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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대사관로 언덕길 언저리에 위치한 S/O PROJECT 스튜디오는 주소만 가지고는 찾아가기 힘든 곳에 있었다. 1층의 작은 카페를 끼고 살짝 돌아, 문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나무 벽을 밀고 계단을 올라가면 그리 넓지 않은, 그렇다고 좁지도 않은 공간에 아이맥 몇 대와 디자이너들의 책상들, 큰 회의 테이블이 있다. 계단을 따라 더 올라가면 경치 좋은 옥상과 조현 디자이너의 작업실이 나온다. 기껏해야 열두 평쯤 될까 싶은데 가지런하면서도 다채로운 공간이다. 오밀조밀 그러나 어지럽지는 않게 작업도구와 자료들이 놓여 있어서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하다.S/O PROJECT를 창립한 디자이너 조현은 현재 미술원 디자인과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심플한 스튜디오의 모습은 그의 목소리와 걸음을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선나리




홍콩에서 열린 제6회 한국 10월 문화제Festive Korea에서 를 선보이셨는데요, 제목부터 흥미롭습니다.

<Flat-form: Subject-object>라고 하는 전시명은 그 자체로 S/O PROJECT의 프로세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물성은 서브젝트를 가진 상태에서 항상 어떤 대상들을 대변하고 있고, 그 반대로 오브젝트 또한 항상 서브젝트와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개념인데요. 이번 전시에서는 스튜디오의 이름 ‘S/O’를 숫자로 형상화해 50개의 서브젝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브젝트로 변하게 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항상 우리가 보는 것은 상품으로 나오거나 매체로 변환된 최종적인 것이잖아요? 의뢰자가 준 과제, 주제가 어떤 단서를 거쳐 시각화, 구체화, 상품화되어 타이프 페이스활자의 서체, 그래픽 모티브, 포스터, 책, 제품으로 나오는지 그 프로세스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S/O PROJECT의 중심은 타이포그래피입니다. 그런데 글자라는 것은 항상 종이에 쓰인 상태로 전달되지 않습니까? 평면적인 그 상태에 경험과 물성을 집어넣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3D 프린터를 떠올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반 프린터는 평면을 도포하는 방식이죠. 3D 프린터는 도포된 평면들이 쌓여서 적층 방식으로 형태가 만들어집니다. 과거의 종이 중심 매체가 이제는 경험적이고 입체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플랫-폼이라고 이름 붙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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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열린 제6회 한국 10월 문화제 전시 <Flat-form: Subject-object> ⓒS/O PROJECT




S/O PROJECT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ffdc00 색상의 노란 바탕색과 명함 같은 내용만 달랑 있어서 놀랐습니다. 소스코드를 열어봐도 정말로 다른 숨겨진 정보가 없더군요.

2003년 스튜디오를 시작할 때부터 신념 아닌 신념이 있었습니다. 일본 건축가 구마 겐고. .吾의 책에 나오는 말과도 상통하는데요.

“건축가나 디자이너는 자기를 홍보하거나 일을 받으러 다니면 안 된다.” 달리 말하면 의뢰인이 디자이너를 찾아오게 해야 한다는 것이죠. 웹사이트를 통해 클라이언트한테 정보를 전달하다 보면 이미지를 소비하듯이 결국 표면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어느 정도 일방적이 되죠. 저는 항상 오프라인에서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저희랑 일하고 싶은 분이라면 S/O PROJECT에 대한 정보와 경험을 알고 있을 거예요. 인터뷰도 이메일이나 전화를 통해서 할 수 있겠지만 실재적인 공간에서 진행하면서 서로 교감하고 생각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또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옷을 입힐 때가 됐죠. 새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이끄는 게 맞다고 봅니다. 홈페이지는 계속 유지하겠지만 다른 채널을 만들어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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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PROJECT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다른 스튜디오와 차별점은 무엇입니까?

스튜디오는 기본적으로 아트디렉터가 중심이 되는 구성원 5~20인 정도의 작업실을 말합니다. 어떤 일반성을 띠고 있는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의 특성이 잘 부각되는 공간이죠. 사실 차별점은 없는 것 같아요(웃음). 차별성을 위해서 룰을 만드는 과정이 무언가를 고정시켜버린다고 생각합니다. S/O PROJECT는 구성원들이 재밌어 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스타일을 딱히 강요하지 않고 디자이너들이 하고 싶은 것을 존중하고 그걸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지를 같이 고민합니다. 항상 저희는 뭔가를 같이 하는데요. 수많은 얘기를 나누다보면 경험과 기억들이 쌓이니까 자연스럽게 작업에 녹아서 반영되는 것 같습니다. 야근이 많긴 하지만 출퇴근도 아예 없앴죠. 신뢰가 없으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어떤 룰을 통해 규제할 수 있는 게 스튜디오의 생태는 아닙니다. 모든 것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그 안에서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를 찾는 것이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책임감도 필요하죠. 보통 스튜디오가 단명하는 경우는 오너가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쇠퇴하는지를 모르기도 하는데, S/O PROJECT는 젊은 직원들이 회사 내 회사로 브랜드를 유지하면서 각자가 하고 싶은 사업을 할 수 있게끔 독립했으면 합니다.

사실 디자인 작업은 연령이라든가 산업의 변화라든가 하는 외적인 측면에 혼자서 다 대응하기는 어렵거든요. 스튜디오도 그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젊은 인력이 스튜디오를 바꿔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본인이 시간을 투자한 만큼 다시 되가져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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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떻게 영감을 받으시나요?

영감이라는 건 흔히들 생각하듯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어떤 결과가 있을 때 무엇이 영감이었는지 사후적으로 유추해내는 것이지, 특정한 재료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걸 모으는 자기 습관 같은 것이 중요하겠죠.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미니맵을 생각해봅시다. 처음에는 온통 새까맣지만 직접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미니맵이 환해지죠. 수집한 것들이 자기 관심으로만 끝날지 영감으로 갈지는 얼마나 에너지를 쏟고 그 가능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무엇이든지 모읍니다. 메모도 붙여놓고 오브제도 붙여놓고, 그렇게 작업들을 정기적으로 정리하고 분류하면서 영감을 받습니다. 결과적으로만 보면 어떤 종이 한 장이 영감을 준 것이지만 거기엔 관심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 계속 고민한 시간이 담겨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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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원 디자인과 융합전공 교수로 임용되신 지 1년 반 남짓 되었습니다.

사실 교수라는 직업을 그렇게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어요. 결혼하고 싶지 않은 독신주의자 같은 거였는데 ‘이 사람이랑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한예종이었죠. 처음 특강을 나오고 몇 번 강의를 나와 보면서 이곳의 환경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예를 들어 한예종은 다른 곳과 다르게 5~10명 정도의 소수의 학생들이 모여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잖아요. 1인당 크리틱 시간이 보장됩니다. 수시로 지나가다가 만나서 이야기할 수도 있고요. 디자인과 융합 전공수업에서는 ‘조력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외부에서 조력자를 발굴합니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제약이 없죠. 조력자와 협업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가치를 창출해내는 과정에서 색다른 경험들이 생겨납니다. 이런 경험이 바로 자연스럽게 융합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올해 예술교양학부 수업인 <융합창의창작워크숍>을 처음 맡았는데 여기에서는 실패를 통한 프로세스 디자인과 과정에 대한 기록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전공 수업에서는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많죠. 예상되는 목표가 있기 때문인데,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실패해도 된다고 학생들이 좋아하죠. 다른 데에서 찾지 않아도 바로 여기에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있습니다. 학생 때 서로 돕다 보면 나중에 나가서도 윈-윈 할 수 있죠. 그것이 융합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고 그래서 한예종은 가장 좋은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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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이자 디자이너로서 생각하고 계시는 미래는 무엇일까요?

지금의 화두는 결국 ‘지속가능성’이라고 생각해요. 학교도 회사도 스튜디오도 모두 마찬가지죠. 단순히 졸업생을, 디자이너를 배출하는 데서 역할이 그쳐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이 나가서도 잘할지, 잘 살 수 있을지 고민해야겠죠.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는 과정에서 완충 프로그램이라든지 학교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젊은 디자이너들이 오래 있을 수 있는 스튜디오가 좋은 스튜디오라고 생각합니다. S/O PROJECT는 나가고 싶지 않은 회사, 꾸준히 같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회사 말이죠. 같이 살 수 있는 방안을, 그리고 어떻게 주변 사람들을 배려할 것인지를 계속 고민해야겠죠. 저한테는 이것이 앞으로의 고민이자 과제입니다. input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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