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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이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세 가지 수식어로 불리는 이가 있다. 무용수이자 교육자, 그리고 안무가로 활약하고 있는 무용원 실기과 전미숙 교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단아한 겉모습만큼 흐트러짐 없는 그녀의 일상을 지켜본 이들은 무대 위에서 폭발하는 열정적 몸짓에 놀라곤 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느낌이랄까. 끊임없이 무대 위에서 반전의 몸짓을 그려나가고 있는 전미숙 교수를 만나본다.

글. 이교영


전미숙무용단의 <Amore Amore Mio>는 5년 만의 재공연을 통해 2015 대한민국 무용대상(대통령상)을 수상하고 올해 제23회 무용예술상 작품상에 선정되었다. 움직임의 개연성, 자연스러운 연출, 오브제를 통한 의미 표출 등 다양한 면에서 호평을 받은 이 작품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 작품을 처음 만들게 된 것은 5년 전이었습니다. 저의 롤 모델인 피나 바우쉬라는 세기의 안무가가 돌아가신지 1주기가 되는 시점이었어요. 무용 작업의 형태를 완전히 바꿔 놓으신 분이죠. 작품을 통해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동시에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 피나 바우쉬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무용계에 남긴 업적, 특히 컨템포러리 댄스의 개념을 바꾼 그분의 업적에 대한 헌정을 하고 싶었습니다.



alt <나팔꽃이 피었습니까>

5년 만에 다시 돌아온 이유

첫 번째 작품을 올리기 전과 그 후의 생각이 바뀌었어요. 발레에는 레퍼토리 형태의 공연이 많습니다. 현대무용에도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레퍼토리 공연이 있지만 현대예술의 개념에서 레퍼토리 공연은 과거 작품에 대한 일종의 재해석과 회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작 작업의 개념과는 다르죠. 저 역시 이를 선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을 처음 만들 때 하는 많은 고민과 생각은 그 시점에 안무가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과 밀접한 연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 방법은 너무 매너리즘적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비롯하여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재공연을 하게 되면 처음 작품을 할 때의 고민이나 생각이 무뎌지고, 무덤덤해진 상태에서 단순히 포장만 하게 되기가 쉬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Amore Amore Mio>를 통해 ‘춤이 어떻게 하면 소수가 아닌 대중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을까’라는 지점을 더 깊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안무자이자 무용가로서의 숙제이기도 하지요. <Amore Amore Mio>가 2010년에 끝난 직후, 물론 이 작품을 가볍게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대중들이 미술을 감상하듯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왔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일반 대중에게 더 다가가고,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5년이 흐른 작년에 다시 하게 되었네요.



alt <Amore Amore Mio>

화려한 기량의 라인업

좋은 안무가는 무용수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잘 끌어내서 이를 작품에 투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Amore Amore Mio> 출연진이 제자라지만 작업에서는 엄격히 안무자와 무용수의 만남이며, 각자의 고유성을 존중합니다. 35년간 학생을 가르치면서도 ‘왜 이 동작을 꼭 이렇게 가르쳐야 하지?’ 하는 교육과 창의적 딜레마에 의문을 가지기도 했지요. 이번 작품에서는 무용수들에게 뭔가를 지시하지 않아도 각자의 특징이 드러났던 것 같습니다. 무용수들의 연륜도 한 몫을 했고요. 이번에 5회 공연을 진행했는데 메르스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어요. 그럼에도 많은 사랑을 받아 5회 전석 매진이 되었는데, 실력과 연륜이 늘어난 무용수들의 덕을 많이 봤던 것 같아요. 만약 5년이 지난 후에도 <Amore Amore Mio>를 선보인다면 그들의 실력과 느낌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볼 수 있을 것 같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전미숙의 오브제

<Amore Amore Mio>는 무대에 그려놓은 그림을 보고 관객이 각자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 순간으로 갈 수 있게끔 하고 싶었습니다. 대중들은 보통 현대무용을 어렵게 생각하죠. 그런 관객들이 무용수의 움직임, 연출된 상황, 그리고 오브제를 통해서 내면의 기억을 꺼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5년 전에는 공연의 핵심 오브제인 컵에 익숙하지 않아서 정말 많이 깨뜨렸습니다. 연습은 두말할 것 없이, 무대 위에서도 컵이 깨졌어요. 하지만 컵이기 때문에, 컵과 함께라서 나올 수 있었던 움직임을 얻었습니다. 그때의 체화로 이번 공연에서는 컵을 깨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alt <반갑습니까>

alt <Talk to Igor>

전미숙 교수는 <Amore Amore Mio> 외에도 현대인의 강박과 좌절 그리고 도시적 삶의 모습을 그린 <五十八年개띠>(1993), 죽음과 이별 등을 내용으로 다루지만 궁극적으론 냉소적인 인간관계를 표현한 <가지마세요>(2008), 침묵이 가지는 깊이를 다룬 <묻지마세요>(2010) 등 여러 작품을 발표하였고 “현대적인 감각, 무용수들의 뛰어난 테크닉, 조형미를 살려낸 무대 장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나팔꽃이 피었습니까>(2003), <봄날은 갈까…>(2004), <반갑습니까>(2005) 등 의문형으로 끝나는 제목의 작품들을 발표하며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현대 사회를 풍자하는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춤은 무대 위에서 형상화 되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보는 것이죠. 그래서인지 무용은 상당히 시각적인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몸을 많이 움직이는 춤보다는 개념이 들어있는 움직임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또 무대 미술을 많이 신경 쓰고 색의 감각이 좋다는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 자신을 모티브로 해서 꺼내는 이야기들이 더 많습니다. <웨딩 탱고>에서는 결혼 초기의 익숙하지 않은 만남을 탱고의 꺾여짐, 잡아당김의 관계로 표현했죠. 어느 날은 설거지를 하는데 ‘결혼을 한 이상 이걸 죽을 때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불감증>이란 작품을 만들었는데 등장했던 오브제가 고무장갑이었어요.
또 여성으로서 한창일 때와 중년 여성으로 넘어가는 문턱에서 본능적으로 여성의 심리가 느껴졌나봐요. <나팔꽃이 피었습니까>에서 여성의 생식기관 혹은 나팔관을 나팔꽃에 비유하면서 그 감각을 표현했고 <봄날은 갈까>와 같은 작품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이런 자전적인 이야기들로 작품을 하면 스스로의 마음에 가장 와 닿고, 이건 나를 통해 만든 이야기이지만 결국 내 이야기만이 아닌 타인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마침내 사회의 이야기로까지도 나아가게 돼요.



반전과 운명, 그리고 춤

저는 긍정적 허무주의자입니다. 주변에서는 저를 부정적이진 않지만 허무적이라고 표현해요. 스스로에게 철저한 편이지만 타인에게는 그게 쉽게 되지 않죠. 그래서 작품을 할 때 ‘내가 이 작품을 통해 그때 못했던 내재된 말을 다 하리!’라는 마음을 가집니다. 평론가들은 평소에 드러나지 않는 예술적 성향이 제 작품 속에 놀랍게 전개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반전의 힘”이라고도 합니다. 저는 감성보다는 이성적인 사람이라서 ‘내 성향이 이렇다면 작품도 굉장히 논리적이고 수리적으로 포맷을 짜자’고 생각했어요. 그로 인한 건조함을 보완하기 위해 늘 가까이 하는 소중한 감정들을 찾아왔던 것 같아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은 무엇일까. 내가 어떤 것에 흥분을 할까. 몇 년 전부터는 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긴장감이 무엇일까 찾고 있는데 아직 못 찾았어요.
반전이 있다고 말하는데, 이러한 제 마음이 작품의 반전을 탄생시킨 것 같습니다. 사실 주변 사람들로부터 감정에 굴곡이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나조차도 이런 내가 무용이라는 예술을 한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때가 간혹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저는 춤이 운명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받아들이고 제대로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춤을 추곤 하는 것이죠. 이번에 <Amore Amore Mio> 를 다시 공연하며 이 작품을 레퍼토리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국립현대무용단에서 했던 스트라빈스키 음악에 맞춘 <결혼>이라는 작품을 또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이렇듯 앞으로도 끊임없이 무대 위를 춤으로 그리고자 합니다.



alt <BOW>

alt <BOW>

우리가 춤을 추어야 하는 이유

학생들에게 무용은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 평생의 직업이 됩니다. 지금 같은 시대에 이들에게 무엇을 조언하고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는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도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졸업 후에는 무엇을 해도 괜찮다. 물론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도 많다. 춤을 추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학교에 있는 4년간은 춤을 통해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배우는 시간이다. 적당히 하면 그것을 알 수 없다. 4년 동안 춤을 통해 삶을 사는 힘과 어떻게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를 배워라.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창의성이지만, 이를 위해 끊임없는 반복을 해야 한다. 계속해서 반복하려면 인내해야 한다. 거기까지 하고, 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해도 좋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춤을 통해 배워라. input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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