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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쌓인 이야기를 톱아보고1) 몸을 통해 세계를 파악하는 그의 내밀한 길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몸멈뭄맘>은 권령은 안무가의 작품 중 하나다.권령은의 몸짓은 몸에서부터 출발해 -멈으로, -뭄으로, -맘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주한다. 아니면 빙그르르 돌아 결국 다시 몸으로 돌아오는 긴 여정일까.

지난 6월 한·불 상호 교류의 해를 맞아 제4회 댄스 엘라지Danse Elargie가 서울의 LG 아트센터, 파리의 떼아뜨르 드 라 빌에서 동시 개최되었다. 댄스 엘라지는 국적, 나이, 분야를 불문하고 동시대 예술의 실험적인 안무를 선보이는 예술가를 뽑는 열린 경연대회다. 이 대회가 내 건 제약은 단 두 개뿐이다. 최대 10분 이내의 신작을 선보일 것, 적어도 세 명이 무대에 오를 것. 동시대의 실험적인 한 장면을 그려 내기 위해 모인 예술가들 가운데에서 안무가 권령은의 작품 <Glory>가 3위에 올랐다.




글. 이한범     




몸 →
‘춤의 확장’이란 이름에 걸맞게 실험적이었던 댄스 엘라지 파리 대회에 대한 소감을 듣고 싶다.

총 17팀이 출전했는데 모두 하나도 같은 것 없이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완성도를 떠나서 춤을 생각하는 방식이 다채로웠고 움직임이 아닌 춤이라는 개념이 어디까지 확장되는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춤은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며 여러 작품을 볼 수 있었고 참가자들이 공연이 끝나고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서로에게 가서 작품에 대해 질문하고 이야기했다. 다양한 작품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다양한 생각들과 함께여서 좋았다. 3위 입상은 ‘나’ 혹은 ‘안무가’라기보다는 작품으로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 멈
<Glory>는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 창작의 과정이 궁금하다.

군대라는 특정한 제도가 콩쿠르를 통한 군 면제라는 방식으로 무용계 내부에 침투해 들어오면서 그것이 어떻게 교육을 바꾸고 춤의 스타일을 바꾸고 춤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고, 또 그 제도가 무용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서 우리의 몸을 바꾸는지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시작은 작년 국립현대무용단 ‘여전히 안무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동료와 함께 했었던 <몸멈뭄맘>이라는 작품에서부터였다. 주제가 ‘한국 현대무용의 역사에서 바라본 몸’이었는데, ‘부적합한 몸’이란 파트에서 우리가 몸을 어떻게 다뤄왔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나는 아름다운 몸을 위한 다이어트 강박에 대해 말했다. 친구는 자기 몸의 가장 큰 역사가 군 면제를 한위 콩쿠르
준비였다고 말하더라.


나는 그 친구의 콩쿠르 준비를 옆에서 다 지켜봤었고 그 이야기를 <Glory>에서 발전시켰다. 결국 몸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된작업인 셈이었다. 이번 공연에는 두 명의 무용수와 함께 했는데 한 명은 무용원 실기과 출신의 무용수 김성현 씨였고, 다른 한 명은 무용을 하다가 현재 연극배우로 활동하는 김도완 씨였다. 김성현 씨는 4년 동안 11번의 콩쿠르에 나가 마지막에 군 면제를 받았고, 김도완씨는 개인적 사정으로 콩쿠르에 못 나가서 군대에 갔는데 교관으로 복무하면서 군대의 모든 움직임, 즉 제식을 다 마스터했다. 재밌는 게 둘이 정말 많이 닮았더라. 콩쿠르 준비를 위한 몸짓과 제식훈련의 몸짓이라는 게, 태도나 보여지는 방식에 있어서 유사했다. 그걸 비교하면서 작업하는 게 개인적으로도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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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통해 하나의 제도,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제도를 읽어내는 방식이 흥미롭다.
이건 내 동료들의 이야기이지만, 결국 그들과 같이 작업을 하기 때문에 그러한 몸의 사용은 나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 콩쿠르를 준비하는 무용수들의 인터뷰를 되게 많이 했다. 그들이 몸을 어떻게 다루는지, 어떻게 콩쿠르를 준비하는지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춤이 도대체 뭘까, 예술이 도대체 뭘까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되었다. 5분이라는 시간 동안 그들은 결판을 내야 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뺏을만한 극적인 동작이 있어야 하고 안무의 컨셉 또한 자극적이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전략적으로 치밀하게 몸을 학대하고 폭력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 몸은 점점 규격화 되고 신체의 모양새 자체만으로도 이미 잠정적인 등수가 매겨진다. 적합한 몸과 부적합한 몸이 자연스럽게 구별된다. 그러나 컨템포러리 안에서는 정해진 것 없는 다양성이 중요한 것 아닌가? 모두 발레리나와 발레리노 같은 몸일 필요가 없다. 나의 살과 상처와 개별적인 몸에 쌓인 이야기가 궁금하고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몸 →
춤을 아주 오래 췄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엄마 따라 에어로빅장에 가서 유아발레도 했었고, 초등학교 때 친구랑 변진섭의 <희망사항> 같은 노래에 맞춰 안무를 만들면서 놀았다. 자연스럽게 발레를 배우게 됐고 예중-예고를 다녔다. 안무가가 되려고 마음먹은 건 그만큼 옛날 일은 아니다. 대학교 학부를 졸업할 당시 이제 뭘 해야 하나 하다가 지난 일기장을 우연히 봤는데 거기에 “서른 살에는 홍신자처럼 무용단을 만들어야하겠다”라고 적혀 있더라. 인간극장이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홍신자의 ‘웃는돌 무용단’이 나왔는데 그걸 보고 충격을 받아서 썼던 일기였다. 아, 춤을 추기 시작했을 때 꿈이 이거였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예종 무용원에 지원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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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이 춤 인생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나?
창작과 전문사에 진학한 게 2005년이다. 동기들 열 명 중 다섯 명이 무용 비전공자였다. 비전공자들의 춤을 보면서 날것의 움직임에 너무 충격을 받았다. 내가 어떻게 해도 연습해도 나오지 않을 그런 움직임들이었다. 그때부터 그 어떤 발레 수업도 들어가지 않았다. 내 춤이 너무 다듬어진 표현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게 재미가 없더라. 춤 인생에서의 전환점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쌓아온 것들을 깨는 시간이었고, 모든 것들이 다 의심되었다. 그 얘기가 <몸멈뭄맘>에도 나온다. ‘앙바En bas, 아나방En avant, 앙오En haut’ 이런 발레 용어가 있다. 불어로 하면 ‘아래로, 앞으로, 위로, 옆으로, 뛰어’ 이런 식인데, 뜻도 모르고 몸에 기록된 움직임만 하던 그런 것에서 회피하고 싶었다. 내 몸의 확장이란 게 단지 몸이 스트레칭 되고 많이 돌고 높이 뛰고 그런 게 아니더라. 나의 고유한 움직임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 맘
삶에서도 작품에서도 ‘나’라는 게 항상 중심에 있고, 거기가 시작이다.

늘 내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없어진 ‘차세대 안무가 클래스’라는 데서 7개월간 수업을 들으면서 작업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멘토들이 해 줬던 피드백이, 내 이야기가 사회 안에서 그들의 이야기로 확장되지 않으면 나는 그냥 무대 위에서 자위하는 것 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전까지의 작업들이 그렇게까지 확장되지는 못 했구나 싶었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게 단순히 일기장 보여주는 것처럼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거기서부터 변화를 많이 겪었고 발전했다. 지금은 내 이야기이면서 타인의 이야기를 하고, 타인에게서 내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Glory>가 나로부터 많이 빠져나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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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
앞으로 권령은이 설 자리는 어디일까?

하고 싶은 건 계속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욕심 있는 말이란 건 알지만 그게 안무일 수도 있고 영화일 수도 있고 책을 쓸 수도 있고, 고양이 털 깎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영상작업에 관심이 많다. 한번은 홍은예술센터(현 서울문화센터)에서 1년 동안 레지던시를 했었다. 자전거를 타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11일 동안 횡단하면서, 매일 밤마다 머무르는 마을에서 공연을 했고 댄스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만들었다. 무척 재밌었다. 춤은 한 번 추면 휙 사라지는데 영상이란 건 휙 하면 돌려 볼 수 있고 사라지지 않는다.

요즘은 퍼포먼스와 안무의 경계가 많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 그 경계에서 많이 혼돈스러운 부분이 있다. ‘이제는 몸이다’라고 많이들 얘길 하는데 우리는 사실 원래부터 몸이었다. 이제는 몸이라고 말하는 것과 원래 몸이었던 것, 이 둘 사이에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퍼포먼스를 지향했을까? 잘은 모르겠다. 뭘 할진 모르겠지만 일단은 계속 작업이 하고 싶다. 춤을 춘 게 20년이 넘었지만, 갑자기 더 좋아지는 게 생기면 미련 없이 춤을 떠났으면 싶기도 하다. 그래도 당분간은 춤을 할 것 같다. 지금은 이게 너무 재밌으니까. input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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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톱아보다: ‘샅샅이 더듬어 가면서 살피다‘라는 뜻의 순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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