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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유년기 기억이 스크린에 비친다. <우리들>은 올해 주목해야만 하는 독립 영화 중 한 편이자 한국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아동영화이다. 윤가은 감독은 감정의 복선을 세밀히 배치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영화를 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유년기의 기억에 휘말리게 된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귀여움에 취했다가 영화가 중반이 넘어간 이후부터 가슴을 붙잡고 볼 수밖에 없다. 윤가은 감독은 아이들의 세계를 단순히 귀여움과 순진함으로 그려내지도 않고, 어른들 세계의 축약판으로 간주하지도 않는다. 그는 유년기라는 기억에, 그 어렴풋한 시선에 기대어 <우리들>의 공간을 만들고 아이들을 불러냈다. 이 뛰어난 아동영화를 연출한 윤가은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글. 강덕구




<사루비아의 맛>부터 <손님>, <콩나물>, 그리고 <우리들>1)까지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 영화에 아이들을 찍고 다음에도 아이들이 나오는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의식하지는 않아요. 시나리오의 동력이랄까, 씨앗을 저 개인의 유년기의 기억에서 찾는 버릇이 있어요. 제가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 제가 대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어떤 답이 있진 않아요. 아이들을 좋아해요. 제게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끌리는 대상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까 궁금하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응원하죠.(웃음) 제게 영화적으로 매력이 있어요. 어른들 영화는 많이 있으니까요. 남들이 안 하는 걸 해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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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이제까지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들이 흔히 모험을 떠나는 플롯과는 다른 영화 같은데요.
<우리들>은 선이의 마음의 여정이에요. 선이의 마음이 전학생 지아를 만나는 순간 외부 세계로 확장이 되고, 떠나는 거죠. 새로운 친구를 만나서 받아들이는 순간에 그 친구에 대해서 탐험을 해야 되는 거잖아요. 선이가 지아를 통해서 탐험을 하며 자신의 인생에서 최대의 고난을 겪고 있다가 자신에게 돌아왔을 때, 변화가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점에서 모험 플롯의 변형을 생각했어요. 아주 일상적인 공간에서 자연스럽게요.




감독님의 어린 시절은 어떠셨나요?
유년기 때는 선이랑 비슷했어요. 어렸을 때 저는 반에서 존재감이 없는 아이였어요. 1년에 한 번 뽑는 착한 어린이상을 받기도 했어요. 근데 그 상은 착한 아이들에게 주는 게 아니라 보통은 존재감이 없는 아이들한테 주거든요. 어린 시절에는 혼자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사실적이면서 섬세한 아이들의 관계가 흥미롭습니다.
나중에 찍고 나서야 <우리들>이 멜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자전거 탄 소년>,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등을 자주 봤는데, 영화를 만들 때 참고를 했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에 좋아하는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은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는 느낌과 비슷하죠. 소녀들의 관계에 대한 리서치를 진행하면서 소녀들이 동성 사이의 우정을 경험할 때 유사 연애의 감정을 느낀다는 글을 읽고 공감했던 적이 있습니다. 성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버림받고 상실하고 다시 되찾으려는 그 감정은 멜로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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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있을 때 혼자 지아의 편을 들어주는 진짜 용기를 내는 것이 일상 속의 기적이라고 하셨는데요.
제일 고민했던 부분이었어요. 결말을 고민하면서 서사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죠. 선이가 아픔을 겪고 씁쓸하게 졸업을 하는 결말도 있었고 완전히 파국적인 사건으로 끝나는 결말도 있었어요. 학교 폭력에 대한 연구를 읽다가 내가 학교 폭력을 영화로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어요. 저도 유년기에 받은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거든요. 감정과 상처의 주고받음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개인적인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내가 선택했으면 하는 결말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모든 삶의 조건이 해결되지 않더라도 개인으로서 나는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잖아요. 전혀 연관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의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죠. 굴곡진 삶을 살든 파란만장한 삶을 살든 ‘다시 사랑해야만 한다’라는 문장이 제게 영화를 만들게 한 동력이 됐어요. 모모랑 선이는 연관이 전혀 없지만 영화를 찍고 나서 그 소설을 배우들에게 선물로 줬습니다.




중요한 대사가 있을 때 쪽대본을 주는 경우를 제외하고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주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떤 기사에서 시나리오가 없는데 제가 마치 홍상수 감독님처럼 매일매일 시나리오 작업을 한 것처럼 나왔는데요. 그렇지는 않아요. 저는 오래 고민하고 계획을 세워야 하는 사람이라 씬마다 인물들이 해야 할 목적과 행동에 맞춰서 지문과 대화를 정확히 썼지만 아역배우들에게 전달하진 않았어요. 촬영 때는 현장의 즉흥성을 추구했던 것 같아요. 리허설 기간인 2~3개월 동안 모든 장면을 같이 연습하면서 전체 맥락은 모르지만 디테일은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촬영에 들어갔습니다. 감정은 연습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이 상황에 처하면 나는 어떤 감정이 어떻게 들까, 배우 자체가 이 상황에 직접 들어와서 자기 입장을 생각하게 했어요.




중학생 때 장래희망 란에 영화감독을 적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진짜 어렸을 때는 디즈니 홈무비, 소년 소녀가 주인공인 모험 영화들, , <구니스>, <그렘린>, <내 사랑 컬리수>, <마이걸> 같은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러다 중학교를 올라가서 비디오를 빌려봤죠. 영화를 한창 보기 시작한 중학생 시절에는 PC통신이 활발하게 등장했을 때였어요. 하이텔 영퀴방2)에 가입해서 뭔지도 모르고 영퀴하는 게 재밌었어요. 영화 정모에 나가고, 대학생 언니 오빠들 틈바구니에서 껴서 막내로요. 그런 데서 영화를 보면 저한테 뭔가 쌓이는 느낌이 있는 거예요. 아직도 기억나는데, 기타노 다케시의 <하나비>를 불법 상영하고 그랬어요. 그런 문화에 있다 보니 영화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지 않았을까요.




이창동 교수님과 제작사 ATO가 큰 힘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CJ E&M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산학 협력 과정 2기입니다. 2기는 총 4명이었는데 제출한 트리트먼트가 당선됐고, 이창동 교수님이 시나리오 멘토였습니다. 멘토링은 2주일에 한 번씩 모이는 수업에 가까웠어요. 처음에 제출했던 트리트먼트는 여고생이 남동생의 죽음을 파헤치는 구조의 미스터리 스릴러였습니다. 선생님이 첫 날 보시고 저한테 딱 두 마디 하셨어요. “재미없다.” “가짜 같다.” 그리고 시나리오 전체를 완전히 다시 쓰라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던 것 같아요. 뭐가 재미없고 가짜 같다는 거지? 영화를 완성하고 나서 이창동 교수님의 말이 어떤 뜻인지 안 것 같아요. 저는 장편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어요. 상업적으로 장르적으로도 대중에게 만족을 줘야 한다는 외부의 기준에 매여있었습니다. 트리트먼트 당선 이후에는 ATO를 만났어요. ATO는 영상원 전문사 기획 전공 4명이서 만든 회사인데요. 친한 동기 중 1명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었고, 시나리오 완성 이후 피드백을 받기 위해 보여줬다가 제의를 받았어요. 굉장히 작은 영화지만 울타리 역할이 필요했었는데 ATO가 그 역할을 해줬습니다. 마치 졸업 작품 두 번 찍는다는 느낌으로 가족 같은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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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여성 감독들의 영화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윤가은 감독님의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21세기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영화를 만들 때 지금 이 순간 제 이야기로 생각하고 만들어요. <우리들>은 아이들이 주인공이지만 저 자신도 관계에서 딜레마를 늘 겪고 있기 때문에 만들어야 하는 영화였습니다. 제 단편 중에 <콩나물>은 소녀가 시키지도 않은 심부름을 갔다가 실패하는 영화인데요. 영화를 만들 당시의 제 마음도 실패할까봐 두려웠어요. ‘실패하면 어때, 해보는 게 중요한 거지’라는 마음이 솟구쳐 오를 때였는데 그 이야기가 제 마음 상태와 맞은 거죠. 제가 현재 가지고 있는 고민들에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고민들도 포함됩니다. 어떤 것을 의식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고민이 많이 반영되어요. 제가 여자라서 여자 이야기가 편한 것도 있고요. 한동안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예술 하기에 힘든 시대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가 감히… (웃음) 예술하기 힘든 시대죠. 어려운 이유는 돈 때문이에요.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아르바이트가 필요하죠. <우리들>을 만들기까지는 3년 걸렸고, 그동안 연봉이 0원이었습니다. 최근까지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어요. 스스로 찾아야 하는 동력이 필요해요. 예술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영리한 방법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합니다. 체력전이에요. 삶에 불안한 요소가 생기죠. 주변에서 “이런 예술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어, 안정적으로 살 수 있어” 라는 얘기를 많이 하시구요. 그런데 우리들의 전성기가 올 때쯤을 생각해보면 결국 우리들이 만들어 나가야 해요. 어렵지만 우리가 만든 브랜드, 우리가 만든 영화를 보여주기 시작하면 우리의 예술이 또 하나의 주류가 될 수도 있죠. 이런 시기가 올 거라는 제 순진한 희망이 있어요. input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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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가은 감독은 자신만의 색으로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감독 중 하나다. 실제로 영화 <손님>은 클레르몽페랑국제단편영화제 대상을, <콩나물>은 베를린국제영화제 수정곰상을 받았으며 <우리들>은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경쟁 부문과 최우수 장편 데뷔작 부문에 초대받은 바 있다.
2) ‘영화퀴즈방’의 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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