상이었다. 애초에 라이브에 최적화돼있다는 그들의 음악에 더불어 전담 엔지니어 조상현이 조정하는 사운드가 공연장에서 폭발했다. 잡음이 조금도 섞이지 않고 작은 음까지 선명하게 내어 해금과 피리의 절절한 음색을 생생하게 구현했으며 거문고가 가지고 있는 깊은 울림 또한 제대로 표현했다.

계획대로 공연은 2집 수록곡들을 연주하는 것으로 진행됐다. 이전 앨범에서 밴드의 정체성을 갖춘 잠비나이는 2집 <은서>에서는 곡끼리 개연성을 만들어 유기적으로 구성한다기보다는 8곡 각각에 개별적인 이야기를 담는 데에 주력하는데, 그런 곡들을 전문 공연에서 연주하는 일은 훨씬 더 음악 자체에 몰입하도록 해주었다. 앰비언트1) 한 연주를 들려주는 한편 얼마 후에는 강렬한 메탈 음악을, 또 국악의 성향이 강한 처연하고 잔잔한 곡을 연달아 들려주는 식이었다.

곡들의 시간도 이전 앨범에 비해 7분 미만으로 줄여 잠비나이의 스펙트럼을 일일이 보여주는 것 같았다.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있는 여러 곡들을 하다 보니 공연에서 멘트가 많지는 않았다. 한국 무대에 오른 반가움을 얘기하기도 했지만 이러나저러나 음악에만 집중하는 공연이었다.

그러다가도 2년 전 세월호 참사를 모티브로 작곡한 <그들은 말이 없다>를 마지막 연주로 할 때는 몇 마디를 꺼냈다. 가뜩이나 공연 전후로 집회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용한 성격 그대로 정치적인 얘기를 마구 꺼내진 않았지만 프로로서 공연에 집중하는 모습 이면에 자신들이 만든 곡으로 어느 때보다 거세지는 지금 상황을 말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래서였는지 앨범 마지막 곡인 <그들은 말이 없다>는 공연 마지막 곡으로 연주되며 가장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었다.

차분하게 고조되는 아르페지오2)와 모든 악기들이 연주되며 울려 퍼지는 노이즈, 강약을 오가는 구성, 그 사이에서 국악기가 격정적으로 치닫는 순간들을 한꺼번에 담아냈다. 괜한 전통이나 다른 사연을 끌어들이지 않고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한 잠비나이의 무대이기는 했지만 문제적인 상황과 함께 문제적인 곡이 한층 더 깊게 울렸다.




altⓒ플랫폼창동61



빽빽하게 메워진 곡들을 듣고 나면 무대 위에 있는 전통악기는 금세 통념에서 벗어나게 된다. 분명 이름은 같겠지만 전통의 이름을 찾기에는 잠비나이가 위치한 지점은 벌써 멀찍이 나아갔기 때문이다. 이들이 한국인이라서, 한국의 전통악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다짜고짜 또다시 한국성에 포섭하려는 일은 반복되는 실수가 될 것이다. 잠비나이가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어느 장르나 어느 문화에서 대가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장르 음악을 개척했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input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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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0년대 초반 영국에서 발생한 장르. 소리의 질감을 강조해 공간감을 조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2) 화음의 각 음을 동시에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차례로 연주하는 주법. (출처-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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