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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정선



고대 이집트에서 이름ren은 심장ib, 그림자sheut, 성격ba 등과 함께 영혼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들 중 하나로 여겨졌다. 이들에게 이름은 한 대상을 살아 있게 하는 것 그 자체였으므로 이름 없음은 곧 영혼의 부재를 뜻했고, 그것은 파라오의 제국의 영생을 믿던 이들에게 무엇보다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다가왔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태어남과 동시에 이름을 부여받았고 그 이름이 불리는 동안 그 존재는 현존한다고 생각했다. 이름과 생의 밀접한 관계에 대한 이들의 믿음은 왕족의 비석에 새긴 이름을 둥근 테두리로 감싸는 카르투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죽은 자의 이름에마저 이 ‘마술적인 끈’을 두름으로써 이들의 이름, 즉 생을 영속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반대로 패배한 적군의 이름은 기념비에서 도려내는 일종의 기록말살을 통해 그의 흔적을 역사에서 지워냈다.




이름이 고대 이집트인들의 믿음처럼 영혼을 꾸리는 주요한 요소 중 하나라면 작명은 한 대상에 영혼을 불어넣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심장이 있기 전의 숨쉬기란 불가능한 일이고 그림자가 없다면 육체 또한 없는 것처럼, 누군가에 의해 불러질 이름이 없다면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술작품 역시 매체를 떠나 언어로 만들어진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수많은 <무제>의 작품들조차도 ‘무제(untitled 또는 no title)’라고 지칭되어야 할 만큼 우리는 작품을 부를 이름을 필요로 한다. 창작의 고뇌를 산고에 비유하듯, 예술가의 노력으로 잉태된 작품이 감상자에게 닿기 위해서 그 ‘아이’는 이름을 가져야 한다. 예술가에게 작품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이를 세상으로 불러내는 일과 같다. 따라서 작명은 작품을 창작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871년, 런던 왕립예술아카데미에서 휘슬러의 <회색과 검은색의 구성>이 전시되었을 때 이 작품에 쏟아진 야유는 다름이 아닌 그 제목 때문이었다. 아카데미 회원들 다수와 관객들은 작품에 사용된 주요한 색들만을 지시하는 작명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러한 예술가의 태도를 부적절한 것으로 여겼다. 결국 ’어머니의 초상‘이라는, 작품의 이해에 단서가 될 만한 부제를 덧붙이고 휘슬러는 이후 1880년, “내 어머니의 초상은 나에게나 흥미롭지, 관람객들에게 그게 대체 무슨 의미라도 되냐는 말이다”라고 적은 바 있다.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의 주창자였던 그에게는 오히려 작품에서 친숙한 내용을 읽어내고 해석하려는 관습적인 수용의 태도가 부당한 것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후대에도 이 작품이 작가의 어머니를 그린 것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는 상황은 작품의 제목이 지니는 중요성을 지시한다.




alt 이윤서, <How to disappear>, 캔버스에 유채, 60.6x50.0cm, 2016




예술작품에 대한 작명이 중요한 실질적인 이유로, 위 휘슬러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수용자에게 작품이 내포하는 의미를 지시하는 기능을 들 수 있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의 제목을 통해 감상자에게 감상의 방식을 제안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비평가들에게도 작품의 의의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할 수도 있다. 이러한 대표적인 예로 초현실주의 미술운동의 작품들을 들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 마그리트는 분명 파이프로 보이는 이미지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이름을 붙이며 이미지와 언어 사이의 보이지 않는 종속적인 관계를 겨냥했다. 달리나 호안 미로의 경우, 상식을 통해서는 독해가 어려운 형상을 통해 이미지에서 기존의 앎 또는 지식을 재인식하려는 욕망을 거세했다. <어릿광대의 익살>에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기대하는 어릿광대의 익살스러운 모습이 재현되어 있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잠자는 여인, 말, 사자>에는 제목이 지시하는 대상들을 암시하는 정체불명의 시각적 요소들이 마구잡이로 혼재되어 있다. 예술품을 둘러싼 환상적 아우라를 걷어내고, 그것 역시 상품들과 다름없는 인공물임을 밝히고자 했던 뒤샹 등의 모더니즘의 경향들에서도 이러한 예들이 발견된다. 이들은 예술에 대한 지배적이고 관습적인 이해를 거스르기 위해 변기에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전시하는 등 독창적인 작명으로 새로운 ‘계몽’을 시도했다.


그러나 예술작품에 제목이 붙기 시작한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오래된 일은 아니다. 작품 작명의 역사에 대한 공통된 학술적 견해는 아직까지는 찾아볼 수 없지만 많은 학자들과 역사가들은 작품이 개별적인 제목을 갖게 된 것은 공공전시라는 근대적 전시형태가 생겨나는 18세기 후반부터였다고 보고 있다. 18세기 이전에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는 일은 작품의 이름을 통해 그것을 더욱 이해하고자 하는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는 실험정신의 발로가 아니라 오히려 일반적인 경우에 가까웠다. 공공전시나 미술품 시장이 생겨나기 이전의 작품들은 특정 주문자들을 위해 만들어졌고 감상 또한 이들이 속한 소수 사회 내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들은 작품의 주제를 지시하는 제목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성경 속 이야기나 주요한 역사적 사건들은 이미 익숙한 것이었고 따라서 그러한 내용을 다루는 예술작품 역시 자신의 지식과 취향taste을 (재)인식하는 방식으로 관람되었다. 이를 위해 많은 경우 작품의 주제 역시 이들의 주문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렇듯 작품에 걸맞은 이름을 부르는 일은 늘 작품의 생산보다 작품의 수용과 더욱 밀접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18세기 후반 이후 예술품이 소수 특권층의 전유물이기를 벗어나 대중에 전시되고, 새롭고 보다 넓은 계층들 사이에서 거래되던 때에도 작품의 제목은 예술가보다도 작품의 수용과정을 다루는 중간자적 역할의 인물들에 의해 붙여지곤 했다. 다시 말해 전시품의 체계적인 분류를 시도한 근대적 박물관의 담당자들, 또는 예술시장에서의 작품의 순조로운 거래를 지향한 딜러들이 바로 예술품에 대한 작명의 선구자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863년,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는 본래 이름이 없던 상태로 있다가 보들레르에 의해 <검은 고양이가 있는 누드>로 지칭되었다가, 마네의 친구이자 화자이며 예술비평가인 아스트뤽이 붙여준 이름인 <올랭피아>로 살롱전에 출품되었다. <올랭피아>의 예로 알 수 있듯, 19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작명은 예술가의 개인적인 창작의 영역보다 작품에 대한 예술계artworld의 (의식적이거나 비의식적인) 협동적 행위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alt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




alt 제임스 휘슬러, <회색과 검은색의 구성: 화가의 어머니>, 1872




곰브리치는 작품에 대한 작명은 이미지가 지닌 이동성의 부산물1)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 작품이 지리적, 기술적, 그리고 상징적 한계로 인해 더욱 많은 관객을 만나기 어려웠을 때 이미지와 그 내용은 소수에 의해 설정되고 소비되었으며 재생산되었다. 그러나 19세기를 지나 20세기에 이르며 예술은 과거의 제약을 벗어나 새로운 맥락에 속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이미지를 과거의 관습과 그 폐단으로부터 독립시키고자 한 예술운동들이 오히려 작품에 대한 작명을 더욱 부추기는 경향을 낳은 것이다. 작명의 발달은 이렇듯 예술계의 집약적인 변화에 의해 이루어졌다.




회화 매체가 아니더라도 작품에 대한 작명은 예술작품이 확대된 예술시장에서 거래가 되기 시작하며 발달하는 경향을 띠었다. 그러나 ‘작명’에는, 앞서 살펴본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의의 외에도 예술적인 의의 역시 담겨져 있다. 멕시코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옥타비오 파스는 우리들의 원초적인 존재 조건은 본질적으로, 항상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 무엇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의 존재 조건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창조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는, 시란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말하여지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예술작품의 주제가 되는 예술적 대상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 불려지기 전까지는 스스로 실존을 결여하고 있는'2) 대상이며, 그것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표현, 다시 말해 그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까지도 분석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 대상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는 일, 곧 창작이란 그 대상을 부르는, 일종의 명명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한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의 이름이다3). 그는 같은 제목의 시에서 다른 이의 자서전을 대필하는 일과 일기 쓰는 일을 글쓰기라는 창작의 행위 아래 병치시킨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 속 익숙한 문장들은 글쓰기를 통해 글을 쓰는 ‘나’의 일기 속으로 흘러들어온다. 이렇듯 익숙한 세계와 환상과 환영의 세계, 일상과 비일상이 ‘나’라는 장소에서 만나게 되는 일이 창작일 것이며, 지금껏 보이지 않던 대상 - 이미지, 이야기, 소리, 그리고 움직임 등 - 에 물리적이거나 비물리적인 형상을 부여하고, 그것을 살아 있도록 만드는 인물이 예술가일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이름이 존재의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했듯 예술가의 창작 행위는 그 자체로 작명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작품에 이름을 붙이는 일을 오직 작품의 내용을 지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정 짓는 일은 작명 행위와 창작이 지니는 유사성과 그 의의를 축소시키는 일에 다름 아닐 것이다. 예술가는 작명의 역사, 즉 과거의 작품들이 제목을 통해 추구한 예술적 시도들을 파악함을 통해 지금 이곳에서 가능한 새로운 예술을 도모하고, 동시에 작명의 창조적 의의를 고려하며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켜야 할 것이다. 작명이라는 이 마술적인 끈이 예술의 세계를 지속시킬 수 있도록 말이다.




1) Titling “is a by-product of the mobility of images”
2) 옥타비오 파스, <활과 리라>, 솔출판사, 1998.
3)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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