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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후엔 항상 고민을 한다. 내용은 얻었으니 제대로 담을 그릇을 찾아야 한다. Q&A로 풀어낼 것인가, 다른 형식을 찾을 것인가. 당연히 인터뷰의 특성과 내용에 따라 더 적절한 형식이 있다. 사람들은 공연장에 갈 때 무엇을 기대할까? 프로시니엄 무대와 객석, 배우와 조명 같은 것? 정동욱 연출은 자신의 콘텐츠를 조금 다른 그릇에 담았다. 그 새로운 그릇 자체가 곧 콘텐츠이기도 했다. 이번 기사 역시 좀 다르게 담아 봐도 좋을 것 같았다.

글. 김윤영

           

입구에서 누군가 도장을 찍어준다. ‘Digital Native(디지털 원주민)’ 공연장으로 들어서니 일렬로 놓인 테이블 네 개와 양 끝의 스크린이 눈에 들어온다. 이 테이블들을 가운데 두고 객석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공연은 유튜브로 생중계되며, 노출을 원치 않는 관객은 가면을 사용할 수 있다. 객석 대신 중앙 테이블에 앉은 관객들은 오늘 카드게임에 참여할 사람들이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디지털 네이션> 공연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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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디지털 네이션 ‘생활 도감’

관객은 디지털 국가의 원주민 혹은 이주민으로 분류된다. 스크린에 등장하는 그래픽과 텍스트가 디지털 국가의 ‘생활도감’을 소개한다. 때때로 녹음된 인터뷰 내용도 삽입된다. 도감은 네 단계로 이루어진다. 속도에 적응하기, 가면 쓰기,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개인정보 제출하기.


그런데 본인은 디지털 원주민인가요, 이주민인가요? 원래 디지털 원주민이었던 것 같은데 점점 이주민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이런 공연을 준비했지만 저도 얼리어답터이거나 프로그래밍을 잘하거나 미디어 아티스트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그래서 공연에서도 기술보단 디지털과 관련한 소통이나 인간관계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아요.
2013년도에 처음 공연을 만들었을 땐 디지털 세대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야기가 많으니까 반대로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기획했었어요. 근데 관련 서적이나 기사 찾아보고 인터뷰도 하면서 ‘진짜 이들이 제일 똑똑한 세대가 맞을까?’ ‘우리가 진짜 디지털 원주민이 맞을까?’ 그런 의문도 들더라고요. 환경이나 취향 같은 요소도 있고 나이 들면서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원주민과 이주민 구분의 경계가 모호한 것 같기도 해요.

공연을 만드는 과정에서 시각이 조금 달라진 건가요? 약간 그렇죠. 처음엔 디지털 시대에 대해 긍정적인 면을 말하고 싶었지만 사실 좋은 면만을 보여주는 것도 단편적, 편파적인 거니까요. 오히려 그 양면성을 다 제시하고 관객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좀 모호하거나 무책임하게 볼 수도 있는데 그런 균형을 맞추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공연이 막 끝났는데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일단 part2에서 관객들이 게임을 너무 즐겁게 해서 좋았고, part1에서도 양쪽에 스크린을 설치해서 대화하는 식으로 설계를 했는데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만족스러웠어요. 그런데 처음에 자율적으로 이동하면서 관람할 수 있다는 걸 관객들에게 적절하게 설명하지 않아서 공연이 다가가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다양한 상황이나 관객들의 생각을 더 많이 시뮬레이션 해봤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아쉬워요.

alt <디지털 네이션>의 배우가 된 관객들 ⓒ두산아트센터

Part2. 디지털 네이션 ‘실전 훈련’

도감이 끝나면 ‘실전 훈련’이다. 테이블에 앉은 관객들은 디지털 네이션 카드게임을 시작하고, 객석에 앉은 관객은 테이블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람한다. 이 게임에서는 ‘초기화’, ‘개인정보유출’, ‘빅데이터’ 같은 전략카드를 활용해 ‘지식카드’를 가장 많이 모은 사람이 승리한다. 디지털 세계에 대한 일종의 시뮬레이션이다. 눈치챘겠지만 이 공연엔 배우가 없다. 배우의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네 개의 스크린, 디지털 세상을 은유하는 카드들, 그리고 관객들이다.

형식적으로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한예종에서 들었던 수업 중에 <양식사>라는 수업이 있었어요. 원래는 미술사와 여러 스타일의 역사를 가르치는 수업인데, 전용성 선생님께서 ‘네 자신의 스타일을 찾는 수업’으로 바꿔서 진행하셨거든요. 그 커리큘럼은 감자를 키우는 거예요. 감자를 분석하고, 감자를 그리고, 감자를 표현하고, 감자를 키워서, 감자로 요리를 하는. 그러니까 ‘감자’라는 걸 완벽히 다 알고 나면 어떻게든 풀어낼 수 있다는 의미인 거죠. 제가 그 영향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나만의 양식이나 형식을 좀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이 공연에서는 배우들을 통해서 제 말을 전달한다는 게 좀 부적절한 방식인 것 같았어요. 텍스트도 없고, 배우들을 만나서 제 생각을 설득시키고 그걸 말로 다시 만들어서… 이렇게 하면 이야기가 너무 많이 바뀔 것 같고, 그래서 실제 인터뷰를 편집해서 공연에 넣고 그걸 그냥 관객들이 받아들이고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방식으로 발전시켰던 것 같아요.

궁극적으로 정동욱 연출이 추구하는 공연은 어떤 공연일까요? 관객참여형 공연 같은 차별화된 형식의 실험들을 더 하고 싶어요. 관객이 그냥 바라보는 공연은 많이 있고 더 훌륭한 연출이 많으니까. 2011년에 프라하 세계무대미술대전(PQ)을 보러갔는데 인터랙션관이 따로 있더라고요. ‘이게 무대미술인가?’ 싶을 정도로 바닥에 보드게임을 깔아놓고 관객을 움직이게 하거나 관객이 유리관 안으로 들어가서 퍼포머와 껴안고 있게 하는 새로운 작업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런 작업들을 보고 관객참여형 공연을 만들게 된 것 같아요.
정동욱 연출에게 관객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관객은… 이번 공연의 형식에서 말한다면, 배우죠. 관객들이 그 상황에 직접 들어가서 생각하고 돌아가는 공연을 원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연극의 장점을 현장감, 생동감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저는 영화에서 이미 좋은 기술로 더 사실적인 환상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히려 연극만 할 수 있는 다른 방식으로 관객들을 몰입하게 하고 싶었고, 관객을 배우로 쓰는 공연을 만들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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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3. 디지털 네이션 ‘소통 연습’

카드게임이 끝나면 ‘소통 연습’을 위해 스크린에 연출이 등장한다. 연출은 공연장에 같이 있지만 스크린을 통해서 관객을 만난다. 관객들이 카드게임을 하면서 든 생각이나 객석에서 느낀 기분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연출에게 궁금한 것을 묻는다. 보통 공연이 끝난 뒤 진행하는 ‘관객과의 대화’와는 달리 여기선 이것도 공연의 일부다. 결국 연출의 의도대로 관객은 자신의 생각과 감상으로 이 공연을 완성시켜야 한다. 어찌 보면 이 공연의 핵심은 정욱동 연출과 관객의 협업이 아닐까.

공연 후에도 관객 의견을 포스트잇으로 받으셨죠? 네. 아주 많았어요. 만족하거나 특이하다는 반응도 있었고. 게임에 참여하지 않은 관객들이 소외감을 느꼈다는 피드백도 있었는데, 그 부분에선 사실 SNS를 빗대어서 소통/소외의 양면성을 보여주고 싶은 의도도 있었거든요. ‘즐겁게 노는 모습을 창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 소외는 생각한 부분이었지만 불쾌했다는 의견까지도 있어서 그건 좀 위험하니까 공연기간 중에 조금씩 수정을 했죠. 그런 피드백들이 있으니까 오히려 계속 수정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정동욱 연출에게 ‘소통’이 중요한 주제인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도 다른 원 학생들과의 교류였어요. 물론 제가 속한 연극원에서도 열심히 작업했지만 영상원이나 무용원, 음악원 친구들하고도 많이 교류를 했어요. 그러다 보니 다원예술 분야에 속해있는 작가들의 영향도 받았고요. 무용원 출신 서영란 작가의 <지신은 불완전하게 올라온다>라는 작품에서 조명디자인을 맡은 적이 있어요. 그분도 리서치 기반의 작품을 진행했는데, 샤머니즘에 관심을 갖고 무당이나 무형문화재 분들을 찾아다니면서 이야기를 듣고 판소리와 몸으로 풀어내는 작업이었어요. 처음엔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대체 이걸 왜 하는 거야.’(웃음) 근데 그런 작업이 반드시 어떤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다른 형식으로 공연을 만들어 볼 수 있다는 힌트를 줬던 것 같아요.
원래 무대미술을 전공한 건 뮤지컬을 하고 싶어서였어요. 공연장에서 느끼는 설렘이 있잖아요. 막상 학교에 들어와서는 학교 특성상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어서 다양한 생각과 형식을 실험해보며 결국 연출 작업도 하게 된 것 같아요.

미술원 학생들도 관객을 직접 참여시키는 작업을 많이 하더라고요. 네, 최근에 하더라고요. 그렇게 보면 무대미술과 미술의 경계가 진짜 모호해요. 저희 무대미술과 전시도 어느 시점부터 조금 바뀌었어요. 디자인 작품과 미니어처를 전시하는 대신에 관객들이 공간에 들어와서 어떤 걸 체험하거나 동선을 따라가는 식으로. 미술 쪽에서도 관객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것 같고 저도 연극적인 경계를 허물면서 관객을 배우로 쓰는 실험을 하고 있는 것 같네요.

<디지털 네이션>은 ‘다원예술’로 분류되기는 했지만 ‘다원예술’은 연극이나 영화처럼 하나의 장르라기보단 이런 장르 구분에 속하지 않는 예술들을 한꺼번에 부르기 위한 이름이 아닐까 싶어요. ‘다원예술’이라는 명칭에 만족하시나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다원예술이라는 명칭이 편한 것 같아요. “이게 대체 뭔가요?”했을 때 “이거 다원입니다.” 이러면 해결이 되니까.(웃음) 저도 약간 모호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이런 이상한 것에 다원이라는 말을 다 붙일 수 있으니까 그대로 놔두고 싶어요.

alt 다원예술 <디지털 네이션> ⓒ두산아트센터

 

이제 막 시작하는 신진 예술가로서 본인이 예술가로 호명되었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요? 아직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자연스럽게 학교 다니면서 그냥 작업을 했고, 예술가라는 타이틀 자체가 좀 부담스러워요. 두산아트랩에서도 계속 ‘연출님’이라고 불렸는데 그것도 아직까진 부담스럽고. 제 스스로가 ‘아 이번 것은 괜찮았다’는 생각이 들어야 할 것 같아요.

<디지털 네이션>이 세 번째 공연을 마쳤죠. 작업을 보완하면서 얼마나 더 하게 될까요? 비슷하지만 매번 달랐거든요. 제 생각도 바뀌고 디지털 시대라는 것도 너무 빠르니까, 제가 1년 전에 했던 생각을 똑같이 하게 되지 않더라고요. 아마 다음에 하면 또 바뀔 것 같고, 디지털 시대에 대한 관심이 끊어지지 않은 한은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아요. input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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