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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성민규

           

새해가 시작되던 날, 전국의 신문지면에는 가까운 이들의 이름이 불리었다. 김경주 작가의 <태엽> (동아일보 희곡부 문), 김봉곤 작가의 <Auto>(동아일보 중편소설 부문), 이성호 작가의 <감염> (경상일보 희곡 부문), 이채현 작가의 <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 (경향신문 단편소설 부문), 황승욱 작가의 <세탁실> (조선일보 희곡 부문), 황현진 작가의 <귀신> (한국경제 시나리오 부문) 등 한예종 학생과 동문이 대거 당선된 것이다. 호명된 기쁨으로 한 해를 시작하게 된 이들 중 네 명의 작가들을 돌곶이의 이리카페에서 만나보았다.

 

민규(인터뷰어)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처음 연락받았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채현(연극원 극작과 서사창작전공)
학교 과방에서 연락을 받았는데요, 실감이 안 났어요. 기자분께 거짓말 아니냐고 되물을 정도로.(웃음) 잠시 기분이 좋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제 글을 보리란 생각에 무서워지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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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곤(연극원 극작과 서사창작전공 전문사 졸업)
저는 전문사 마지막 과제를 피드백 받던 중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실감이 안 났어요. 인터넷에 게재된 후에야 실감이 나고 떨리더라고요. 공적인 글쓰기의 영역으로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맷집’을 길러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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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영상원 영화과 시나리오전공 전문사)
왜 신문사에서 전화가 오지? 내가 뭘 잘못했나? 기분이 좋기도, 씁쓸하기도 했어요. 예전에 제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는 떨어지고 마음 아파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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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욱(연극원 극작과 극작전공 전문사)
저는 고마웠습니다.(웃음) 무엇보다 신문지면을 통해 제 이야기를 들어줄 많은 독자들에게 고마웠어요. 결국 제 이름을 불러줄 사람은 그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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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

승욱 씨의 희곡 <세탁실>은 군대의 부조리를 드러낸 작품인데요. 어떤 계기로 쓰게 되셨나요?


승욱

친구 때문이었어요. 해군 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어느 날 한수라는 친구가 세탁실에서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오늘은 세 대만 맞아서 행복해.” 그 장소, 그 한 마디가 희곡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민규

세탁실에 구형 세탁기와 신형 세탁기가 한 대씩 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승욱

구형 세탁기는 실컷 부품으로 쓰인 뒤 버려지는 고참 병사를, 신형 세탁기는 앞으로 그렇게 될 신병을 떠올리고 설정했어요. 군대에서 병사들이란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는 부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민규

공감합니다.(웃음) 그럼 탈수 기능이 고장난 구형 세탁기에서 젖은 빨래들을 꺼내 신형 세탁기로 옮기는 장면은 혹시 신병에 대한 ‘갈굼’의 시작인가요?


승욱

음, 그보다는 탈수된 군인들을 꺼내달라는 말이었어요. 군대 안에선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으니 이제 그만 그들을 꺼내달라고요. 군대는 부품이 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곳이거든요. 군대라는 인격체에 혈액처럼 스며들었던 사람들이 상처를 내도 금방 응고되는 세상을 만든 게 아닌가 싶어요.


민규

인물 간 관계가 굉장히 현실적이던데요.


승욱

제 안에 캐릭터들이 많았나 봐요. 따로 구축한 건 아니고 들리는 목소리들을 바로 받아 적었습니다. 기술했다고 해야 할까요?


민규

현진 씨 작품도 군대에 대한 이야기였죠? 요즘은 군대나 군인이 예전보다 더 화제가 되는 것 같아요.


봉곤

지금의 사회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구조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현진

군대 이야기는 얼마 안 나와요. 극이 시작된 지 이십 분 만에 병사가 탈영하거든요.(웃음) 다만 승진을 바라보는 젊은 부사관에게 선택의 순간을 부여하고 싶었어요. 탈영한 친구를 죽이고 자신이 살 건지, 아니면 친구를 살리되 가족과 연인을 포기하고 감옥에 갈 건지. 군대를 통해 일상과 맞닿은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어요. ‘무엇이 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우리 사회는 너무 전자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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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

탈영, 폭발, 자살 등 소재들이 꽤 자극적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현진

그렇죠. 하지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에요. 주위에 보면 이 나라를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 수많은 인명재해,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그게 탈영과 폭발, 자살이라는 사건들을 선택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민규

제목도 인상적이었어요. 왜 <귀신>인가요?

 

현진

주인공을 외환위기 때 해고된 H자동차 노동자의 아들로 설정했어요. 주인공이 고등학생 때 학교 앞에서 S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자살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학교가 마이스터고라는 이름으로 세련되게 바뀌면서 기술만 배워도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싹트고 있었죠.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해고 노동자들이 마치 귀신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또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귀신같았고요.


민규

작품의 무대가 백령도인데요. 혹시 군복무를 거기서 하셨나요? 저는 자대배치 받을 때 백령도만 걸리지 말라고 빌었던 것 같은데.(웃음)

 

현진

아, 군복무는 다른 곳에서 했구요. 다만 백령도가 탈영병을 수색하는 이야기의 무대로 적합해 보였어요. 거기가 인천을 거쳐서 들어가는 곳인데요. 직접 가보니까 인천보다 북한이 더 가깝더라고요. 북한 주민들이 보일 정도로. 남한보다 북한에 더 가까운 군부대라는 점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처음에 가봤을 때 여기다 싶었어요.


민규

그렇군요. 굉장히 현실감 있게 그려진 듯해요. 사실 봉곤 씨의 작품도 현실감이 인상적인 작품인데요. 어떻게 탄생한 이야기인가요?

 

현진

재작년 봄에 이야기의 절반을 쓰고, 작년 봄에 나머지 절반을 썼어요. 사실 두 개의 단편을 쓴 건데, 오토 픽션(자전적 소설)이기에 논리적으로 붙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민규

서사창작과에서는 시와 소설을 모두 배울 수 있잖아요. 두 장르의 매력은 각각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봉곤

시는 순정함을 남기는 작업인 것 같아요. 소설은 그 부스러기들을 모은, 말하자면 맛있는 잡탕찌개를 끓이는 느낌이구요. 세계의 비속함을 담아내기엔 산문이 더 자유롭게 느껴져요.

 

민규

영화는 어떤가요? 서사창작과 전문사에 입학하기 전에 영화과 예술사 과정을 수료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봉곤

영화는…… 시를 닮은 것 같아요. 편집 작업을 하다보면 영화가 시작과 끝이 메타포인 시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그러고 보면 편집 공부할 때의 경험이 소설 쓸 때도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영화과엔 빚진 게 없는 줄 알았는데.(웃음) 개인적으로 소설은, 영화에 비해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전달하기에 더 적합한 장르인 것 같아요.

 

민규

채현 씨, 왜 웃으세요?

 

채현

거기(<Auto>)에 제가 나오더라고요.(웃음) 갑자기 생각이 나서.

 

봉곤

1학년 때 같은 수업을 들었었죠. 채현 씨를 보면 그 힘든 시기를 같이 버텼다는 어떤 동질감, 전우애 같은 게 느껴져요.(웃음)

 

채현

맞아요, 저도.(웃음) 그리고 봉곤 씨의 글 분위기가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민규

혹시 봉곤 씨도 채현 씨의 등단작 읽어보셨나요?

 

봉곤

네, 저도 <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를 읽어봤는데요. 좋은 사람이 쓴 소설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숨길 수 없는 DNA라고 해야 할까요? 따스한 세계관이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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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

인간이 로봇에게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소설이었는데, 주인공을 로봇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채현

마지막 장면부터 생각하고 쓴 소설인데요. 로봇이 등장한 건 그냥 그 장면에 로봇이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웃음) 로봇은 등장해야 했고, 또 그런 식으로 죽어야 했습니다.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는 바람에 “장르소설 아니냐”는 질문도 몇 번 받았었는데 그렇진 않아요. 사랑 이야기였습니다.

 

민규

특별한 계기가 있다고 들었어요.

 

채현

몇 년 전에 장례식장에 갔을 때였어요. 할아버지 장례식이었는데, 하필 그날 중요한 시험이 있어서 얼마 머물지도 못하고 곧장 시험장으로 가봐야 했어요. 그때 무언가 제 자신에게 역겨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남긴 무언가를 소설로 써 보고 싶었어요.

 

민규

작품에는 할아버지의 유산을 찾아 떠나는 은석과 그에게 헌신하는 안드로이드 이안이 등장하는데, 둘 중 본인에게 가까운 캐릭터가 있다면요?

 

채현

(고민하다가) 은석이요. 처음에 은석이는 따로 모델이 있었는데, 쓰면 쓸수록 제가 많이 반영된 것 같아요. 사실 이안의 모델은 가수 ‘아이유’였어요. 개인적으로 좋아하기도 하고, 사랑을 베풀 것 같은 이미지였어요. 예쁘기도 하고…….(웃음)

 

민규

채현 씨랑 봉곤 씨는 같은 서사창작과였는데, 학교생활은 어땠나요?

 

봉곤

제게 학교생활은 읽고 쓰는 시간들이었어요.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았고요. 그것으로만 시간을 보내서 좋았습니다. 원래는 사범대 진학에 실패한 경영학도였는데요, 한예종에 입학한 이후 많이 달라졌습니다.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면서 예술적 자아라는 게 만들어졌거든요. 어디서 무엇을 하건 글쓰기가 있어서 참 행복했습니다.

 

채현

천운영 선생님의 <취재연습2>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수강생이 세 명이었는데, 선생님께서 한 명당 한 시간씩 코멘트를 해주셨어요. 선생님께서 준비를 많이 하시고 오셔서 큰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민규

작년에 전문사로 들어오신 승욱 씨는요? 학교생활에 대한 다짐이 있으시다면?

 

승욱

오직 연극만이 가능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철학, 종교, 법, 자본의 너머에 있는 것을요. 가령, 최근에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을 인상적으로 봤는데요. 엉뚱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AI에게서 인간보다 나은 선의를 발견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고. 생태계의 지배자였던 공룡이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걸 생각해보세요. 인간이라고 다른 생명체에게 바통을 넘겨주지 말란 법 있을까요? 그런 이야기를 써보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함께요. 그리고 4월에 올릴 공연도 준비중인데요…….(웃음) 식당 냉장 칸에 후임의 시신을 집어넣으며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연우 소극장이구요. 시간 나시면 한 번 보러 오세요. 제목은 <on/off>입니다.

 

민규

마지막으로 올해 입학하신 현진 씨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현진

사실 한예종에 온 건……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에요.(웃음) 주변에 영화하는 친구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무언가 떠들고 싶었습니다. 지금 <귀신>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 다른 시나리오 작업도 병행하고 있는데요. 학교에 다니는 동안 이 사회를 살아가며 느끼게 되는 것들을 시나리오로 풀어보고 싶습니다.

 

끝으로 네 사람에게 작가로서의 다짐을 물었다. 그들은 등단 이후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거나 여전히 두렵다고 말하면서도 저마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신춘문예 당선이 “또 한 번 써 보라”는 격려처럼 들렸다는 현진 씨, “합평이 무섭지만 쓰는 게 좋으니까 계속 쓰겠다”는 채현 씨, “더 이상 순진하게만은 쓸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마음으론 순진하게 쓰고 싶다”는 봉곤 씨, 그리고 “이야기가 걷고 걸어 당도하는 곳이 당신의 마음이었으면 좋겠다”는 승욱 씨까지, 그들은 모두 차분하게 각자의 목소리를 가다듬고 있었다. 이름이 불린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반갑게 응답하고 싶은 것. 어느 날 각자의 방식으로 건네올 그들의 인사가 기대된다. input image

 

(김춘수의 시 <꽃>에서 제목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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