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취향의 발견


글. 최윤지




섹스, 폭력, 호기심. 대중문화는 인간의 원초적인 흥미에 관심을 둔다.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비되기 위해서다. 그래서 대중문화를 저급하다고들 한다. 나 또한 저속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 자극적인 제목의 뉴스 기사를 클릭하고, 재미를 위해 TV를 시청하며, 블록버스터 영화를 즐기고, 책보다는 웹툰을 슬라이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수동적인 소비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관심을 충족하고자 하는 능동적인 욕구가 스스로의 취향을 구성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즐거운 삶을 누리고자 소망한다. 그 소망을 향해 대중문화가 웃는 얼굴로 손을 내민다. 그 손을 기꺼이 잡는다. 빠른 속도로 많은 양을 소비한다. 그래서 대중문화는 소모품이다. 몸과 사물을 끊임없이 탄생시킨다. 그리고 그 이름을 계속해서 바꾼다. 이름 뒤에 숨겨진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 그 얼굴은 여전히 미소 짓고 있을까?




모르는 아이돌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한 아이돌 시스템은 국내 음악 시장에서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시장 안에서 아이돌은 대중을 상대로 한 상품의 성격을 지닌다. 그래서 신인 아이돌이 데뷔할 때 기획사는 조금이라도 더 매력적인 상품으로 어필하기 위해 튀는 이름을 구상한다. 듣는 순간 어안이 벙벙하리만치 독특한 이름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가물치, 소나무, 크나큰, 풍뎅이, 소년공화국, 칠학년일반, 구구단 등. 보이그룹 가물치는 어떤 환경에서도 강한 생존력을 자랑하는 가물치처럼 가요계에서 생존하자는 뜻을 내포한 이름이고, 걸그룹 소나무는 늘 한결같고 푸르른 소나무처럼 오래 가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 보이그룹 크나큰의 멤버들은 평균 신장이 185cm라 모델돌로 불리고, <알탕>이라는 제목의 노래로 데뷔한 풍뎅이는 소속사 대표가 그 단어에 꽂혀서 지은 이름이란다. 반면 쿨한 이름으로 통하는 아이돌 그룹명은 대부분 외래어다. 빅뱅, 샤이니, 인피니트, 엑소, 위너, 블랙핑크 등. 영어 이름이 대중에 좀 더 어필하는 이유는 외래어를 세련되고 유식한 말로 우러러보는 경향이 아직까지 사회에 잔존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중국 연예시장이 커지면서 한자 표기가 가능한 한국어 이름이 각광받고 있으며, 방탄소년단, 여자친구 등 boys, girls 등으로 쉽게 번역될 수 있는 아이돌 그룹 이름도 늘어나고 있다.




통속적 코드를 넘나들다
주말연속극 <아이가 다섯>이 최고 시청률을 달리며 막을 내렸다. 아이 딸린 싱글맘과 싱글대디의 만남을 통해 다섯 명의 어린 자녀가 새로운 가족구성원을 맞이하는 재혼 가정의 한 형태를 보여주었다. 다음으로 시청률이 높았던 일일연속극 <별난가족>은 서울 드림을 가지고 도시생활에 접어든 인물들의 모습을 그렸고 역시 인기 드라마인 <가화만사성>은 차이나타운의 중식당 ‘가화만사성’을 운영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는데, 이들의 제목만 보자면 다사다난한 가족사를 통해 현대사회의 이상적인 가족상이 무엇인지를 묻고 답하려 하는 시도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통속적인 코드가 덧붙여지면 서 가족 구성이 지진을 일으키면 시청자는 욕하면서 본다. 통속적 코드가 대중의 원시적인 관심사에 적절하게 부합하기 때문이다. 은밀한 대중적 코드에 현대적 감각을 불어넣어 시청자를 공략하는 드라마도 인기다. 의사가 된 반항아의 이야기를 다룬 <닥터스>, 톱스타와 PD의 사랑을 다룬 <함부로 애틋하게>, 웹툰과 실제 세계를 오고가는 <W>와 같은 드라마는 감성을 불어넣은 듯한 제목으로 뻔하지 않은 소재를 예고한다. 독특한 설정과 소재를 암시하는 제목으로 젊은 세대의 시청자에게 어필하는 것이다.




alt
강미혜, <color printed papers>, 종이에 실핀, 640x950mm, 2013



터치와 스크롤의 세계
한편 스마트폰을 손에 쥔 사람들을 위한 콘텐츠가 대세다. 스마트폰을 통해 짧은 시간을 활용하여 언제 어디서든 웹드라마, 웹툰, 방송 하이라이트 영상클립 등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비롯된 최신 콘텐츠에 대한 열광은 10분을 넘지 않는 길이에 주제나 소재가 비교적 가벼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웹드라마를 탄생시켰다. 웹드라마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아시아 7개국에 방송된 <우리 옆집에 엑소가 산다>는 누적 조회 수 5,000만 뷰를 기록하였다. 엑소의 팬덤에 힘입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카이 주연의 <초코뱅크>, 웹툰을 원작으로 한 <게임회사 여직원들>, 옥택연과 송하윤이 주연 한 <널 만질거야>, 소녀 간의 사랑을 다뤄 화제에 오른 <대세는 백합> 등 웹드라마는 제작 비용이 적고 도전의 문턱도 낮아 다양한 시도가 가능한 터라 그 제목과 내용 또한 대부분 독특하며 자유롭다. 웹드라마 시장에서 자극적이고 창조적인 제목의 사용은 끊임없이 새로이 등장하는 콘텐츠의 바다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웹툰 시장에서 대중의 선택은 폭이 넓다. 웹드라마와 같이 웹툰 또한 진입 장벽이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빠르게 스크롤을 내리는 가운데 튀는 제목과 섬네일 이미지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다. 때문에 짧고 특이한 제목을 짓는 경향이 있다. 조회수가 높은 웹툰은 드라마화, 영화화되기도 하는데 Hun의 <은밀하게 위대하게>, 강풀의 <아파트>, <바보>, <순정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이웃사람>, <26년>, 윤태호의 <이끼>, <미생>, 순끼의 <치즈인더트랩>, 임인스의 <싸우자 귀신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만화를 소비하는 공간이 확장되었음을 알려주는 양상이다.




진짜 표정의 연예인
TV 방송계의 강자는 예능이다. 시청자의 여가 문화를 바꾸고 문화콘텐츠를 확산하는 예능은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는 트렌드세터로서 기능하고 있다. 동시대의 트렌드에 민감한 예능은 시청자들의 사고의 변화에 즉각적으로 유연하게 반응한다. 요즘에는 예능 프로그램이 전문매체와 결합하여 나타난 제목을 흔히 볼 수 있다. 요리를 다루는 TV프로그램, 이른바 쿡방이 전성시대를 맞이한 뒤로 여전히 예능계에는 <삼시세끼>, <냉장고를 부탁해>, <한식대첩>, <셰프원정대-쿡가대표>,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 등의 프로그램이 채널을 점령하며 이른바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을 탄생시켰고 남성 셰프들은 인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인문학의 문을 두드리는 <비밀독서단>은 매주 시청자들이 관심 주제를 선정하여 가장 높은 지지를 받는 책 랭킹을 공개하고 관련한 지식을 쉽게 전달하여 대중에 어필한다. <비밀독서단>을 통해 소개된 책은 서점에서 적극적인 홍보 대상이 되고 결국 베스트셀러로 등극한다. 그밖에도 제목에서 제시된 콘텐츠를 직관적으로 반영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많다. 시청자들은 <복면가왕>을 통해 가면 아래의 진짜 얼굴을 궁금해 하고, <진짜 사나이>를 통해 역경을 견뎌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감동을 얻으며, <런닝맨>을 통해 쉼 없는 추격전을 버텨내는 연예인의 진짜 표정을 바라보고 싶어한다. 예능 프로그램이 공감을 이끌어내는 코드는 바로 ‘리얼’이다. 형식 없음으로부터 모든 형식을 담아내어 말 그대로 무한도전인 예능의 강자 <무한도전>이 공감을 얻는 이유는 댄스스포츠, 에어로빅, 봅슬레이, 프로레슬링 등에 도전하는 장기 프로젝트로부터 연기자들의 진정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예능의 소비는 결국 사람에게서 사람다움을 발견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소비하는 방법
피로를 푸는 방법부터 신뢰를 얻는 방법, 취업하는 방법, 봉사하는 방법, 맛있게 먹는 방법, 올바른 청년이 되는 방법 등 삶을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상업적인 측면에서의 강력한 대중문화의 촉매제가 있다. 바로 TV 광고다. 광고는 소비로부터 행복을 얻는 방법들을 제시하며 대중의 관심을 끈다. 광고는 반복 노출을 통해 그 효과를 노리는데, 멜로디를 이용하여 상품의 이름을 반복하여 전달하는 쿠차차, 오로나민 씨, 다방 등의 광고가 대표적이다. LTE를 세로로 적으면 ‘?’처럼 보이는 것을 활용한 광고나 신세계의 약자 SSG를 ‘쓱’ 으로 읽어 변형한 것처럼 말과 글을 변형하여 빠르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광고도 있다. 광고가 광고를 패러디 하는 양상 또한 대중의 흥미를 자극한다. 과거 이미연의 광고 영상을 똑같이 패러디한 혜리의 가나초콜릿 광고가 있다. 혜리는 세븐일레븐 도시락 광고에서도 과거 옥동자 아이스크림의 막춤 CF를 패러디한 바 있다. 김보성이 시종일관 “으리”를 외치는 비락식혜 광고는 온라인상에서 이미 활발하게 패러디 되고 있는 유행어를 광고의 형태로 재생산하고 수용자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그러한 광고가 또다시 패러디 되는 양상은 흥미롭다. 대중과 광고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작명된 카피들이 대중문화의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저급하다. 상업적이다. 이데올로기적이다. 대중이 누리는 문화를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는 한다. 대중이 대량으로 생산된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며 현대 자본주의에 대항할 힘을 원천적으로 제거하여 눈먼 대중을 문화에 종속시키는 속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이 이를 받아들이고 소비하는 과정은 다르다. 수용여부를 결정하는 중심에 대중이 있고, 제도가 강제하는 체계의 통제를 거부하려는 저항 또한 존재한다. 이는 대중의 문화적 텍스트의 발췌로부터 비롯된다. 선택적 소비인 것이다. 대중은 빠르게 지나가는 이름 중 몇 가지를 고르고, 그 이름들의 덩어리로부터 감각이 생겨난다. 대중은 작명된 텍스트를 수동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도리어 소비로부터 능동적으로 의미를 생산한다. 취향은 그렇게 발견된다. input image






살아갈 이름이 필요하다


글. 이지웅




오늘날 집에 사는live 사람은 집을 사기만buy 한다. 집이 지어지는 과정에 관여하기보다는 이미 지어진 집 가운데 하나를 구매하는 방식이다. 집은 하나의 상품과 다름없어졌다. 집 이름을 짓는 양상도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에 특정한 개인의 자아를 표현하는 ‘당호’였던 것과 달리, 이제 집 이름이란 매매를 위한 광고 기능이 중요한 ‘브랜드’로 기능한다. “저 집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와 더불어 “저 집을 사면 얼마나 좋을까”가 관건이다.

이 특징은 ‘거주를 위한 기계’로서 지어지는 아파트에서 줄곧 발견된다. 기업 단위에서 집을 먼저 지은 다음에 사람들에게 팔아넘기는 특성상, 아파트 이름에는 사회에서 우선시하는 가치들이 직접적으로 반영되어있다. 특히나 부동산이 가장 중요한 투기 대상인 한국사회에서는 아파트 이름이야말로 시대의 상품상을 가장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단순히 거주한다는 기능적인 측면뿐 아니라 가치가 상승할 거라는 수익성, 그리고 신분을 증명해줄 거라는 대표성이 아파트 이름에 담겨있다.

초기에는 상품을 설명하는 정보 전달 기능이 주를 이뤘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아파트 고유 이름을 붙인 ‘롯데 캐슬 84’처럼 단지 84라는 공급 가구 수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얼마 후부터는 각 아파트가 가지고 있는 편의시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용도로써 이름을 사용한다. 가령 김포 e편한세상은 ‘캐널시티’라는 이름으로 수변도시의 입지성을 강조하고, 양산 한양수자인은 ‘아이시티’를 이름으로 사용하며 옆에 있는 어린이 시설을 강조한다. 한창 현대화를 거치면서 상품 자체의 질이 중요했던 이 무렵까지 ‘집 이름’은 상품 자체를 드러내는 데에 집중해왔다.

대부분의 집이 기술적으로 안정권에 들면서부터 양상은 조금 달라진다. 내 집 마련이 단지 편안한 집에 산다는 의미를 넘어 사회적, 경제적 지표를 가리키는 것처럼 이제 집은 현재의 지위를 드러내는 기호로서의 기능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따라서 집 이름 또한 물리적인 사실보다는 추상적인 가치 정보를 더욱 집어넣으며 그 상품성을 광고하기 시작한다. 2000년대 중후반 ‘타워팰리스’라는 집 이름이 부유층의 별칭으로 유명세를 타더니 이후부터는 ‘래미안 노블 클래스’나 ‘롯데캐슬 프레지던트’처럼 아예 신분을 가리키는 단어들이 집 이름으로 지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자이(Extra와 Intelligent)’나 ‘렉슬(Luxury와 Castle)’처럼 기이한 합성어를 사용하며 그들만의 세상을 한껏 강조하는 것도 최근 사이 벌어진 일이다. 아파트 이름 변천사에는 현대사회에서 브랜드 기능 변화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alt 강성은, <The house 12> 중 일부, Chinese ink on Korean paper, 60x60cm, 2016



한동안 집 이름은 갖가지 부동산 이슈와 맞물려 이와 같은 아파트 브랜드 리뉴얼 열풍에 초점 맞춰 있었다. 이 시기에 지식인들이 꺼냈던 순우리말로 이름을 붙여주자는 주장이나 건물은 그대로 둔 채 이름만 바꾸는 풍조에 대한 비판도 그런 맥락을 벗어나지 않았다. 아파트 브랜드가 집 이름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던 셈이다. 여기에서 집 이름이란 너와 나를 구별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기능, 즉 상품성만의 맥락에서 왜 저 집 대신 이 집을 사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기능하는 맥락에서만 사용되는 거로 동의됐던 것이다. 사는 것만이 중요한 세상에서 집 이름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실제 생활과 무관하게 ‘그 브랜드’ 대문을 열고 들어가기만 하면 상관없다는 식으로 취급되었다.

그렇지만 이름이 단지 현실적인 효용원리에서만 만들어지는 걸까. 무엇에게든 이름을 지어주는 일에는 단순 효용가치를 넘어서는 심리가 있어 보인다. 명명될 대상을 소중하게 기리는 태도가 작명에 전제돼있고, 이름을 통해 그것을 기념하고 증명해내는 효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아파트 브랜드는 이름의 협의만을 띤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사는 것만이 소중한 세상이라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그런 행위조차도 살아가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데에서 뻗쳐나간 것인데, 상품성의 맥락만을 고려한 이름이 집 안에서 실제로 벌어질 삶의 소중함을 고려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파트라는 커다란 건물 안에서 실제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은 그중에 일개 층에 지나지 않는다. 바깥에야 세상을 관찰하고 분석하며 지어진 거창한 이름이 칠해졌겠지만, 정말 개인이 살아가는 공간에 붙어진 이름이라곤 기껏해야 집 호수가 전부다. ‘집’이라는 정의를 ‘개인이 거주하는 공간’이라는 기본적인 뜻으로 제한한다면 거주 공간을 뭉뚱그려 지어진 집 이름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 요사이 지어지는 집과 이름을 설명했던 첫 문장은 이렇게 고쳐 말하는 편이 정확하다. 오늘날 지어지는 집 이름이란 ‘사는buy 집’에 있지, 본질적으로 ‘사는live 집’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alt 강성은, <The house 2> 중 일부, Chinese ink on Korean paper, 60x60cm, 2007



구매하는 집에 붙는 이름은 한껏 고려하면서 정작 살아가는 집에는 이름이 없는 삶. 집에 산다는 안정감이 브랜드 안에 살아가는 것과 등치될 수 있는 것일까. 집이 외부로부터 내부에 있는 개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교과서적 문장은 여기에 질문을 던진다. 밖에서 열심히 돈 벌어 들어오게 된 ‘안’은 얼마나 안정감 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과연 아파트 브랜드를 실내를 포용해줄 이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전통건축에는 당호들이 붙어 있는데, 선조들의 건축이 철학에 맞추어 설계됐던 것처럼 당호에는 개개인이 귀히 여기는 철학이 담겨있다. 책을 읽는 독서당에게 선비의 기품을 잃지 않고 한껏 오기를 부리라는 뜻의 ‘기오헌寄傲軒’이라는 이름을 붙여 개인의 신조를 담거나, 성원 옹수곤이 추사 김정희, 신자하 신위와의 만남을 기리기 위해 지은 ‘성추하벽지재星秋霞碧之齋’라는 이름처럼 삶의 중요한 순간을 포착하는 식이다. 이미 지나간 순간을 오랫동안 남아있을 집에 새겨 넣어 회상함으로써 자신을 다잡던 것이 당호에 담겨있다. 이름의 의미는 집이 갖는 초세대적 영속성과 결합해 더욱 강한 의미를 갖는다. 전각이나 제사나 공부를 위한 집, 다락집, 임금이 사는 집 등 특별한 기능을 갖는 ‘-재, -루, -각’과 같은 집에 붙은 이름뿐 아니라 일반 가정집들을 의미하는 ‘-가, -우, -주’에도 사람들의 바람은 비슷하게 담겨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항상 문판을 보면서 되뇌도록 이름을 짓는다.

자신이 구매한 이름으로 집과 개인이 동일화되는 것과 자신이 지은 이름으로 집과 개인이 동일화되는 것은 많은 차이를 가질 것이다. 전자가 자본주의 사회에 그대로 동화된 걸 의미한다면 후자는 아무리 세상이 어지러워도 집 안에서만큼은 자신을 지키겠다는 신조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문인들의 당호가 꾸준히 개개인의 특정한 자아 표현의 공간적 형상으로서 연구 가치를 지니는 것도 그래서다. 집에만 붙이는 이름을 넘어 과거의 당호들에는 자신의 삶을 담는 공간으로서 집을 인식하여 이름을 붙인 노력이 담겨있다.

이름 짓기에는 소중한 대상에게 의미를 불어넣는 가치가 담겨있다. 구매하는 집에 붙는 이름은 한껏 고려하면서 정작 살아가는 집에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 삶은 비루해 보인다. 바깥에 브랜드 이름만을 짓고 그 안에 살아가기에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집 안’이야말로 진정으로 소중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단지 세상이 요구하는 가치들로만 지어진 이름들만이 먼발치에서 관찰되고, 거기에 들어간 권리번호처럼 호수가 보이는 게 전부다.

우리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세상으로부터 지키고 싶은 삶이 있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져도 이렇게 멋지게 살라고 사람의 이름을 짓는 것처럼, 집 이름 또한 바깥 세상이 어떻더라도 이 안에선 보호받고 지켜나갈 것을 당부하는 역할이다. 안팎 구분 없이 살아간다는 유비쿼터스 시대는 기술적으로는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안을 파괴하곤 모든 곳이 살벌한 바깥이 되었다. 바깥 명찰은 고민해도 진정 보호받고 지켜야 할 소중한 ‘안’에 대한 이름은 지금 내팽개쳐져 있다.

FaceBook twitter kakaostory
추천하기0
닉네임
비밀번호
소셜 로그인
 비공개
댓글쓰기
댓글삭제
비밀번호입력
인기기사

많이 읽은 글

카오스<BR>X 코스모스<BR>X 환타지아

카오스
X 코스모스
X 환타지아

추천기사

추천수가 많은 글

카오스<BR>X 코스모스<BR>X 환타지아

카오스
X 코스모스
X 환타지아

prev next
SNS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