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글. 김경주

           

이십 대 후반 처음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이 되어 데뷔 후 몇 년간 청탁이 거의 없는 채 지냈다. 고향으로 내려가서 백수로 살았다. 어머니 옆에서 마늘이나 까주고 자전거 타고 뚝방이나 돌아다니면서 도서관에 다녔다. 어느 날 시립도서관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옆 사람이 불을 빌리며 물었다. 작년 국사 과목 기출문제 좀 빌릴 수 없느냐고. 잉? 무슨 국사? 모두들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사람들끼리 묻지 않아도 연대감을 표현하며 살고 있었다.

나는 도서관에서 시집을 열심히 읽었다. 우울이 몰려왔다. 어떤 프랑스 작가의 말이 자주 떠올랐다. 욕망은 현실에 의해 모욕당한다는. 그래도 내가 배운 것으로 먹고 살고 싶었다. 나는 독학으로 독서와 글쓰기를 해왔고 그런 것들로 먹고 살 수 있기를 바랐다. 글 쓰고 사는 삶이 아니면 다른 종류의 삶은 간지러워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스물아홉의 나이에 서울로 다시 짐을 싸서 올라왔다. 흑석동 달동네 개척교회 기도방을 임시로 빌려 월세 20만 원짜리로 버티기 시작했다. 새벽엔 지하철 신문도 돌리고 주말엔 경마장 신문도 돌리고 휴학을 하고 학비를 벌기 위해 친구들과 명절엔 참기름 공장도 다녔다. 유령작가가 되어 갔다. 기업인이나 유명인 대필이나 자서전 작업을 했고 신생 영화사에 취업해서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 작업 같은 것도 했다. 독립영화사들은 등은 토닥거려주지만 밥은 잘 안주더라. 아무튼 글로 쓰는 거면 닥치는 대로 썼다.


alt 

소문 듣고 찾아오거나 부탁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유령작가지만 조금씩 루트를 뚫고 청탁이 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목사입니다. 멋진 기도문 하나 부탁해요.’ ‘선거 카피 좀 부탁해요.’ 같은. 그 시절의 경험은 지금까지 내가 유령작가로 내 정체를 질문해 오는 데 궁리가 된다. 실제로 생존을 위해 야설작가나 대필작가로 활동하던 무렵부터 실존을 위해 시인이 되고 나서도 다양한 필명으로 여기저기 지면에 글을 발표하는 자유(?)를 누리고 있는 나는 내 이름을 지우고 글을 쓰고 발표하는 것에 익숙하다. 자신의 이름이 없던 시절부터, 자신이 이름이 불필요한 지점까지의 외로운 글쓰기가 조금은 필요해 보이는 시절이니까. 고스트라이터는 이름 없이 문체만으로 살아남을 수도 있지만, 문체마저도 문장 깊이 숨길 수 있는 무명의 재능을 믿는 자이다. 여하튼 무슨 일이 있어도 누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나는 글쓰기의 현장에 있었다.

릴케가 말테의 수기에 이런 글을 쓴 것을 기억한다. ‘나는 파리. 이 도시에 글을 쓰기 위해 왔다.’ 야설작가로 몇 년 동안 만 오천 매 정도의 글을 썼다. 인육을 벗기고 핥고 빨고 때리고 훔치고 도망가는 게 서사였다. 애인과 고향의 가족에겐 첫 야설 제목을 따서 현재 ‘보충수업 교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십 개의 필명으로 잡지사에 원고를 투고하기도 했다. 가끔 시를 쓰며 훌쩍였다. 시가 나로부터 외로워져갔다. 이러다가 평균치의 삶도 누리지 못한 채 끝장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글을 계속 써 나갔다. 많은 월세방을 전전하며 서울을 둥둥 떠다녔다. 여행하듯 보트피플처럼. 배낭과 밥상, 타자기, 연필이면 작가에겐 소재는 충분하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가난을 들었고 사랑을 들었다. 삶이 가난해지거나 우스워지는 순간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때 내 소망 중 하나는 욕조를 하나 갖는 것이었고 그곳으로 들어가 잠시 쉬기만 한다면 나는 어떤 종류의 글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alt

 

많은 시간이 흐른 후 TED-X라는 프로그램에 출연을 제안받았을 때 야설과 유령작가 시절 이야기를 야물게 해보려고 했다. 지금도 나는 여러 장르의 글을 쓰고 있지만 그때 익힌 이종입식타격 글쓰기의 방식에 근육이 좀 붙은 것 같다. 하지만 시를 지키기 위해 시 아닌 것들로부터 가난과 자유를 구걸하지 않는다. 내 첫 시집 구절엔 이런 글귀가 있다. ‘나를 견딜 수 있게 하는 것들이 지금 나를 견디지 못하게 한다.’ 시는 내가 살면서 선택한 삶의 방향 중 생존의 방향이 아닌 실존적인 방향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에 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계속해서 ‘쓰는 삶을 사는 것’은 나에게 호흡과 같은 방식으로 중요하다. 그 호흡으로 이루어진 대부분의 일상은 글을 읽고 쓰는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내 일상의 둘레는 시적 긴장으로 이루어질 때가 많다. 어떤 작업을 할 때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은 ‘나는 시를 지키기 위해서 이 일을 한다’는 것이다. 시라는 게 작정하고 들여다보면 시시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삶이 시시해질 때마다 시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처음 시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해 왔다. 그 생각에서 아직 1미리도 벗어나지 못했다. input image

FaceBook twitter kakaostory
추천하기6
닉네임
비밀번호
소셜 로그인
 비공개
댓글쓰기
댓글삭제
비밀번호입력
인기기사

많이 읽은 글

카오스<BR>X 코스모스<BR>X 환타지아

카오스
X 코스모스
X 환타지아

추천기사

추천수가 많은 글

카오스<BR>X 코스모스<BR>X 환타지아

카오스
X 코스모스
X 환타지아

prev next
SNS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