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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윤지

           

다니엘 켈만이 쓴 <나와 카민스키>에는 노년의 화가 카민스키가 등장한다. 그는 젊은 시절 한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졸작에는 ‘시력을 잃은 화가의 그림’이라는 부제가 덧붙여졌다. 카민스키는 일약 스타덤에 올라 작품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며 유명세를 치렀다. 그러나 그는 장님이 아니었다. 졸지에 작가 카민스키는 세상에서 장님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런 카민스키를 뒤쫓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전기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쵤너이다. 쵤너는 카민스키의 삶을 윤색하고 재배열하여 전기를 쓰고자 한다. 카민스키가 죽은 직후 전기를 출판한 쵤너는 그의 사후 명성에 일조한 영광을 자신에게 돌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명성의 두 가지 일면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로는 명성을 얻기 위해 대단한 업적을 성취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매혹적인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명성을 얻는다. 두 번째는 인간의 가슴에 감동을 주는 것은 시공간적 우연으로 인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예술가의 삶이 윤색되는 동안 전기에 기록되는 것은 그의 삶이 어떤 사건들로 인하여 그런 삶이 될 수밖에 없는가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삶은 우연한 사건들로 인해 이루어져 있다. 우연과 재능이 제멋대로 해석되어 명성을 낳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변호사였던 괴테가 친구의 약혼녀 샤를로테에게 첫눈에 반해 짝사랑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친구가 자살하고 말았다는 소식을 듣지 않았더라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막스 브로트가 친구의 유언에 충실한 나머지 그의 모든 작품을 불태웠더라면 우리는 카프카라는 작가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잭슨 폴록이 알코올 중독 치료를 위해 정신분석 전문의를 찾아가 융 학파의 심리치료를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액션 페인팅’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코카인 중독에 빠져 그래피티를 휘갈기던 젊은 장 미쉘 바스키아가 애니나 노제이를 만날 수 없었더라면 그의 작품은 지하철 벽면을 장식한 채 낡아갔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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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의 첫 번째 측면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면, 예술가의 인생 혹은 작품은 창작 과정이나 삶의 운명에 예사롭지 않은 사건들이 존재할 때 대중의 판타지가 된다. 예술가의 고통이 그러하다. 탐정 소설과 사이언스 픽션의 발명자인 에드거 앨런 포는 평생 가난과 불안, 우울증, 술, 마약에 시달렸다. 그는 스물여섯 살에 열세 살의 사촌동생인 버지니아 클렘과 결혼했는데, 버지니아는 결핵을 앓았지만 가난으로 인해 외투 한 장으로 몸을 덥힐 수밖에 없었고 5년 후 생을 마감한다. 가장 많이 알려진 포의 시 <갈가마귀>에서는 애인 리노어의 죽음을 추모하던 한 남자가 갈가마귀의 방문을 받는다. 연인과 사랑, 희망에 대한 질문들에 갈가마귀는 “nevermore”라는 단어만을 반복할 뿐이다. “더 이상은 없어, 이젠 끝이야.” 포는 우울증과 정신착란 사이를 오가다가 마흔 살에 행려병자로 병원에 끌려가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존재로부터의 도피는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힘인지도 모른다. 버지니아 울프는 매우 예민한 성격으로 어머니가 죽었을 때부터 정신질환 증세를 보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의붓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어 평생 몸과 성에 대한 병적인 수치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댈러웨이 부인>, <자기만의 방> 등의 작품을 통해 의식의 흐름 기법을 탄생시키고 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의 정전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시간이 더해갈수록 자신의 정신질환을 견딜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코트 주머니에 돌을 넣고 강물로 걸어 들어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실비아 플라스 또한 오븐에 머리를 박고 자살하여 유명해졌다. 세 번째 자살 시도였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투영한 자전적 소설 <벨 자>에 우울증이 심했던 뉴욕에서의 삶이 가져다 준 정신분열증과 그로 인한 입원 등 악몽과 같았던 시간들을 담아낸 바 있다.

명성을 가져다주는 또 다른 요인으로 희소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답고 훌륭한 것이나 위대한 것을 칭송하는 행위는 명성을 만든다. 그리고 명성은 또다시 그러한 찬미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자면 반 고흐는 스스로 귀를 자른 광기로도 유명하지만 기록적인 작품 판매가로도 유명하다. 1987년에는 일본 야스다 해상화재보험이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해바라기 15송이>를 8,200만 달러에 사들여 세계를 놀라게 했고, 1990년에는 다이쇼와 제지회사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가셰 박사의 초상>을 8,250만 달러에 사들여 다시 한 번 당시 최고 경매가를 경신했다. 재정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건 미학적 쾌락을 목적으로 하건 간에, 이런 소식은 천재성에 대한 환상을 갖게 하는 데에 어느 정도 일조한다. 하지만 고흐를 비롯한 천재들은 열등감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 더 큰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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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해지고 싶지 않았지만 후대에 의해 유명해진 예술가들도 있다. 에밀리 디킨슨과 프란츠 카프카가 대표적이다. 에밀리 디킨슨은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여류 시인으로 인정받는다. 천팔백여 편에 달하는 시를 썼지만 생전에는 네 편의 시만이 출간되었다. 다작하며 평생을 은거하며 지냈던 디킨슨이 죽은 뒤 그녀의 여동생이 원고 뭉치를 발견하여 수집한 뒤 발간하였다. 카프카는 생전에 단편 몇 개만을 발표했다. 카프카는 연인 도라 디아만트와 함께 미공개 소설 대부분을 폐기한 바 있는데, 디아만트는 비밀리에 노트와 편지를 숨겨 가지고 있다가 게슈타포에 의해서 압수당하고 말았다. 막스 브로트에게 태워달라고 맡긴 원고들은 출간되었다. 그에 의해 우리는 카프카의 작품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타인에 의한 출간 과정에서 본인의 의사를 벗어난 윤색과 재배열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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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살펴보다시피 유명한 예술가의 뒤에는 불행과 열등감, 영혼의 상처가 존재한다. 그런데 이러한 고통을 성취로 바꾼 사람들이 있다. 베토벤의 첫 번째 음악 선생님은 그의 아버지였다. 알콜중독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억지로 악기 앞에 앉혀두고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아들의 능력에 지나친 환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 무력으로 인해 침울했다. 1796년에 베토벤은 청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사실상 그의 모든 작품은 귀가 어두워진 후 쓰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40대 이후에 청력을 완전히 잃고도 <환희의 송가> 등 명곡들을 작곡했다. 한편 시인 바이런은 발이 안쪽으로 휜 내반족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변덕스러운 성격으로 장애를 가진 아들을 무시했다. 하지만 바이런은 고통을 보상하기라도 하듯 수영과 크리켓을 연마했으며 실력도 뛰어났다. 그리고 18세에는 첫 시집을 출간하여 당대의 인기 있는 낭만주의 문학인이 되었다. 그의 걸음걸이가 사교계의 유행이 될 정도였다.

예술가들은 매혹적인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그들의 삶으로부터 이름을 얻는다. 그 순간 그 이름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그들의 재능이 어떤 우연과 만나 그러한 삶이 되었는지를 해석하고, 명성을 부여하는 우리들의 행위가 지금의 이름들이 실재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예술가의 괴로움과 아픔이 예술에 대한 격정과 그들의 삶 사이에 창작이라는 균형을 존재토록 하는지도 모른다. 예술가들의 결과물은 더 높은 차원의 삶에 대한 인식을 통해 인간의 정신을 움직인다. 그리하여 그들은 고통이라는 시공간적 우연을 통해 인간의 가슴에 감동을 주는 인물이 되었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차원의 이름이 주어진 바 다름없다. 그 이름을 부름으로써 우리는 정신의 고양을 성취할 것이다. 예술가의 이름이 아로새겨져 있는 그 우연의 시공간에서 말이다. input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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