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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양헌




1990년대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서구권은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던 정치적 자유가 시민에게 확대되었고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가 형성되면서 새로운 시기를 맞는다. 이 시기 미술에서 중요하게 언급될 수 있는 단어는 ‘프로젝트’다. 이 용어는 1960년대 개념미술가들에게서 처음 사용되었으나, 그것은 작업을 위한 제안 정도의 개념이었고 실질적인 프로젝트 기반 작업들은 1990년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프로젝트 형식은 당시의 예술적 상황을 드러내는 것으로, 집단 창작, 활동가의 모임, 리서치, 사회 참여적 예술과 공공미술, 실험적인 큐레이팅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용어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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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동시대 예술실천 안에서 그 경향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프로젝트 기반의 작업들은 더 이상 매체 특정적이거나 전통적인 관람형식을 요구하지 않으며, 사회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면서 그 효용성을 실험하고 있다. 카셀도큐멘타 7에서 요셉 보이스는 7,000그루의 떡갈나무를 심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고, 수잔 레이시는 공공미술의 맥락 안에서 중요하게 평가받는 <행동하는 문화> 프로젝트를 통해 범죄율이 높은 시카고 남·서부 지역에서 전시와 교육프로그램, 문화 행사 등을 기획하였다. 가장 성공적인 프로젝트는 릭 로우가 조직하여 프로젝트로서의 예술에 대한 지속가능성을 증명해 낸 <연립주택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다른 작가들과 함께 보스턴의 연립주택을 구입해 개조하고 이를 작가들을 위한 레지던시 공간으로 사용하도록 한 이 프로젝트는 20년이 지난 현재 49채의 건물로 늘어나, 지역의 슬럼화 된 구도심을 재생하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사회적 실천으로 기능하면서 효용성에 대한 가치를 부여받는 프로젝트 작업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과는 다른 맥락에서 좀 더 예술적 상상력이 가미된 무모하면서도 기발한 프로젝트 역시 존재한다.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린 는 바로 후자에 속하는 프로젝트로 “우주에 간다”라는 슬로건으로 모인 네 명의 예술가들, 박희자, 서윤아, 손현선, 최병석에 의해 기획되었다. 2015년 인사미술공간 신진작가 워크숍에서 만난 이들은 스스로를 우주인으로 명명하고 우주로 가야할 저마다의 이유를 취합해 ‘우주당’이라는 리서치 팀을 꾸렸다. 목표는 명확하다. 단기 방문 예술가로서 우주당 4인의 전원 우주행. 그리고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함께 합숙하면서 계획을 세우고, 외부와 고립된 채 모의훈련을 실시하거나 운석을 찾기 위한 지역조사, 우주인이 되기 워크숍 등을 수행하였다. 전시장에 들어간 관객들은 이 일련의 활동들이 기록된 사진과 영상, 그들이 작가로서 만들어낸 우주와 연관된 작업들을 보게 된다. 이쯤에서 어떤 질문들이 떠오를 수 있다. 왜 우주인가는 사실 부차적인 문제다. 그보다 우주로 가겠다는 이 몽상가들의 프로젝트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먼저 물어야한다. 앞에서 소개한 사회 참여적이고, 더 생산적으로 보이는 프로젝트 대신 이들은 왜 우주를 택한 걸까? 이런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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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전시장을 한번 살펴보자. 입구에 들어서면 공간의 절반은 가벽에 가로막혀있고, 대신 두 대의 모니터와 인포 데스크, 우주에 관한 각종 자료들이 비치된 관제석이 있다. 여기서 관객은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반대편에 외부와 분리된 채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네 명의 우주인들을 관찰할 수 있다. 10일 동안 진행되는 이 라이브 프렉티스는 프로젝트에 대한 실질적인 퍼포먼스이자 그들이 우주당의 당원임을 증명하는 현실태로서의 장이다. 지하에 만들어진 전망대는 코인을 넣고 망원경을 통해 전시 이전부터 진행된 사전훈련들을 관람할 수 있는 일종의 아카이브-이미지를 제공하는 장소로, 라이브 공간인 생활실과 시간 축으로 연결되면서 사실상 프로젝트를 위한 단일공간으로 기능한다. 과거와 동시로서의 프로젝트가 이접되면서 그 시간적 서사를 관객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반면, 2층 전시실은 우주인으로서의 의태를 벗고 개별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작가로서의 고유성이 두드러지는 장소다. 각각의 작업들은 우주라는 소재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면서도 협업보다는 개별성이 강조되는데, 특히 박희자의 작업은 우주당의 활동과 메타적으로 관계하면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상상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에 관한 다층적 레이어를 함축하고 있다. 특정한 각도에서 거울에 비친 상을 촬영한 사진은 그 자체로 실제이면서도 인식의 사계에서는 벗어난 이미지이며, 간극을 좁힐 수 없는 물자체이자 경험할 수 없지만 사유로서 인지되는 양자의 풍경이다. 수 광년이 지난 별빛으로 이미 초신성이 되었을 별의 존재를 어림하듯이, 렌즈를 통해 사각지대를 포착하는 이 사후적인 이미지는 우주당 프로젝트가 구술하는 어떤 의사-실재를 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주의 잔상을 쫓는 손현선의 회화는 선형적인 시간을 벗어난 대상에서 그 흔적을 찾는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끊임없이 유동하는 레미콘의 표면이나 천장을 도는 프로펠러는 열역학이 향하는 엔트로피의 평형-시간에는 위배되면서도, 천체의 거대한 순환 안에서는 공명하고 있다. 운동기구에서도 발견되는 우주적 리듬은 작가가 이전부터 천착했던 특정한 순간과 대구를 이루며 작품의 스펙트럼을 더 확장시키는 듯 보이는데, 이는 운석낚시를 위한 트레일러를 제작한 최병석과 우주당의 서사를 상징적으로 구성한 서윤아의 작업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하나의 닫힌 세계로서 개별 작가들의 작업은 프로젝트를 통해 우주라는 무한한 시공간과 조우하면서 혹은 그들 각자의 소우주가 중첩되면서 지속적으로 팽창하고 차원의 축을 늘려나간다. n 차원으로 나아간 평행우주 안에서 다양한 의미론적 파장들이 발생하고, 마치 은하수를 떠도는 히치하이커의 여행처럼 우주인 각자에게 은폐되어 있던 미지의 가능성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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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 ⓒ인사미술공간



우주당의 관제사의 역할을 맡은 장진택은 우주당-프로젝트에 대해 “그들이 실제로 우주를 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라고 하면서도 “우주와 인간 존재, 우주를 상대로 마주하게 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존재론적 고민을 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평했다. 그의 말처럼 이 프로젝트가 우주당의 구성원들과 관객들에게 존재론적 사유를 촉발시키고 나아가 어떤 관계적 맥락을 만든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주로 간다는 이 무모한 도전이 효용성이 강조되는 동시대 프로젝트 경향과 대비한다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아도르노는 계몽에 관한 그의 비판이론에서 문명이 신화를 해체하려다 종국에는 상상력까지 제거했다고 말한다. 계몽의 세계에서 지식은 새로운 사유의 원천이며 논리와 이성, 합리성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척도가 된다. 질적 가치인 상상력은 이러한 획일화된 기하학의 체계에서 배제되어 존재-망각을 발생시키고, 결국 진보를 향했던 효용의 가치는 곧 퇴행이라는 아이러니에 빠지게 된다고 아도르노는 경고했다. 그에 따른다면, 상상력은 여전히 유의미한 예술의 원천이며, 세상을 옳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변증법적 실천이다. 이것은 금줄을 맨 당산나무에서 수호신을 떠올리고 정화수를 떠 놓고 달에게 복을 비는, 논리와 정합에서는 벗어나 있는 추상이며 동시에 고전물리학을 무너트린 아인슈타인의 공상과도 다르지 않다. 도약을 통해 미지의 무언가와 우리를 연결하는 것, 우주당-프로젝트는 인류의 위대한 발견이 모두 상상력에 기인했음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한다.

우주에 간다는 이들의 여정은 결국 어떻게 될까. 그 결말은 예측할 수 없지만 그들의 무모한 도전이 삶과 세계를 더 풍요롭게 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이제 그들은 우주에 간다. input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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