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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회 서울독립영화제


글. 박도영




매년 겨울 열리는 서울독립영화제에선 새로운 작품과 반가운 작품을 함께 만날 수 있다. 여기서 소개할 세 편의 영화는 그중에서 새롭기도 반갑기도, 또 애틋하기도 했던 것들이다. 두 명의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 세 편은, 외부의 많은 자극과 갈등, 침입에 대해 작아 보일지라도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감정을 이야기한다. 구지현의 <미용실>, 채지혜의 <말하지 않으면>, 황지은의 <아무것도 아니지만>의 이야기다.




alt구지현, <미용실> ⓒ서울독립영화제



구지현의 <미용실>에는 미용실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하는 두 명의 젊은 여성, 지혜와 민경이 등장한다. 두 사람 모두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일 먼저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하면서 디자이너의 보조로 일했다. 영화는 둘 중 한 사람에게 어린이 손님 헤어커트를 할 기회가 주어진 날 생기는 사건들, 그리고 그로부터 생겨나는 감정들을 보여준다. 지혜와 민경은 갈등을 겪으며 서로에 대한 원망이나 질투를 분명히 느끼지만 그보다 더 큰, 겹겹이 끈끈한, 감정을 공유한다. 착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다는 생각도, 그러면서 느끼는 감정적 우위도, 내심 자신에게 기회가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영화는 명확히 지혜의 시점임에도 지혜가 응시 받는 장면들이 있는데, 그 순간들에서 감정의 더께가 시각화된다. 어릿어릿 드리우는 그림자와 홀hall이 아닌 락커룸과 샴푸실, 가려진 공간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은 한 번씩 문득 고개를 180도로 돌리면서 파장을 일으킨다.




alt채지혜, <말하지 않으면> ⓒ서울독립영화제



한편 채지혜의 <말하지 않으면>의 주인공은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 여성이다. 주인공 남은은 친한 친구 희수와 학교 앞 자취방을 구하러 간다. 희수는 가족의 지원을 받으며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환경에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남은은 자취를 해야 하지만 엄마에게 손을 빌릴 수 있는 보증금의 크기도, 본인이 충당할 수 있는 월세의 단위도 너무 적다.

이 기울기로 인해 생겨나는 부정적 감정들이 있다.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사소하지 못하게 여기는 마음. 조금씩 쌓여서 사람을 폭발하게 만드는 마음, 그저 좋아하고 싶지만 자꾸만 틈입하는 뾰족한 마음. 영화는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이 마음을, 모르지 말라고 뱉어 놓는다. 굳이 교묘한 장치를 사용하기보다는 명확하고 소박하게, 노림수나 기교를 지우고.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지만 무감하고 작위적인 전개와 대사에 스스로를 내맡기지 않으면서. 솔직하고 명료하게 고른 단어와 확실한 표정의 클로즈업으로 모든 것을 보여준다.




alt황지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서울독립영화제



마지막으로 황지은의 <아무것도 아니지만>에서 특수학급 교사인 주인공은 일상적이지만 그렇다고 수월하지도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을 대하는 것은 자꾸만 부딪쳐오는 속도와 통증, 무게를 작은 맨손으로 받아내는 것 같다. 그런 그에게 지난 학교에서 가르쳤던 아이, 민건의 어머니가 찾아와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이야기가 길어지고 의도가 나쁜 쪽으로 짐작되면서 대화하고자 하는 마음이 점점 사그러들지만, 민건의 어머니는 줄 것이 있다고 한다. 선생님은 오래간만에 만난 제자의 어머니에게 아주 ‘진정성’있게 상냥하지도 않고 그를 대단히 반가워하지도 않는데, 이 적당한 거리감과 피로감은 훗날의 전복을 위한 단초이기도 하지만 감정노동자로서의 교사를 묘사해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둘은 단 한 장소에 앉아서 이동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눈다. 카메라는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면서 두 사람을 조망한다. 여름의 교정 나무 아래에서 기대할 수 있는 앰비언스를 그러모아서 천천히 발산한다.

두 인물은 한결같이 선한 톤을 유지하는 동시에 감정의 굴곡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짜증도 결기도 조바심 없이 묘사된다. 마음이 통하는 순간, 극적이지 않게, 앰비언스나 마찬가지로, 잔잔하고 자연스러운 목소리가 영화를 채운다. 이번에 관람한 상영작 중에선 두 명의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가 제법 있었다. 헤아리면 좋은 작품들 또한 더 있었다. 김인선의 <수요기도회>는 도박의 위험성이라는 주제를 위해 캐릭터를 파괴하거나 사악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끈질긴 연민과 가능성을 살려둔다. 말초적인 자극을 위한 서스펜스도 구태여 부과하지 않는다. 이지원의 <여름밤>은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과외비를 버는 고등학생과 취업준비를 하면서도 아르바이트를 쉴 수 없는 대학생의 이야기를 다룬다. 두 주인공에게 주어진 스테레오타입에 가까운 조건을 납작하고 편평하게 누르는 대신에 현실적인 애틋함과 안쓰러움을 간직한다. 여러 여성이 등장하는 다큐멘터리에서도 이 힘은 유지된다. 윤가현의 <가현이들>에서 구십년대생 가현이와 현재의 가현이가 만나 아르바이트 노동자로서 내는 목소리, 이나연의 <못, 함께하는>에서 세자매가 서로를 가족이자 친구이자 거울삼으며 걸치는 어깨동무는 젊은 여성 다큐멘터리감독이 만든 영화를 ‘사적 다큐멘터리’라고 명명한다. 동시에 지극히 개인적이고 조그마한 것으로 축소하는 평가들을 씩씩하게 무찌른다.

여성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모두 동일선상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영화들은 두 주인공이 여성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거나 좋아지지 않는다. 주인공의 성별이 영화의 합당한 선택으로 느껴지지도 않고 영화 속에서 인물을 제대로 대했다고 생각되지도 않는 경우다. 이런 영화들의 주인공은 마치 상상된 여성처럼 느껴진다. 기능적이고 어색하고 애초에 사람 같지 않기 때문에 사랑과 공감을 쉬이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두 여자 주인공을 두고 시스젠더 헤테로1) 중심의 성애와 긴장관계를 당연하게 배치하여 ‘남자가 없어 미완성인 여자들’로 표현하거나 대상화된 레즈비언으로 만들어 에로틱한 장면에 몰두하는 영화들 역시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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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세 영화가 보여주는 건 공감할 수 있는 ‘여자들’이다. <미용실>에서 두 사람이 겪는 감정적 고통은 ‘여자의 적은 여자’같은 헛소리에 힘을 싣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의 감정적 연대를 휘청이게 만드는 것은 군대 같은 계급과 규율의 준수, 이른바 ‘여성적인 매력’을 동시에 요구받는 미용실이라는 조직의 경직성,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어린 여성이 처하는 막막함 같은 데서 온다. <말하지 않으면>에서 ‘말하지 않’는 것은 여성을 흉내내며 전개하는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아 몰라 아무튼’ 같은 전형적 미소지니2) 개그(라고 부를 수 있다면)와 결코 같지 않다. <아무것도 아니지만>에서 두 주인공이 성취한 교감과 진실한 경애의 감정은 기존의 숱한 작품에서 교사와 보호자 사이에 두던 견제나 다툼, 위선이나 속물적인 태도, 특히 여자 교사와 여자 보호자 사이의 히스테릭한 할퀴기 묘사나 명품백-촌지 이미지와 연결되는 허영과 탐욕-마치 여성이 전유하는 감정처럼 사용되는-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이들의 감정은 설령 형언하기 어려운 것일지라도 불가해하지는 않으며, 각각의 영화는 오롯이 ‘여성의 위치, 상태, 감정’을 보여주는 좋은 이야기로서 힘을 가진다.

염치없이 의기양양한 영화는 관객이 안다. 두 여자의 이야기가 사소하고 사적이고 ‘긴 영화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던 시절은 지났고, 두 여자의 이야기를 ‘여성적’이라고 상상된 심리로 구태의연하게 표현해도 되는 시기 역시 지났다. 지금 여성들의 교감과 표출과 연대를 보여주는 건 당연하고도 소중한 일이자 독립영화가 쥔 가장 큰 힘 중 하나가 됐다는 것 또한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미숙해도 좋고 부족해도 좋으니 더 많은 여자들을 이곳에서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input image




1) 가지고 태어난 성별과 젠더가 일치하는 사람
2) 여성에 대한 혐오나 멸시, 또는 반여성적인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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